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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

선병원 이승구 박사

인간에게 개와 오리의 피를 수혈했다? 마취제가 없던 시절의 수술과 제왕절개는 어떻게 했을까? 진정한 ‘의학의 아버지’는 히포크라데스? 고흐와 뭉크가 앓았던 정신병은? 유럽 약국 입구에는 왜 뱀이 휘감긴 막대기가 그려져 있을까? 수 천년에 걸친 예술작품 속에서 고대 주술 의료 행위부터 21세기 첨단 의학, 미래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낸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최근 선병원재단(이사장 선두훈) 대전선병원 정형외과 이승구 박사가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생각정거장)’를 출간했다.

이 책은 고대 벽화, 파피루스 조각, 중세 필사본, 근대 명화, 의학 교과서의 삽화 등을 통해 수 천년 의학의 역사를 보여준다. 21세기 최첨단 의학이 있기까지의 시행착오, 그리고 그것을 줄이려는 의료진의 노력 등 그림 속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의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

평생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해온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와 그림들은 쉽고 흥미진진하다. 때로는 안타깝고 잔인하며, 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고대에는 주술사나 무당이, 중세에는 수도사가 의료 행위를 했다. 혈액형이 발견되기 전 17세기엔 인간과 동물 간 목숨을 건 수혈이 이루어졌다. 1차 세계대전까지도 마취 없이 톱과 칼로만 다리를 절단한 후 화약 가루로 불을 붙여 지혈하는 원시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 소독이라는 개념도 19세기에야 등장했다. 환자의 상처를 단단히 동여매서 썩게 했으며 손을 씻지 않아 세균 감염으로 많은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런 시행착오는 근대 의학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고통을 줄여주는 마취제의 등장, 항생제 페니실린의 발견, 청진기의 발명 등은 인류가 생명 연장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의사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에는 주술사나 무당이 의료 행위를 했고, 중세에는 수도사가, 15-16세기에는 이발사가 외과 수술을 했다. 중세에는 의료가 귀족들만의 특권이었고, 병원은 환자를 진료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고아, 빈민, 노인, 장애인을 수용하는 시설에 가까웠다. 

평민과 노동자를 위한 시민병원이 설립된 것은 18세기 이후였다. 당시 병원은 비위생적이고 비인도적이었다. 이에 영국 간호사 나이팅게일은 과학적 의료, 인간적 간호, 직업 간호사 제도, 의료를 중심으로 한 병원관리 등 근대 병원의 개념을 세웠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환자에 대한 개념도 변화했다. 중세에는 질병이나 환자를 악마의 소행으로 여겼고, 의료 행위는 악마와 싸우는 것으로 여겨졌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인체 해부학과 이를 기초로 병리학, 생리학, 내과학, 외과학이 정립됐다.

과거 의학의 실수와 오류, 그리고 극복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의학이 나아갈 미래까지 가닿게 된다. 조기 질병 유전자 검색, 첨단 의료 장비의 개발, 진단 기술의 발달, 3D-CT를 통한 조직 합성, 로봇 수술의 확대 등으로 향후 인간의 기대 수명은 130세 이상으로 늘어난다.

그럼에도 저자가 안내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들은 어떤 생명체도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21세기 인간들도 고대 인류와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늙고 아프고 죽는다. 그럼에도 인류를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살게 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의학은 미래를 향해 끝없이 발전해나가고 있다.

이승구 박사는 “오랜 시간 희소한 의학사의 단편들을 찾아 전 세계 유명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들을 섭렵해 왔다”며, “150여 편의 예술작품들 속에 담긴 의학의 역사는 인류의 생로병사 이야기이자 인간에 대한 기록 자체이기 때문에 과거 의학에 대한 이해는 물론, 현재와 미래의 건강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으면 한다”고 출판 소감을 밝혔다.

이승구 박사는 대전선병원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골종양 및 소아정형 분야의 명의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대학교 정형외과 주임교수, 여의도성모병원 부원장, 대한골관절종양학회와 대한수부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