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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후기임상시험 실패 자체는 문제 아냐”

진행 여부 결정이 중요…결과보다 과정 평가해야

지난 해 말 복수의 국내 제약사들의 3상 실패 및 품목 허가 취소 등 좋지 않은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면서, 국내 신약 개발 역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승승장구하던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시장 역시 다소 경직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신약 개발 실패, 그 중에서도 가장 돈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는 3상 단계에서의 실패는 분명 치명적인 사안이며, 회사 자체의 손실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 한승훈 교수는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짧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에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신약 개발 사업이 유망하지 않다거나, 개발사들이 문제가 있다는 등의 단기적이고 다소 감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다양한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발생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할 시기라는 의견이다.


한 교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공감NECA 2020년 2호의 ‘국내 제약‧바이오사의 후기임상시험 실패, 정말 문제일까?’ 기고문을 통해 후기임상시험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후기임상시험 실패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3상을 포함한 후기임상시험 실패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전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모든 신약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을 때, 후기임상시험의 성공률은 50%를 넘지 않으며, 후기임상시험의 결과를 얻은 경우라도 신약 신청(new drug application, NDA) 단계에서 규제기관의 시판 허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특히 후기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수행되는 약물 계열인 항암제의 경우는 다른 적응증을 가진 의약품에 비해 이러한 성공률 및 허가율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동향이다. 다시 말해, 후기임상시험을 개시했다 하더라도 아직 ‘신약이 될 확률은 10~20% 미만이다’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100년에 가까운 신약 개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 또는 다국적제약사에서도 상황이 이러한데, 신약 개발 역사가 10년 남짓인 우리나라 제약사들이 3상 임상시험에 성공하여 신약 허가를 받았다면, 이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물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신약 개발은 설계도를 가진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르다. 그저 개발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아 나가기만 하면 신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공산품들을 빗대어 말하자면, 신제품 개발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고, 그 중 개념증명(proof-of-concept), 양산가능성, 시장성 등의 평가를 통과한 극소수의 기술만이 살아남아 제품이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개별 기술들은 수만번의 시행착오(trial and error) 과정을 거친다.


다만, 신약 개발은 정해진 후보물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물질을 개선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시행착오 대신 수만 개의 후보 물질을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개별 물질에 대한 결과는 이분법적(성공 또는 실패)으로 나타난다.


후기임상시험에 진입한 물질 역시 그러한 수만 가지 물질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물질로써 시판 허가를 위한 최종 단계까지 올 수 있었던 물질이었을 수는 있겠으나, 결국 그 최종 평가의 결과에 따라 ‘실패’라는 결과를 받을 수 있는 물질임을 인지해야 한다.


후기임상시험 실패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특정 제약사가 후기임상시험을 수행한다고 해서 이것만 지나가면 곧 ‘대박이 터진다’라는 잘못된 환상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개발사 역시 후기임상시험 개시의 의미를 과장해 무분별한 투자 유치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후기임상시험을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중요


그렇다면 후기임상시험과 관련해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심지어 후기임상시험까지 왔는데도 신약이 될 확률이 적다면, 우리는 특정 회사가 후기임상 개발을 진행한다고 할 때, 그저 그 제품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도나 해야 하는 것일까? 개발사의 입장에서나 투자자의 입장에서나, 신약 개발은 인내심이 필요한 투자이다.


신약 허가를 받기 전까지 해당 제품은 어떠한 매출도 올리지 못하는데, 그러한 기간이 약 10년에 1조원 가까운 투자액이 발생한다. 따라서, 후기임상시험 실패는 다국적제약사 역시 두려워하는 대형사고이다. 시간과 돈을 최대한으로 투자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후기임상시험 실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는 2000년대 이후 전세계 신약 개발 업계의 가장 주요한 화두가 돼 왔으며, R&D 예산이 막대하고, 수행 중인 후기임상시험 건수가 많은 다국적제약사들을 중심으로 임상시험 설계, 수행, 결과 해석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는 노력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들조차 수백~수천 명을 대상으로 여러 국가에서 수 년 동안 수행되는 후기임상시험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 quick-win/fast-fail 패러다임이다. 후기임상시험 진입 이전 신약 발굴~개념 증명에 걸친 단계에서 최대한 빠르게 광범위한 데이터를 얻어 다학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후기임상시험 성공 확률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자는 것이 이 개념의 핵심이다.


성공률이 떨어지는 후기임상시험은 아예 개시하지 않고 그렇게 확보한 잉여자원을 신규 후보물질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개의 후보물질을 실패 처리하더라도 3상 임상시험 실패로부터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이 소모되며, 보다 많은 후보물질의 개발 기회를 가질 수 있으므로 이익이 된다.


따라서 후기임상시험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1) ‘후기임상시험 수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근거를 제대로 확보했는가?’, 2) ‘그러한 근거에 의거해 수행 관련한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가?’이다.


정말 후기임상시험을 수행할 만해서 수행하는 것인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험 있는 전문가, 적절한 자문과 의견을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 건전한 의사결정 체계 등을 확보한 회사일수록 보다 신뢰성 있는 후기임상 개발을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결과보다는 과정으로 평가해야


결론적으로 이야기할 때, 국내 제약‧바이오사의 후기임상시험 실패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이 옳았는가를 봐야 하는 문제라 하겠다. 다시 언급하지만, 자원, 노하우, 전략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다국적제약사라도 후기임상시험 성공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분명히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전체적인 신약 개발 과정에서 다음 개발 단계로의 진입과 관련한 의사 결정 구조가 우수하다는 것이며, 매우 효율적으로 그러한 의사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일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실패한 후기임상시험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러한 원인을 사전에 파악해 수행 여부 결정에 반영할 수는 없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제약‧바이오 업계 전반에 걸쳐 신약 개발 시 전략 수립과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에 관한 노하우를 공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작업들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실패하면 책임지는 기업 문화의 변화이다.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서 가능성이 떨어지는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계속 끌고 나가 결국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투자된 뒤에 실패라는 성적표를 받는 것보다는 모든 개발 단계에서 성공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며 quick-win/fast-fail을 실현하는 것이 낫다. 또한, 한 개의 후보물질은 시행착오를 통한 개선 가능성이 낮지만, 여러 건의 개발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시행착오의 노하우는 궁극적으로 최선의 임상 개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즉 특정 신약 개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고 해서 이를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는 등의 문화는 개별 프로젝트의 건전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우리나라의 신약개발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는 문제이다. 신약 개발을 제대로 하려는 기업이라면 열린 토론 문화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는 잉여자원의 확보이다. 후기임상시험 등 개발 실패 문제가 과장되는 주요 원인은 대부분의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1~2개의 후보물질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패에 대해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이러한 기업들이 대부분 매출 없이 기업 운영을 투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허용하고 다음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개발 실패가 바로 투자 중단-경영난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가능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도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심지어는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에 대해서도 개발 중 새롭게 제시되는 문제 해결, 신약 가치 제고를 위한 추가 데이터 확보, 라이센싱-아웃 관련 비즈니스 등을 융통성 있게 추진할 수 없을 수 있다.


따라서 각 개발사는 사전에 충분한 자원을 확보해 신약개발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투자자 입장에서도 각 기업이 어느 정도의 재정 건전성과 투자 유치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관련된 다양한 인력의 전반적인 전문성 제고가 필요하다. 아직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어떠한 임상시험도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개발 과정이 적절하게 이뤄졌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역량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대부분의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초기임상개발 후 다국적제약사 등에 후보물질을 라이센싱-아웃 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품성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얻기 위해 효과적인 개발 과정이 진행돼야 한다.


최소한 개발한 의약품이 팔리지 않아 울며겨자먹기로 후기임상시험을 직접 수행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확보한 인력이 충분한 수로 확보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인력양성사업추진도 필요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신약개발은 아직 태동기~발전기 단계에 해당하며, 이번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의 3상 실패는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과정이다. 이를 안 좋은 일로 받아들여 그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에 급급하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대응은 장기적인 산업 발전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귀중한 교훈으로 삼고, 그 실패 속에 놓인 구체적인 요소들을 정확히 되짚어 봄으로써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약개발 역량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이뤄질 때 이번 일은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신약 개발이 단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만큼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가 당당한 신약개발국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