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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일본 국립병원 통해 돌아본 한국의료 현실

<특집>일본 국립 홋카이도의료원(북해도병원) 탐방


“가벼운 경증 질환 보다는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희귀중증 질환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국립병원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국립 홋카이도의료센터(國立北海道病院 National Hospital Organization Hokkaido Medical Center 국립북해도종합병원)를 지난 9월 25일 방문했다.

홋카이도의료센터의 의료원장은 신경내과 전문의인 키쿠치 마사시 박사.

25년 전 캐나다 벤쿠버 의대 유학 시절 한국인 교수로부터 지도받았다는 그는 스승의 나라에서 찾아온 방문객에게 친근함을 나타내며 홋카이도의료원과 일본 국립병원의 위기와 대책방안, 일본 의료의 현 주소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삿포로시 서쪽 한적한 외곽에 위치한 홋카이도의료센터는 총 500병상 규모로 일반병상 410개, 정신병상 40개, 결핵병상 50병상으로 이루어진 국립종합병원이다.

정식명칭은 ‘독립행정법인 국립병원기구 홋카이도 의료센터’이며 ‘독립행정법인 국립병원 기구 니시 삿포로 병원’과 ‘독립행정법인 국립병원기구 삿포로남 병원’이 전신이다.

지난 2010년 3월 1일, 독립행정법인 국립병원 기구 니시 삿포로 병원과 독립행정법인 국립병원기구 삿포로남 병원 서쪽 땅을 삿포로 병원의 땅에 통합, 지금의 홋카이도 의료센터가 탄생했다.

현재 내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당뇨병, 지방질 대사 내과, 신장내과, 정신과, 부인과 등 28개 진료과가 설치되어 있다.



응급의료, 급·만성기질환, 결핵 등 모든 의료 수요 충족하는 하이브리드 병원
OECD Health Data 2008 자료에 따르면 일본 공공의료 비율은 33.2%. 일본도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7%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율보다는 월등히 높아 국립병원의 위상과 사회적 기대치가 우리보다는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국립 홋카이도의료원의 사명은 감기 등의 가벼운 경증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병원은 3차 응급의 초 급성기부터 중증 난치병, 소아 만성 질환(양호 학교 인접), 그리고 결핵까지 모든 의료 수요에 대응하는 급성기 및 만성기 하이브리드 병원입니다."

키쿠치 박사는 홋카이도의료원이 일본의 많은 국립병원들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병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홋카이도의료원은 주요 진료기능으로 ▲신경, 근육질환, 성육의료, 면역 이상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인 의료 ▲암, 순환기질환, 간 질환, 내분비·대사성 질환, 뼈·운동기 질환, 간 질환에 관한 전문적인 의료 실시 ▲호흡기 질환에 관한 전문적인 의료 실시(결핵의 거점 시설) ▲재해시의 진료 지원 기능을 갖추고 고도의 종합적인 의료 실시 ▲에이즈에 대한 전문적 의료 실시(에이즈 치료 거점 병원) ▲구명 구급 센터로 응급 의료 실시 ▲정신(주로 신체 질환 합병의 정신 질환 환자)에 관한 의료 실시 등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현재 ▲갱생의료 ▲육성의료 ▲정신병원 ▲결핵 ▲원폭피폭자 치료 및 관리 ▲난치병의료 ▲재해 ▲2차 및 3차 응급의료기관 등의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어 지역의료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일본 대부분 국공립병원 적자…홋카이도의료원도 예외없어
홋카이도의료원이 공공병원으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수익성 있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어 현재 병원 경영은 적자 상태다.

여기에 일본 인구의 고령화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아 노인 의료비 지출부담이 큰 이유도 있고, 독립행정법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공립병원과 달리 관계기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어 ‘각자도생’으로 병원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부담도 갖고 있다.

키쿠치 박사는 “원칙 상 국립병원이라도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은 받을 수 없다. 병원 자체 수익만으로 인건비와 치료재료, 시설투자비용 등을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들어 결핵환자 수가 평소보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홋카이도의료원은 50개의 결핵 전문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계속해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40개의 전문병상을 갖고 있는 정신과도 일반 정신질환 환자가 아닌 합병증을 동반한 정신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돌보고 있어 이로 인한 인건비와 의료비 지출 부담 역시 매우 크다”고 말했다.

사실 홋카이도의료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국공립의료기관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많은 병원들이 독립행정법인으로 경영체제를 전환했다.

독립행정법인은 말 그대로 관계당국으로부터 행정적으로 독립한 법인으로 독립된 지위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의사 결정과 업무 질과 투명성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키쿠치 박사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병원 적자 분은 ‘일본 국립병원 본부’가 빌려서 보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응급실 썰렁…환자가 한명도 없는 이유는?
홋카이도의료원은 삿포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환자들이 그리 많지 않아 접수대에서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고 외래 진료과도 대부분 한산했다. 응급실은 아예 환자가 없이 빈 침대만 놓여있어 시장바닥을 방불케하는 우리나라 응급실 풍경과는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고층빌딩들이 늘어선 삿포로시 중심에 위치한 홋카이도대학병원의 경우 조금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어지간한 종합병원들처럼 붐비지는 않는다.

일본은 노인인구 비율과 재원 일수가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의료 수요가 높고 삿포로시에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 홋카이도의료원을 포함해 세 개밖에 없는데 의료원에 환자 수가 이렇게 적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궁금했다.

이는 ‘동네의원’부터 ‘빅5’ 상급종합병원까지 모두 외래 진료에 매달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종별 병원 기능에 따른 의료전달체계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고 병상 수급도 지역수요에 따라 적절히 분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키쿠치 박사는 “일본 종합병원과 많은 진료소(의원)들이 협력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환자가 증상이 있을 때는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일차적으로 이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소개장을 받아 상급병원을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개장에도 수수료가 붙는다.

응급실 역시 마찬가지다. 교통사고나 뇌졸중, 심근경색 등 정말 중증환자만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경증환자나 주취자, 또는 입원대기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기자가 의료원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도 응급실에 환자가 단 한명도 보이지 않고 정적만 흘렀다. 의료진은 “하루에 2-3명만 온다”고 말했다. 정말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응급실을 이용할 수 없어서 인지 응급실에 병상 수도 5-6개에 불과했다.

응급실에 환자는 한명도 없었지만 응급의학과,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각 과의 전문의들이 응급상황 시 언제라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24시간 대기상태에 있었다.



의사 혼자 하루에 5명의 환자만 진료…‘3분 진료’는 없다
홋카이도의료원 의사가 하루에 진료하는 평균 외래환자 수는 약 5명 수준. 우리나라처럼 ‘3분 진료’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혼자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의 환자를 ‘박리다매’식으로 진료해야 수익을 남길 수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는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홋카이도의료원이 일차의료기관에서 의뢰받은 환자를 진료하는 상급병원이어서 홋카이도의료원 외래진료 비중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병원도 연간 340만 명의 외래진료를 본다.

또한 하루에 5명의 환자를 봐도 병원운영이 가능할 만큼의 의료보험 수가가 책정돼있기 때문이다.

OECD Health Data 2006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4년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율은 5.6%이지만 일본은 8.8%로 훨씬 높다. 일례로 분만 비용의 경우 우리나라는 54만 2400원인 반면에, 일본은 624만원으로 10배도 넘는다.

그렇다면 일본 국립병원 의사 평균 연봉은 얼마나 될까? 키쿠치 박사는 곤란할 수도 있는 이 질문에 “40세 의사를 기준으로 할때 평균 1300만엔(한화로 약 1억 3천만원) 정도 된다”고 성실히 답변했다.

일본의 의사가 하루에 5명의 환자만을 진료하는데도 우리 돈으로 평균 1억 3천만원 가량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일본의 의료수가가 우리나라보다 높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1인당 GNP가 우리나라의 두 배 수준이고 평균 물가 역시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일본의사의 평균 진료시간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절대 비교는 힘들다. 현재 엔저(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이제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2005년 세계 최초로 노인인구의 비중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기록한데 이어, 현재는 인구 4명 중 1명 이상이 70세 이상 노인이고 노인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인인구 증가 등의 이유로 일본 평균 재원일수도 최고를 기록해 현재 평균 31.2일로 2위인 우리나라 16.1일의 두 배에 육박하고 있다. OECD 평균은 8.4일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노인의료비 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국가 재정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일본 아베 정권은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의료비를 절약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는데 재원일수를 줄이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70세 이상 의료보험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현행 20%에서 30%로 인상하려는 움직임도 시도되고 있다.

키쿠치 마사시 의료원장은 “일본 정부는 난치병 환자의 경우에도 되도록 입원 보다 재택 진료를 권장하고 있다”면서 “이런 때일수록 병원 간 적절한 역할분담과 의료전달체계, 지역의료연계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홋카이도의료원의 사례를 통해 일본 의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본 역시 의료비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국가 재정위기를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폭등을 경험하고 적극 대처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지를 면밀히 살펴 우리 의료가 가야할 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