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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응급하지 않은 응급환자…응급실 문화 개선 시급

추석연휴가 막 지났다. 병원 관계자들에 의하면 올해 추석에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환자들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고 한다.

명절 특성상 전이나 국 등 뜨거운 음식을 조리하다가 화상을 입은 경우도 있었고 지나친 과식으로 인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환자들은 자신을 응급환자라고 생각하고 응급실을 찾았겠지만 전문가들이 봤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올 추석연휴에 당직을 섰던 한 전공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관이다. 단순히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도 있었고 환절기 감기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도 더러 있었으며 심지어 할머니 관절약을 대신 타러온 손주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응급실의 단골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 얼큰하게 취한 음주자들도 빠지지 않았다.

이는 우리나라 병원의 응급실 문턱이 지나치게 낮다는 반증인데 이로 인해 전국의 종합병원 응급실은 ‘응급하지 않은 응급환자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경증과 중증의 구별도 없이 환자들은 물론 보호자, 심지어 주취자들까지 뒤섞여 있는 것이 우리나라 응급실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꼭 명절연휴가 아니라 평소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응급실은 그런 목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짜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신속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응급실은 순기능을 하기에 너무나 여유가 없다.

우리나라 특유의 응급실 과밀화 현상은 유명무실한 의료전달체계의 혼란에서 기인한다. 2015년을 강타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도 의료전달체계의 혼란으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현상이 주원인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응급실로 인해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메르스가 급속도로 전파된 것이다.

기자가 지난해 일본 홋카이도국립병원에 견학을 갔을 때 생각이 난다. 북해도에서 가장 큰 국립병원이라고 해서 은근히 기대하고 갔는데 환자가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놀랐다.

특히 응급실 내원 환자는 당시 단 한명도 없었으며 우리나라 응급실처럼 규모가 크지도 않았다. 응급실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이 병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병원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는 하루에 서너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필요한 시설과 기구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응급실의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다 게이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차장은 “한국 특유의 응급실 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한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만큼 응급실 규모가 크고 과밀화된 곳이 없다고 한다. 이 점을 더 이상 간과해선 안된다.

이로 인해 유례없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까지 겪은 마당에 응급실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부와 의료계의 노력은 물론 국민적 공감대도 하루 빨리 형성돼야 한다. 입원실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우선 응급실에 입원하고 추후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