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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 정부는 메르스 피해 의료기관 보상에 최선 다해야

“나도 한때 의병으로 참가했던 사람이오. 헌데 이 나라꼴 좀 보시오. 왜적의 칼에 수많은 백성들이 도륙 당했는데 그나마 살아남은 백성들은 칼보다 무서운 전세와 부역, 그리고 공납에 시달리고 있소. 백성을 위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이는 임금이 어찌 임금이란 말이오.”

지난 7월 4일 방영된 KBS 역사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임진왜란 중 ‘송유진의 난’을 일으킨 송유진이 관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며 이렇게 울부짖는 장면이 나왔다. 결국 송유진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처형됐다.

1594년(선조 27년)에 일어난 송유진의 난은 임진왜란 중 가장 처음 일어난 민란이다. 참혹한 전쟁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의병으로 왜적과 맞서 싸운 백성들이었지만 조선 조정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부역과 공납이라는 핍박뿐이었다. 이에 서얼 송유진이 불만에 가득 찬 백성들을 규합해 충청도 천안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기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묘하게 메르스와 사투를 벌인 의료인들이 오버랩 됐다. 정부의 안이하고 미숙한 초동대처로 메르스가 국내에 유입되어 유례없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환자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격리 조치되는 병원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하루를 멀다하고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사망소식에 국민들은 벌벌 떨며 한국사회는 마비됐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이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메르스 감염 공포 속에서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진료했지만 이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의료인들을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메르스 미신고시 벌금을 부과하고 메르스 환자진료를 거부할 시 처벌하겠다는 등 엄포를 놓으며 사기를 꺾는 데에만 열중했다.

심지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합당한 근거도 없이 의료인의 자녀에게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압박까지 가해 기어이 어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주고 말았다.

의료계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사회마저 그들을 외면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메르스 확산방지와 환자 진료에 매진한 의료인들 덕택에 메르스는 겨우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드디어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의 주범이나 다름없는 정부가 내놓은 의료기관 피해 지원책은 어떤가? 초라해도 너무나 초라하다. 기껏 160억원을 일부 병원급의료기관에만 한정해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의원급의료기관은 아예 제외됐다. 기준도 들쑥날쑥해 정부의 조치가 있기 전 병원을 폐쇄한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내용은 전무하다.

추경 예산안을 마련했지만 정작 의료기관에 대한 직접적 손실보상 내용은 미미하고 융자사업 예산만 대폭 편성했다. 메르스 사태로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 손실보상 등의 내용을 담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법 개정안’ 역시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임진왜란 때 조정의 핍박에 시달리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민란을 일으킨 백성들처럼 의료계가 집단적으로 봉기라도 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메르스 확진 환자 치료·발생·경유 병원들의 직접 손실만 약 5,000억원에 육박한다는 분석 결과가 대한병원협회에서 나왔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피해규모 역시 34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직원들 월급도 못줄 위기에 처한 병의원들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정부와 국회에 적정한 보상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게 최선인가? 이런 방법밖에 없는가?

손실보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부의 잘못된 조치로 인해 사유재산권에 특별한 손실이 가해졌을 때 그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다. 정부의 잘못으로 메르스와 사투를 벌인 의료기관에 대해 정부가 해야 할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적 조치다. 이조차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임진왜란 때 ‘송유진의 난’을 시작으로 조정의 핍박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의 봉기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료계는 지금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