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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체외진단기기 선진입후평가 논쟁, “제도 폐기” VS “몰이해”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두고 환자•의료진 대 산업계•정부 갈등 심화

내년 1월 우선적으로 시행될 감염병 관련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의 ‘선진입 후평가’ 제도를 앞두고, 신의료기술평가 면제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제기되며 이해관계자들의 팽팽한 의견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체외진단기기는 인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아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의 평가만으로도 사실상 충분하며, 출시 후 모니터링을 통해 후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중지나 퇴출 방안까지 마련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환자와 의료인들은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의 평가로 충분하다면 후평가 역시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며, 후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의료기관을 임상시험 기관으로 취급하고 사실상 기업이 해야 할 임상시험을 환자의 돈으로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1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정의당 윤소하 의원(비례대표) 주최로 의료기기 규제완화 문제점과 보완책을 논의하는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 신의료기술평가 면제' 관련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정부는 지난 7월 ‘혁신 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하며,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의 경우 식약처 허가 후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우선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입 후평가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원규 식약처 체외진단기기과 과장은 “체외진단용 의료기기는 사람으로부터 유래하는 검체를 체외에서 검사하기 위해 단독 조합하여 사용되는 시약, 대조•보정 물질, 기구•기계•장치, 소프트웨어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을 말한다”고 말하며, “인체 밖에서 진행되는 검사이기 때문에 인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으며, 따라서 체외진단기기의 안전성은 감염과 같은 취급 과정에서 생기는 개인 및 공중 위해성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체외진단기기의 등급은 4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분류 기준은 ‘개인 및 공중 위해성’으로, 위해성은 ▲사용목적 및 주의사항, ▲사용자의 전문성, ▲진단정보의 중요성, ▲진단검사 결과의 영향력을 판단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수혈용 HIV, HBV, HCV 선별 시약 혹은 혈액형 확인 시약과 같이 개인 및 공중 위해성이 높은 검사 기기는 가장 높은 4등급에 속하며, 균동정배지, 유전자추출시약 등 위해성이 낮은 기기는 1등급으로 분류된다.


이원규 과장은 “체외진단 의료기기의 국내 허가 시스템은 규제 선진국과 비교해도 동등한 수준의 자료와 절차를 따르고 있다”고 강조하며, 체외진단기기가 인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만큼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의 평가만으로도 안전성 평가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정부 측 인사들도 이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신준수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 과장은 “체외진단기기도 여타 기기와 마찬가지로 안전성, 정확성, 임상적 유효성이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식약처의 허가 과정에서 임상적 유용성 평가는 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강변했다.


참고로 국내 체외진단 의료기기 허가 시 제출자료는 ▲명칭(제품명, 품목명, 모델명), ▲모양 및 구조, ▲원재료, ▲제조방법, ▲사용목적, ▲사용방법, ▲사용시 주의사항, ▲포장단위, ▲저장방법 및 사용기간, ▲시험규격이 기재된 신청서와 ▲개발경위, 측정 원리•방법 및 국내외 사용현황에 관한 자료, ▲원재료 및 제조방법에 관한 자료, ▲사용목적에 관한 자료, ▲저장방법 및 사용기간에 관한 자료, ▲성능에 관한 자료, ▲체외진단용 의료기기의 취급자 안전에 관한 자료, ▲이미 허가•인증 받은 제품과 비교한 자료 등을 포함하는 첨부자료로 구성된다.


신준수 과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규제 선진국들의 모임에 가입되어 있으며, 글로벌 수준의 규제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며, “식약처 허가는 종합적인 안전관리의 일환이며, 허가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안전관리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애련 심평원 의료행위등재부 부장은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번 체외진단기기 규제 개혁에 대해 신의료기술평가 ‘면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는 식약처 허가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유예한다는 것이지 면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선진입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니터링을 통해 후평가를 진행할 것이며, 비용효과 또한 급여 단계에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과장 역시 “체외진단기기는 환자의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지금까지의 신의료기술 탈락 사례를 살펴봐도 안전성 문제로 탈락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으며, 대부분 기존 기술과의 동등성을 입증하는 문헌 부족의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당연히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대전제 하에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선진입 후평가 제로를 마케팅적으로 악용하는 업체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중지나 퇴출 방안까지 마련하고 있어 조만간 사후평가 관리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으로 참석한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정부가 체외진단기기는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검체검사는 환자를 진단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며, “진단기기의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으면, 환자에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처방이 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약처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는 완전히 다른 과정”이라고 말하며 “식약처 허가는 업체의 제출자료만을 평가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는 그 기기로 의료행위를 했을 때 실제 환자에 효과를 내는지, 문제가 없는지 등을 평가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허가가 기기 자체의 품질을 평가한다면, 신의료기술평가는 임상에 적용됐을 때의 유효성을 평가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진한 정책국장은 “이번 체외진단기기 규제 완화는 ▲부정확한 진단으로 인한 피해와 ▲불필요한 검사 난립으로 인한 피해, ▲건강보험 보장성 악화 및 재정 낭비, ▲원격의료 등 의료민영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선진입 후평가 제도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또한 “후평가를 한다는 건 결국 의료기관을 임상시험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근거가 축적되지 않은 제품을 왜 국민이 돈으로 임상시험을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류현미 제일병원 교수 또한 체외진단기기 선허가 후평가 제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류 교수 역시 “후평가 시행 의료기관은 임상시험 기관이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게다가 병원에서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들은 진단검사의학 전문가의 추천에 의해 진단기기를 사용하게 될 텐데, 평가기간 동안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환자를 직접 본 임상의가 질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책임 소지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류현미 교수는 “시장 진출 문턱이 높다는 산업계 주장도 일부 공감한다”고 말하며, “하지만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을 줄이거나 기준을 달리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꼭 선진입 후평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면, 모니터링이 가능한 일부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산업계를 대변한 이정은 수젠텍 부사장은 “현재 식약처의 체외진단기기 허가 수준은 국제적 규제와 동등한 수준으로, 절대 녹록치 않으며 심지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하며, “그렇게 허가를 받고도 제품도 출시 못하는 것은 이중 규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체외진단기기 산업은 성장세에 있는 분야로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고, 고용 또한 늘리고 있다”고 말하며, 체외진단기기 산업의 사회기여도를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김재규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좌장으로 하여, 류현미 제일병원 교수, 이정은 수젠텍 부사장,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김애련 심평원 의료행위등재부 부장, 신준수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 과장,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과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