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기관/단체

실손보험 청구대행 의무화, 보험사 편익 위한 법안!

"의료기관 의무화는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위헌적 발상"

지난해 9월과 금년 1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 전재수 의원은 실손보험금 청구를 의료기관이 대신하고 그 심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시행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본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계약자 등은 요양기관이 보험금 청구를 대신 하도록 요청할 수 있으며,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해당 요청에 따라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와 관련해 대한의원협회(이하 협회)는 15일 '의료기관의 실손보험 청구대행 의무화 법안은 실손보험사의 편익만을 위한 위헌적인 법안'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법적 의무가 없는 의료기관에 관련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극히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 실손보험 청구는 민간보험사의 '사적' 계약 사항

협회는 "의료기관은 어떤 환자가 실손보험에 가입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 또,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여도 환자가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절차에 의료기관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협회에 따르면, 고용진 · 전재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한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실손의료보험 문제는 보험계약 당사자 간 법률관계에 관한 사항임에도 보험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 관련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울러 "실손의료 보험금 청구 관련 사항은 가입이 강제되는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업재해보상보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른 책임보험, 연말정산과 같은 공적 제도가 아닌 민간보험사의 사적 계약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요양기관에게 그 본연의 업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민간보험계약 관련 사항에 관해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식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의거해 협회는 "민간 영역인 의료기관의 경제활동을 공권력을 활용해 제한 · 간섭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법적 의무가 없는 요양기관에 청구대행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극히 위헌적인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 보험업법 개정안, 의료기관의 의료법 위반 교사

의료법 제21조(기록 열람 등) 제1항 · 제2항에 따르면, 환자는 의료인 · 의료기관장에게 본인 기록에 대한 열람을 요청할 수 있고,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으며,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환자 기록을 확인할 수 없도록 했다. 

예외 경우를 명시한 동법 제3항에서도 계약자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이 민간보험사에 전자적으로 환자 기록을 전송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협회는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환자 기록을 전송하는 것은 아무리 환자가 자기 의무기록 전송에 동의했어도 의무기록 타인 열람을 금지한 의료법 제21조 제2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협회는 "보험업법은 의료법의 상위법도 아니며, 환자 진료기록은 의료법 규율을 받는다. 즉, 이번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의료법 위반을 교사하고 있다."며, "이 같은 보험업법 · 의료법 충돌 문제는 결국 의료법 개정 방향으로 해결하려 들 수 있다. 여기에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의료법 개정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데 이와 무관한 금융위원회 소관 법률인 보험업법 개정에 떠밀려 의료법을 개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 전자식 전송 의무화로 민감한 질병 정보 대량 유출될 것!

국회 정무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전자적 전송은 환자 개인정보의 유출 우려가 크고, 정보 유출 시 책임 소재 관련 논란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종이로 청구서류를 제출하면 개인정보가 보호되고, 전산으로 제출하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는 의료계 주장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했다. 

협회는 "전자식 전송이 가능해지려면, 요양기관 · 위탁기관 · 보험사 간 전산시스템이 구축되고, 각 기관 간 시스템이 연결돼 자료 공유가 시시각각 이뤄져야 한다. 즉, 해킹 · 랜섬웨어 등의 공격으로 수백만 명의 질병 정보가 순식간에 유출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2018년 기준 1천 5백만 명에 달하는 환자 기록이 유출됐으며, 이 유출된 환자 기록은 2017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앞서 2015년에는 미국 건강보험사 앤섬(Anthem)에서 해커 집단에 의해 무려 8천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협회는 "우리나라도 2014년에 14개 보험사에서 1만 3천여 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이들 보험사와 위탁 관계에 있는 보험대리점에서 고객 정보를 불법 유통한 것이다. 유출된 정보에는 가입자가 제출한 질병 정보도 포함됐을 수 있지만, 전자식 전송보다는 유출된 정보 범위가 적을 수 밖에 없다."며, "향후 전자식 전송이 의무화된다면, 가입자의 아주 민감한 질병 정보가 고스란히 대량 유출될 위험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청구 대행 의무화로 보험 관련 종사자 상당수는 일자리 잃어 

협회는 "금융위원회는 실손보험 심사 강화 및 보험금 누수 방지 대신, 의료기관 청구 대행에 따른 국민 편익을 강조했다. 그 결정판은 바로 이번 개정안이며, 소비자단체는 대대적인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러나 정말로 두 개정안은 소비자 편익만을 위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소비자와 함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사유는 △'금액이 너무 적어서'가 65.7%로 가장 높았고 △'시간 부담 및 번거로움'이 11.4%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지난해 7월 보험연구원이 성인 2,440명 대상으로 실시한 실손보험금 미청구 실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상당수가 공제액을 초과하지 않은 소액이 실손보험금 미청구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동 조사에서 나타난 미청구 비율은 △외래는 1만 원 이하가 87.7% △약 처방은 8천 원 이하가 93.4%를 차지했다. 공제액을 초과했어도 청구하지 않은 비율은 △외래는 12.3% △약 처방은 6.6%에 불과했다.

협회는 "이번 개정안은 번거로운 청구 절차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청구대행 의무화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상기 조사에서는 고액 진료비는 대부분 청구하고, 공제액을 살짝 초과할 정도의 소액은 대개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보험업계 · 국회의원이 의료기관 청구 대행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심사 강화 때문이라고 했다. 

협회는 "의료기관을 통한 청구대행 서비스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 정부는 실손보험 심사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 위탁하려 할 것이다. 심평원도 금융위원회 및 국회의원 주장에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금융위원회 · 보험사는 의료기관의 청구대행 의무화를 통해 심평원에 실손보험 심사를 위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청구 대행을 의무화할 경우 보험사는 가입자들의 민감한 질병 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할 수 있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는 보험금 지급 거절과 고위험군 가입 거절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종이 제출 서류를 일일이 수기로 전산 입력할 인력이 불필요하며, 일부 요양기관과 보험사 간 계약으로 이뤄지는 모바일 앱 등을 활용한 서비스에 지급하는 외주 용역비도 아낄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즉, 협회는 이번 개정안이 보험업계가 의료기관이 청구 대행한 환자 정보를 축적하고 심평원에 심사를 위탁해 현재 업무량의 상당 부분을 의료기관에 떠넘기려는 속셈이라고 했다. 또, 의무화 과정에서 34만 명의 보험설계사와 6만 명의 보험업계 종사자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고 했다.

◆ 정작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역행하고 있다. 

2016년 12월 20일 보건복지부 · 금융위원회 · 금융감독원은 공동으로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안에서는 보험사 제출 서류를 구비해 직접 방문하는 번거로움이 소비자 불편을 초래한다며, 온라인을 통한 간편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도록 2017년 중으로 모든 보험사에서 모바일 앱 청구 서비스를 제공하게 했다. 그런데 이 서비스는 현재 일부 보험사에서 극히 제한된 형태로만 운영 중이다. 



또, 해당 안에서는 보험금 청구서 · 진료비 영수증 외 통원 치료 시 추가서류 제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3만 원 아래로는 병원 영수증 △3~10만 원은 병원 영수증과 처방전 △진료비 세부명세서 등 추가 서류는 10만 원 이상인 경우에만 받을 수 있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험사는 3만 원 이하 소액에 대해서도 진료비 세부명세서를 요구하고 있다. 즉, 보험사 스스로 보험금 청구를 어렵고 번거롭게 해 사실상 지급을 줄이는 것이다. 

협회는 "이처럼 보험사는 청구 간소화에 역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입자가 번거로움 때문에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니 의료기관에서 실손보험 청구를 대행하라고 한다. 상당히 뻔뻔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한편, 해당 안에는 보험금 미청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해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합리적 의료서비스 이용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있다. 

협회는 "이는 소액이라서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청구대행 의무화 법안, 즉각 폐기해야!

협회는 "이번 개정안은 소비자 편익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자동차보험처럼 심평원 심사위탁으로 가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 소비자들은 소액 미청구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좋아할지 모른다. 그러나 심평원 등을 경유해 보험사에 축적된 환자의 질병정보 데이터는 보험 가입 거절, 보험료 인상, 보험금 지급 거절의 용도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또한, 보험사가 보험설계사를 비롯한 상당수 직원을 감원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협회는 "소비자단체가 이 법안을 극구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구 간소화를 주장하는 보험사는 아주 소액임에도 정작 각종 서류를 요구해 소비자 청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청구 간소화에 역행하는 보험사 행태는 왜 비판하지 않는 것인가? 소비자보다는 대형 보험사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단체인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