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①] 코로나19와 공공병원의 미래

2022-11-01 06:18:31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 ⋅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공공병원이 위기다. 공공병원이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지만 코로나19라는 대재앙이 휩쓸고 간 파편들 사이에는 한때 코로나 영웅으로 불렸지만 이제 오히려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공공병원의 직원들이 남았다.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 당시 비판의 데자뷰같이 코로나19 팬데믹은 부족한 대한민국의 공공성을 극명히 드러냈고, 여전히 좋아질 기미가 없다. 오히려 점점 심해지는 상업적 의료 환경에서 공공병원이 처한 환경과 쟁점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1. 의사 부족


우리나라에서 의사 부족은 정부 재정 부족과 함께 근대 의료 도입 당시부터 민간중심 의료제도를 고착화한 이유였다. 그나마 고도성장기에는 상당수 의사가 외국으로 빠져나갔고, 고질적 의사 부족 문제는 지역의료 격차부터 양⋅한방 이원화에 이르기까지 국가 의료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필수분야 의사 부족은 국가 위기 때 더욱 심해졌다. 1997년 아시아경제 위기(외환위기)에도 고가검진, 요양의료기관의 급증과 맞물려 교수들조차 대학을 떠나 개원가로 몰려들었다. 2009년 추진한 의료관광정책과 민간의료보험(실손보험)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고, 코로나19 팬데믹 재난 또한 필수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을 떠나게 하고 있다.


반대로 의대 정원은 오히려 축소됐다. 의약분업 당시 정원 10% 감축에 동의한 이후 고령화, 인구와 의료기관 증가에도 16년째 동결한 의대정원은 OECD 국가 평균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구 수 당 의사 수를 만들어냈다. 해외의사 수입도 어렵고, 대학병원조차 의사보조인력(PA 또는 NP)을 음성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또한, 필수분야 의사인력의 공동화로 국가의료의 재난이 예견되고 있다. 특히, 가장 큰 어려움은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진 공공병원이며, 공공병원을 이용하는 의료 취약 국민이 그 대상이다. 이제 의사인력 해소는 국가적 과제가 됐지만,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2. 재난과 재정투입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수가는 원가 이하로 책정하며, 차액은 비급여진료나 진료량을 늘려 벌충한다. 대다수 공공병원도 민간병원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의 행위별 수가에 기반한 수익으로 운영한다. 


공공병원은 취약환자가 많고, 과잉진료를 지양하므로 정상적으로는 경영수지를 맞추기가 불가능하다. 부족한 운영비는 지자체의 지원이나 사업비로 겨우 균형을 맞추지만, 이러한 소위 ‘공익적 적자’에 대한 지원 기준은 없어 여건에 따라 심지어 임금이 체불되거나 많은 부채가 쌓여 있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때도 그랬듯이 코로나19 초기에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서 코로나 환자의 대다수를 진료한 공공병원에 재정 지원이 집중됐지만, 질병의 병태가 알려지고, 치료제가 등장하기 시작하면 지원금의 대부분이 민간병원으로 흘러간다. 


공공에 투입한 재원은 다음 재난에 대비한 ‘투자’로 활용되지만, 민간이 나누어 가진 재원은 상황의 모면에 그친다. 코로나19로 지급한 엄청난 액수의 손실보상금이 그 일부라도 공공의료강화에 투입됐다면 향후 닥쳐올 보건위기 재난을 훨씬 의연하게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병원을 늘리고 키울 절호의 기회가 또 지나가고 있다. 나오미클라인의 ‘재난자본주의’는 한국에서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3. 필수의료 붕괴와 공공정책 수가


의료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증진해 삶의 질을 유지함으로써 개인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역, 분야, 계층 간 의료격차는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 


자치분권 2.0의 시대가 왔지만, 지역마다 필수의료서비스의 수준과 건강격차는 오히려 심해지고, 경제침체와 맞물려 취약계층의 건강지표는 개선될 줄 모른다. 응급중증질환을 치료할 의사는 떠나고, 쉽고 여유로운 삶을 찾아 개원가로 의사들이 모인다. 


약화하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정책 수가’에 대한 기대도 많지만, 우려도 많다. 


우선, 기존에 없던 ‘공공정책 수가’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기존의 건강보험수가는 ‘영리정책 수가’로 불러야 할 것이다. 수가를 포함한 건강보험제도 자체의 공공성을 강화하지 않고, 이원적인 용어가 정착한다면 자칫 우리 의료의 비공공성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거나 근본 문제를 덮는 미봉책이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이미 부족한 공공재원을 민간에 투여하면서 오히려 축소되는 역작용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부디 원래의 취지에 맞도록 필수의료와 공공성을 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정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4. 공공병원 위탁운영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지방의료원은 지자체에 따라 다양하고 유연한 정책 집행이 가능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공공병원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개별 지자체의 여건에 따라 지원수준의 격차, 운영 철학과 방침의 난맥상 등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 진행 중인 지방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 논쟁이 그것이다. 


공공병원을 위탁하려는 목적은 진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 인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함이다. 하지만 이 목표가 가능한지, 또는 그로 인한 피해가 이익보다 크지 않을지 의문이 많다.  


우선, 인력의 문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의사인력 부족은 비단 공공병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에서 보듯 대학병원도 의사인력이 충분하기는커녕 충분한 자체 인력도 부족한 형편이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의 국립대 교수도 줄줄이 개업을 위해 사직하는 마당에 어느 대학병원이 지역공공병원을 위탁하려 나설 것인가? 


만일 그런 병원이 있다면 공공의료 강화에 봉사하기보다는 다른 부차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둘째, 진료의 질에 관한 문제다. 지역 공공병원의사도 대학교수에 버금가는 교육과 연구를 지원해 우수한 진료능력을 키우는 과정을 지원해야 한다. 지역 공공병원의 체계전환이 없이 마냥 외부의 수혈만 의존한다면 국가 공공병원은 영원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공임상교수제’가 바로 이런 사업이다. 국립대 교수의 자격을 주고 지역공공병원에서 일하며 대학병원에서 연구⋅훈련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공병원 의사의 수준을 높여 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 


어렵더라도 정성으로 키운 내 아이가 부잣집에 보낸 아이보다 못 하란 법은 없다. 부모의 마음으로 따뜻한 격려와 지원을 하면 훌륭한 지역 공공병원으로 커갈 수 있을 것이다.


5. 지역책임의료기관 역할


기관 수에서 5.7%에 불과한 공공병원을 70개까지 늘려 10%라도 되게 하려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이 수립됐다. 필수의료 격차 해소, 보건 의료재난 대비, 의료정책의 선도적 시행 등 국가의료는 적정한 수의 공공병원이 있어야 수행 가능함은 어느 정부에서나 절감해 왔고, 이를 구체화시킨 계획이다. 


중진료권의 필수의료를 담당하고, 지역 의료 자원의 협력체계를 총괄 조정할 지역책임의료기관이 될 수 있는 병원은 종합병원급 시설과 인력, 응급 필수진료기능 수행역량, 투명하고 공공적인 운영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방의료원은 이 기능을 수행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지역의 균형발전은 지역 책임의료기관의 제 역할을 통해서 가능하다. 지역의 필수의료를 감당하기에 많이 부족한 지방의료원을 키우고, 늘리고, 권한을 주어 국가 공공의료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부족한 의료자원에 민간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민간병원도 공공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공공적 거버넌스의 확보는 민간 소유 기관으로서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충분한 수의 능력 있는 공공병원 확충 과제는 양보할 수 있는 국정과제가 되어야 한다. 정규군이 강해야 의병도 제 역할을 하는 법이다. 

 

사람다운 삶의 첫째는 건강한 삶이다. 천금과 명예와 권력도 건강만 못하듯, 건강권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다. 건강권 보장을 위해 정부가 하는 일이 공공의료고, 이를 수행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병원이 공공병원이다. 


공공보건의료는 우리 의료가 가진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이룰 수 있다. 10%도 채 되지 않는 공공병상으로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행운은 언제나 오지 않는다. 부족한 의사 수, 필수의료의 붕괴는 경제력을 따르지 못하는 공공의료의 취약함의 발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약화중이지만 사익추구와 양극화는 더욱 몸집을 키우고 있어, 공공성 회복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는 이념과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150여 명의 젊은 생명이 희생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다시 생겼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대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보건의료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에 비해 가장 취약한 분야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다. 


공공병원의 정상화가 보건의료의 미래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국민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와 그 지표로서 공공병원 정상화의 길에 나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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