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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대전협, 전공의특별법 국회 통과 호소

“법안 심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슬픈 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25일 전공의특별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30일 심의 대상에 빠진 것을 두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대전협은 호소문에서 “전공의들이 약자로 그저 법에 의해 보호받고 싶을 뿐이지 사제지간의 신고를 원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며 “후배 의사들이 좀 더 나은 의료환경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언급했다.

이하 호소문 전문.


<호소문>

전공의들이 고합니다.

11월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는 초겨울의 아침, 밤을 지샌 응급실 근무 후 떨리는 다리와 떨어지는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이 편지를 씁니다. 병동에서 선잠이 들 정도로 피곤하지만 남아있는 아침 회진의 긴장으로 아슬아슬한 정신을 부여잡고, 우리 전공의들의 현실이 안타까워 이렇게 애소합니다.

11/25 저녁,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전공의들의 희망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안' 이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 번, 그리고 통과하지 못한 이유에 또 한 번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전공의들은 주당 100 시간 이상의 근무를 하며 대한민국의 의료를 짊어져왔습니다. 부족한 인프라에도 잠 못 자며 수련 받고 열심히 진료하신 의료계 선배님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의료는 단기간에 발전할 수 있었고, 후배들은 존경의 마음으로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가 질적, 양적 성장을 이뤄냈으니 이제는 숨 가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의료를 키워내는 의료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줄 때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근로기준법이 주 40시간 전후로 수렴하는 것은 그 정도에서 일과 개인의 삶, 건강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전공의들은 주 100시간 넘는 수련을 계속해왔고, 이제 주 80시간 근무를 포함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그 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전공의 특별법’이 선배님들을 통해 발의되었습니다.

병원 측은 이 문제가 의료계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이며 사제지간 신고를 통해 처벌하는 법이므로 좋지 않은 법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병원의 노력은 없이 전공의 특별법은 실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줄이면, 당장은 병원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며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병원계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저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힘없는 전공의들이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것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졸리운 주치의에게 아픈 몸을 맡겨야 하는 환자들의 불안함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까?

병원, 특히 요즘처럼 대형, 기업화된 병원에서 병원은 갑이고 우리 전공의들은 을입니다. 힘이 있는 집단이 먼저 희생하며 힘없는 전공의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면, 이런 것은 ‘갑질’ 이 아닐 것이나, 저희는 힘없고 돈 없는 ‘절대 을’ 전공의 입니다.
이러한 저희들에게 병원 측의 노력 없는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갑질’ 이며 그 피해는 젊은 의사들, 그들이 보아야 할 환자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이 일하고 있는 병원에 돌아갈 것입니다.

병원 측은 지방 중소병원의 인력 공백을 우려하지만, 실상은 우리나라에서 수익이 가장 높다는 대형병원부터 앞장서서 구성원의 동의 없는 불법적인 임금인하를 계획, 실행하고 있으며, 힘없는 전공의들은 하루아침에 통상임금이 30% 이상 깎여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어떤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른 채 지내고 있습니다. 자정능력에 의해 의료계 내부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도 하지만 ‘갑’ 과 ‘을’ 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자정능력의 한계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우리 전공의들은 약자로 그저 법에 의해 보호받고 싶을 뿐이지 사제지간의 신고를 원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전공의들이 우리나라 의료를 짊어지고 묵묵히 일해 왔던 지난날들을 떠올려 주십시오. 전공의들은 자신의 안위에 앞서 혹시나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꾸벅꾸벅 졸면서 중환자들을 돌봤고 희생을 감내해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전공의는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말로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의 폭력이며, 안전하고 친절한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환자들에 대한 위협입니다.

전공의 특별법이 입법되어 전공의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개선될 때쯤이면, 지금의 전공의들은 전공의의 신분을 벗어나 어쩌면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전공의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후배들인 의대생들과 미래의 의대생들은 좀 더 나은 의료환경에서 일 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 선배 전공의들은 그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답은 없습니다. 큰 틀에 대해 합의하고 보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문제점만을 내세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며, 발전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의료현실 속에 환자의 건강권은 침해당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우리의 선배님. 대한민국의 의료가 큰 아픔을 겪고 있고 병원이 전공의들의 희생만으로 굴러갈 수 있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병원에서 전공의의 영역을 넘어 환자의 숨이 넘어갈 때 의지할 수 있는 곳이 교수님과 병원뿐이듯, 우리 전공의들의 기본권과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우리가 의지할 곳 역시 우리가 속한 병원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선배님.
전공의들에 의존해 대형병원이 굴러가는 지금의 왜곡된 의료가 회복되고, 피곤하여 지친 의사들로부터 환자의 생명이 보호되는 그 길로 후배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2015년 11월 30일

대한전공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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