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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현장 의견 무시한 정부·정치인들의 탁상행정으로 응급의료는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질 것

지난 5월 31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정부는 응급의료 긴급대책 관련 당정협의를 진행해 지역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하고 이를 통한 환자 이송은 의료기관이 의무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또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증환자 진료를 제한하고, 응급환자 진료 전 중증도를 분류해 경증은 수용하지 않고 하위 종별 응급의료기관으로 분산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병상이 없는 경우 경증환자를 내보내서 응급환자 병상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서는 경증환자의 과밀 등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의 개선과 근본적인 응급의료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지만, 당정 협의 결과는 단순히 이송환자에 대한 의무 수용과 경증환자 수용거부를 대책으로 내놓았다. 

특히 병상을 차지하고 있던 경증환자를 응급진료구역에서 내보내고 중증 이송환자를 수용하라는 것은 힘들게 응급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공권력도 없는 의료진에게 환자를 내쫓는 업무도 전가시킴으로써 중증환자 수용 불가문제를 해소하려는 어이없는 대책이다.

병상에서 치료받고 있던 환자를 이송 예정인 중증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료 불가를 통보하고 강제퇴원 시키거나 타원으로 전원 보내는 것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파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의 입장에서도 다른 중증환자가 오고 있어 진료를 중단할 테니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밀화된 응급실에서 장시간 대기하다 겨우 병상을 배정받아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인데, 강제 퇴원 조치를 받으면 어느 환자가 동의하겠는가? 

결국 이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면 환자를 내보내려는 의료진과 강제 퇴원을 거부하는 환자 및 보호자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폭언 및 폭행이 발생하고, 고발 및 소송 사례가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분쟁과 대립은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는 또 다른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해 응급의료 의료진의 이탈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상태, 즉 환자의 질환을 적절히 치료하기 위한 배후진료가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강제로 이송하여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수용하게 되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현재 법제처의 규제심사 중에 있는 일명 ‘응급환자 수용의무화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제정되면 응급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을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당직의사에게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해당 법안의 문제는 중증 응급환자의 수용가능 여부를 확인하여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하되, 만일 수용 가능한 기관이 없는 경우 일방적으로 지역응급의료상황실(가칭)에서 수용기관을 지정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이송된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분쟁에 대한 면책 조항은 없다.

응급의료의 특성상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고, 필요한 치료가 적시에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치료 결과는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최근 치료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에는 소송제기가 잦아지고 치료 불만족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소송에 대한 부담과 치료 결과에 대한 부담감과 여러 가지 행정적인 업무 증가 등으로 인해 점점 응급의료 종사자들이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강제 이송환자에 대한 면책조차 보장되지 않은 채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대한민국 응급의료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

당정은 경증환자의 이송을 지역응급의료센터로만 하도록 제한하겠다고 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증환자는 이송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렇게 응급실로 걸어서 접수를 하고 온 환자를 의료기관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대한민국 응급의료 시스템은 경증환자라고 하더라도 응급관리료라는 약간의 비용만을 추가하면 정규 외래 진료 시간이 아닐 때 응급 질환이 아님에도 의료를 이용할 수 있고, 의료전달체계를 무시하고 상급종합병원의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편법 진료의 창구로 전락해 버렸다. 

경증환자의 응급의료기관 이용제한은 오로지 정부만이 제도적 정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정부는 의료기관에 책임을 떠넘겨 현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어이없는 탁상행정으로 그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왜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관료와 정치인들끼리만 책상 앞에 앉아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대책만 양산해 가뜩이나 붕괴 위기에 처해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회생 불가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가? 

응급의료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더 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는 분야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응급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의 일이 아니다. 

응급의료가 바로 서려면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국민들이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한다.

의료진은 응급의료를 떠날 수 있지만 국민은 응급의료를 떠날 수 없기에 국가는 응급의료를 국민들에게 보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번 당정 협의 결과와 같이 정부와 정치인들이 그 책임을 의료진들에게 떠넘기는 탁상행정이 지속되면 제때 응급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국민들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없고, 결국 대한민국에는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사라지게 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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