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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언제쯤 국회의원들의 입법폭력 없어질까?

몇 달 전 기자는 보건의료관련 행사에서 한 국회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의료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의료법 법률 개정안을 입법 발의하는데 동참해 많은 의료인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던 인물이었다. 기자는 그에게 그런 법률안을 발의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충격이었다. 사실상 보좌관이 발의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의원 자신은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결제만 했다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되는 법률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공동발의관행’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한 법안을 발의하려면 대표 발의자 외에 9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모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공동 발의자로 서명할 때 의원이 직접 하는 경우가 있고 보좌관이 ‘알아서 적당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는 거의 드물어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의되는 법률안의 내용조차 모르고 발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국회입법발의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 간 친분에 따라 또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거나 실적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19대 국회 들어 현재(2015년 8월 18일 기준)까지 제출된 의원입법 건수만 총 1만5674건에 이르지만 이 중 가결된 법률안은 2030건에 불과하다. 12.9%만이 가결되어 1만273건이 계류 중이다. 이쯤 되면 몇 달 전 기자를 만났던 국회의원이 보좌관이 발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법안의 내용을 몰랐다고 그리도 당당하게 ‘해명’한 것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의료계도 의료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의원입법으로 인해 적잖게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신생아 출생 시 의료기관에서 이를 통보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해야 하는데 부모가 이를 게을리 할 경우 아동보호 및 복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불법입양문제까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엉뚱하게 의료기관의 책임으로 돌린 것은 명백한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다. 그렇잖아도 낮은 분만 수가와 출생률, 병의원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 등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급기야 분만을 포기하는 의료기관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산부인과를 더욱 옥죄는 법안이 발의되어 의료계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법안을 대표 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 의원은 국회 산업자원통산위원회 소속으로 의료계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의원이다. 공동 발의에 참여한 강창일, 김기준, 노영민, 신경민, 이개호, 이원욱, 전해철, 정청래, 황주홍 의원 등 다른 새민련 소속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보건복지위 소속 위원은 단 한명도 없으며 의료계와 별다른 인연 역시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당연히 그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를 다하는데 있어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소신을 갖고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에게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 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그들 간의 친분에 따라 또는 개인 실적 쌓기용으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어이없고 비전문적인 법안을 남발한다면 이는 국회의원의 지위와 특권을 앞세운 ‘입법폭력’이나 다름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국회 입법 문화가 하루 빨리 개선되길 기대한다. 더 이상 국민과 의료계는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