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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진주 방화 · 살인사건, 왜 막지 못했을까?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신건강 안전망 마련 시급

최근 진주 방화 ·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치료가 중단된 정신질환자에 의한 충격적인 사건이 연일 보도되면서 당사자에 대한 사회 편견이 다시금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를 격리할 경우 치료로부터 숨게 돼 우리 사회는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전문가는 정신질환자들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인프라 마련이 이번과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는 가장 근본의 해결책임을 강조했다. 

24일 오후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스칸디아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이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 주제로 발제했다.



◆ 자살 유가족과 최초 접촉하는 경찰 · 공무원 역할을 법에 규정해야!

중앙자살예방센터 자살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자살자는 12,463명이며, 1일 평균 34.1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추이를 살펴보면, 1997년 외환 위기를 필두로 2002년 금융 위기,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 자살률이 급증했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한 2008년 10월에는 전년 같은 달 대비 자살자가 800명 증가했다. 800명의 자살자는 해당 연예인과 전부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반면, 자살자가 감소한 시기도 있었다. 2012년 10월 그라목손의 생산 · 판매가 금지되면서 자살자가 전년 대비 477명 감소한 것이다.

백 센터장은 지난해 발생한 증평 모녀 사망 사건을 언급했다. 해당 사건은 남편이 자살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여성이 어린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망 후 넉 달 만에 발견된 사례로, 자살 유가족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왜 증평 모녀는 구조를 요청하지 못했을까? 백 센터장은 자살 유가족과 최초로 접촉하는 경찰 및 동사무소 공무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자살 유가족은 100% 경찰과 만난다. 그런데 경찰의 관심은 해당 사건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여부에만 관심이 있다. 일본에서는 자살 유가족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내용을 경찰이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또한, 유가족 조사 시 경찰의 태도, 자살 원인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법에 규정해놨다."고 말했다.

자살 유가족이 작성한 사망진단서를 제출받는 동사무소 공무원의 태도도 지적했다. 백 센터장은 담당 공무원이 유가족에게 '많이 힘들었나요?', '지금 힘든 점은 없나요?',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요?'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살은 어떤 사람에게 위기가 연속적으로 일어났을 때 구조할 기회가 있었어도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아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자살예방법 제1조에서는 자살을 '내몰린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백 센터장은 "소리 없이 12,463명이 자살로 사망하는 이유는 모든 게 본인의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도와줄 사람 없는 나라에서 자살률이 높은 건 너무나도 당연

미국에서는 자살을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80년대 미국에서는 대학 기숙사에서 학생 자살이 다빈도로 발생했다. 이에 자살자의 유가족은 해당 대학을 고소해 보상금을 받아 자살유가족재단을 설립했고, 자살 인식 개선 운동,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전략 수립 등을 추진했다.

백 센터장은 "자살시도자를 가족에게 인도하고, 본인과 가족이 원하지 않아도 집으로 돌려보내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자살 시도자를 마음이 다친 중상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 전문가들이 72시간 동안 입원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경찰에게 응급입원 권한을 부여하라고 주장하는데, 경찰에게 응급입원 권한을 부여한 나라는 미국, 그것도 일부 주밖에 없다. 다른 국가에서는 응급입원을 응급의료기관장이 판단한다."며, "또, 미국에는 민간자살예방협의회가 없는 주가 거의 없다. 민간자살예방협의회에서는 한 명이 자살하면 검시관부터 의료, 복지 관련 전문가가 모여서 자살 예방 방안을 토론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OECD 35개국 중 28위에 해당하며,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 수를 묻는 조사에서는 꼴찌를 차지했다. 

백 센터장은 "자살은 희망과 도움이 없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결과이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자살률이 높은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했다.

◆ "신체 질환 있는 자살 시도자는 입원 거부당해"

2016년 경찰청이 발표한 자살 원인 자료에 따르면, 정신과적 질병 문제가 36.2%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어 경제생활 문제 23.4%, 육체적 질병 문제 21.3% 순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심리부검에 따르면, 88.4%는 자살 사망 시 정신질환으로 진단됐다. 우울증으로 인한 부정적 사고는 도움 요청을 제한하지만, 정신질환 치료율은 편견 ·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8.9%에 불과하다.

아울러 자살자의 93.4%는 경고신호(Warning Sign)를 드러낸다. 경고신호는 대상자가 자살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를 의미하며, 언어 · 행동 · 정서적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경고신호 인지는 3분의 2가 사후에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자살 시도가 발생했을 때 경찰이 출동하여 신체적 손상이 없는 경우 보호자에게 인계한다. 만일 자살 시도자에게 신체적 질환이 있으면 정신병원 입원이 불가능하며,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서도 풀베드라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한다.

백 센터장은 "자살 시도 발생 시 경찰은 우선 지정병원 응급실로 이송해야 하며, 응급입원 또는 보호자 인계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경찰은 설득 없이 무조건 수갑을 채워서 데리고 오는 게 아닌, 공식 교육과정을 통해 상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동경에서는 총 12배드의 정신응급 지정 병실을 세 군데로 나눠서 항상 비워놓는다. 자살 시도자가 발견되면 1399와 같은 전화로 경찰에게 빈 병실을 알려주고, 다음 날 당사자를 타병원으로 이송시킨 후 병실을 비워놓는다.

백 센터장은 "이번 진주 방화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이 7번이나 신고를 받았는데 단 한 번도 정신질환을 떠올리지 못했다. 미국 경찰처럼 정신응급 교육을 매년 8시간 이상 받았더라면, 출동 시 정신건강전문가와 함께 출동했다면, 지정 응급실에서 자살 시도자를 언제든 받아줬다면, 적지 않은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국립병원은 '언제든 받아준다'는 믿음 있어야!

일본의 자살예방대책 핵심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로, 자살 시도자가 발생한 지자체에 자살자 수와 자살률, 주요 자살 경로 등이 통보되면 해당 지자체는 자살 예방 대책 패키지 중 하나를 선택해 시행한다. 

일본 자살예방정책위원회 구성원을 보면, 위원장은 총리, 위원들은 모두 장관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도 법이 개정돼 오는 6월부터는 일본과 같은 구성으로 진행된다.
 
백 센터장은 "정신 건강 및 자살의 위기는 결국 여러 스트레스 요인, 신체 질환, 트라우마가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 필요한 복지 및 지역사회 서비스의 부재로 발생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만에서는 자살 시도자를 확인하면 무조건 자살예방센터에 통보해야 한다. 해당 센터에서는 통보를 받은 후 2주 내 당사자 집으로 찾아가며, 경제적 지원을 비롯하여 주거 등 각종 복지서비스를 자살 예방과 연결한다.

백 센터장은 "대만에서는 시립병원 응급실 옆에 ICU(Intensive Care Unit, 중환자실)를 마련해 응급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며, 간호인력도 정신질환자 1명당 2명을 배치한다."며, "당사자에게 신체상 문제가 있는 경우 응급 상황을 위해 항시 베드를 비워놓는 국립의료원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즉, 대만 국립의료원에서는 응급상황을 대비해 베드를 항상 비워놓기 때문에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절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신체적 문제가 있는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병원이 마땅치 않다. 

백 센터장은 "'국립은 언제든 받아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국립 병원에 대한 시민의 사랑 · 인정과 권위가 생긴다. 그러나 현 시스템상 우리나라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 격리하면 더 위험, 지역사회 치료 인프라 조속히 마련돼야

한편, 지난해 7월 발생한 영양 경찰관 사망 사건의 경우 피의자는 7년 전 이미 폭행치사 경력이 있는 중증 환자였다. 지난 7일 발생한 진주 방화 · 살인사건의 피의자 또한 2010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한 달간 공주에 있는 치료감호소에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현행법상 보호의무자는 자 ·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퇴원시킬 수 있다. 퇴원을 의사가 만류하는데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족은 결국 퇴원을 시킨다. 

백 센터장은 "이 판단을 왜 가족에게 맡길까? 이 판단은 법원 또는 국가가 해야 한다. 이를 보호의무자에게 맡겨놓고 누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사문화된 법을 살려야 한다. 또한, 자 · 타해 위험이 큰 환자 대상의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공무원도 아닐뿐더러 권한도 없다. 충분한 인력을 투입하고, 이들의 고용을 안정화해야 한다."며, "조현병 환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격리하고 가둬놓는다면 이들은 치료로부터 숨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더 위험해진다. 지역사회 내 쉽게 치료 · 지원받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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