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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료영리화 없다는 정부, 못 믿는 국민

이전 정부에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진 의료영리화 논란이 국내 1호 영리병원 개원 허가와 동시에 재점화되기 시작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성형외과 · 내과 등 4개 과목을 진료하는 조건으로 개설 허가가 내려졌으며, 국민건강보험법 · 의료급여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 같은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이하 원 도지사)의 결정에 시민단체 · 의료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크게 반발했고, 국회에서도 이것이 의료영리화의 출발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시민단체는 금년 10월 숙의형 공론조사에서 제주도민 58.9%의 반대로 결정된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를 뒤집은 원 도지사의 퇴진을 요구하며, 영리병원 사업계획서 승인 철회를 보건복지부에 촉구했다.

이와 더불어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의 원격의료 문제도 불거졌다. 정부는 1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첫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스마트폰을 활용한 만성질환자 비대면 모니터링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2019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일차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 맞춤형 케어플랜을 수립하고,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환자 관리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원격의료는 굉장히 제한적으로 시작 · 접근하고자 한다. △오지에 있는 장병 △도서 벽지에 있는 주민 △원양어선을 탄 선원 등 의료 접근성이 굉장히 제약돼 시급하게 원격의료가 도입돼야 할 의료 취약 대상부터 먼저 도입한다."며, "이외 본격적인 의사 · 환자 간 원격의료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 접근성 강화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언했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단계적 · 제한적이라는 단서를 붙여 진행한다는 방침을 내걸었지만, 의료계는 이로 인해 오진 가능성이 커지고, 개인정보 유출 · 기기 구축비용 증가 · 과잉진료 · 대형병원 쏠림 등 여러 문제점이 유발될 것이라며, 본 정책이 원격진료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런데 사실 영리병원은 지역 경제 · 관광 사업 활성화, 원격의료는 의료 접근성 · 환자 관리 수준 향상 등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특히, 원격의료의 경우 의료 취약지 내 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존재해 일차의료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방향에도 약간의 균열이 일어난다면 결국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건강보험 제도가 붕괴할 여지도 충분하다. 시민 · 의료계가 전망하는 무력화된 의료시스템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우려다. 

이 같은 시민사회의 걱정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제주녹지병원은 제주특별법에 의해 제주도에 한정된 특수 사례로, 영리병원이 전국에 확대된다는 건 지나친 표현"이라면서, "현 정부는 영리병원을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의 경우 일부에서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우려한 동네 의원이 신기술 진입을 막는다며 밥그릇 싸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과연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제주도에만 그칠 것인지, 계속 외국인에게만 국한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될 거다. 타 지역에서 이 같은 요구가 터져 나올 때 복지부는 과연 어떠한 기준 · 잣대를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건지 의문이다."며, "원격의료의 경우 격오지 · 군부대 · 교도소 등 불가피한 지역에 한해 제한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사업 계획이 있으나 그것조차 막아서는 것은 이것이 의료영리화의 출발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각계각층의 반대 · 우려에도 정부는 오해에 대한 불식을 뒤로한 채 일명 의료영리화로 불리는 정책의 추진 의지를 꺾지 않을 것 같다. 이는 한정적 · 단계적으로 할 테니 믿고 따라와달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한 현 상황에서는 막연한 믿음보다는 근거 없는 우려에 설득력이 더 실린다. 그 어떤 가설에도 의료인력난 · 일차의료 약화를 겪는 상황에서 의료시스템 붕괴라는 위험 발생 소지는 충분하다. 즉, 단순한 불식만으로는 아무리 좋은 의미의 정책이어도 어떤 시도든 매번 무산될 것이다. 

그러니 일차의료 강화, 더 나아가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선결 과제다. 더 좋은 것을 시도하기 전에 기존의 것에서 부족한 부분을 탄탄하게 만든 후 진행해야 한다. 의료영리화는 없을 거라는 정부 말을 국민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도록 기본 의료 정책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며, 법 · 제도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전면 차단하여 국민이 의료영리화로부터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는 공공성을 근간으로, 모든 국민이 건강을 당연히 누릴 권리에서 존재한다. 튼튼하게 잘 지은 집만이 거센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