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소아연령대에 한해 폭 넓은 국가예방접종(NIP)을 실시하고 있지만, 성인에 대한 지원은 미흡했다. 주요 백신들이 성인에서 전액부담으로 남겨진 가운데 낮은 예방접종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전액지원 아니면 전액부담(all or none)'이라는 국가예방접종의 틀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가가 권장하면서, 보장하지 않는 여러 백신에 대해 건강보험 또는 지방정부가 일부 부담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고려의대 감염내과 정희진 교수는 19일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열린 ‘국내 성인 예방접종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이 밝혔다.
정 교수에 따르면, 국가예방접종은 2019년
기준 소아에 대해 BCG(피내용), B형간염, DTa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Td(파상풍/디프테리아),
Tdap(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IPV(폴리오), DTaP-IPV(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폴리오) 등 17종 백신을 지원하고 있다.
65세 이상에서는 폐렴구균(23가 다당질 백신; PPV23)과 인플루엔자 백신을 지원하고 있고, 올해부터 임신부에 대해서도 인플루엔자 무료접종을 실시한다.
정 교수는 “성인 국가예방접종은 1970년대 급성 감염병이 감소하면서 관심이 떨어졌다”며
“이후에는 주요 감염병의 고위험군에 대해 임시적으로 접종이 실시된 수준에 그쳤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인구고령화와 입원률 증가 등으로 성인예방접종의 중요성이 다시 조명됐다”며 “고령층을 대상으로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에 대한 국가예방접종이 실시된 계기”라고
정리했다.
65세 이상의 예방접종률은 국가지원 여부에 따라 차이가 컸다. 국가예방접종인 PPV23은 61%,
인플루엔자 백신은 84.3%를 기록했다. 반면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13가 단백결합 백신(PCV13)은 11%, Td 등은 6.3%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의 예방접종 지침서는 PCV13과 Td 백신 등을 권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중요한 백신이 국가지원 부재로 낮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국가예방접종이 소아에만 집중되다 보니, 질병에 대한 부담은 성인에게 가중되고 있다”며 “지난 2000년 성인에서 홍역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A형간염이 퍼지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또 “이런 공중보건의 틈은 군집면역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성인에게 발생한 홍역 등이 신생아에게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외국의 성인 예방접종 운영사례도 안내했다. 나라별로 보장성과
시스템은 달랐지만, 한국이 참고할 만한 점은 있었다.
먼저 영국은 연령별로 국가예방접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웠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했다. 큰 차이는 정부가 권장하는 백신은 소아, 고령자, 고위험군에 걸쳐 모두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가입한 사보험에 따라
보장하는 백신이 달라지며, 예방접종을 철저히 시장경제에 맡기는 형태다.
일본의 경우 전체 예방접종비용 중 최대 30%까지 지방교부세로 충당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 교수는 “개인적으로 한국이 영국처럼 되면 가장 좋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미국의 제도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반드시 국가가 전액을 지원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정에 맞춰 일부 백신을 사보험이 보장하도록 할 수 있고, 아니면 일본처럼 비용의 일부를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 하다”며
“성인 국가예방접종을 건강보험에 흡수해 선별급여를 적용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방안은 국가예방접종 미포함 백신의 문턱을 낮출 것으로 정 교수는 내다봤다. 접종률이 향상되면, 백신효과평가 시스템의 정착도 기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국가예방접종이 성인과 소아 등 연령에 따른 이분법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A형 간염에 대한 국가예방접종이 소아에서 이뤄지면, 향후 이런 지원은 청소년 연령대로 넓어져야 한다. 군집면역은 특정 연령대만 집중 관리해서는 이뤄질 수 없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