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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학도 동떨어진 의학 분야가 아니다

홍세용 농약중독연구소장, 책임지고 있는 국가연구과제에 최선을 다할것!

[편집자주]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농약중독연구소는 신장내과 홍세용 교수의 주도 아래 천안병원 신장내과 내에서 비영리적 봉사 정신으로 운영되고 있다.


농약중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홍세용 교수는 농촌지역에 자리한 천안병원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농촌은 모든 이의 뿌리이며 돌아갈 고향'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농촌의학에 관한 연구를 개진하고, 그간의 임상 경험을 동료 및 후배 의사들과 나누기 위해 이 연구소를 개소했다. 


메디포뉴스는 홍세용 소장을 만나 농촌의학에 관한 그의 신념과 그간의 진료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와 에피소드, 그리고 대선배로서 후배 의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학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진심 어린 충고를 들어봤다.




▲ 홍세용 농약중독연구소장은 1974년 고려의대를 졸업했고, 동 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마친 후 1984년부터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신장내과에서 근무 중이며, 1988년 3월 농약중독연구소를 개소해 현재까지 소장으로 역임중이다.


2005년 대한임상독성학회 부회장, 2006년 대한신장학회 회장, 2007년 대한고혈압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2011년 대한의사협회 의과학상을 수상했다.



특별히 농약중독연구소를 개소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개소 당시의 에피소드를 회상하자면?


30여 년 전 농촌지역(천안)에서 진료를 시작하자마자 진료실에서 당면한 문제 중 하나는, 급성 농약중독 환자 발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이 농약중독 치료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당시 의료계에는 급성 농약중독 환자를 위한 적절한 치료지침이나 참고 자료가 없었다. 이는 급성 농약중독 환자가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는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제초제 그라목손(파라콰트) 중독으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졌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외된 학문의 절벽에 계란이 되어 부딪쳐 보기로 했다. 잘 나가던 신장내과 의사의 길에서 벗어나려는 저를 두고 주위에서는 “또라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농약중독연구소를 표방했던 것은 아니었다. 밀려드는 농약중독 환자 치료법 개선을 위해 기초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 당시에 막 시작된 대덕연구단지를 매주 한 번씩 찾아가서 많은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받았고, 그들을 설득하여 농약중독 관련 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라목손 치료법 개선을 위한 연구를 한답시고 연간 천 마리 이상의 실험 쥐를 희생시키며 좌충우돌 하다 보니 어느덧 저의 젊은 날들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외롭고 답답한 시간이 흘러 제가 더 이상 젊은 의사가 아닌 어느 때쯤인가부터 사람들은 제 실험실을 ‘농약중독연구소’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환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급기야 우리 대학은 물론 정부기관(농진청), 국회(의원 보좌관실) 등에서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어느 날엔가는 EBS 교육방송국에서 카메라를 메고 천안까지 찾아왔다. 부끄럽게도 “名醫”를 찍자고……
 
평소 소장님께서는 농업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농약중독’ 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 농촌에서 태어났고 농촌에서 자랐다. 코흘리개 때는 동네 앞을 흐르는 시냇가가 제 놀이터였고, 잔뼈가 굵어지면서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소꼴’을 뜯는다든지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드는 게 일과였다.


그 당시가 1950~1960년대인데 나중에 보니 이때가 우리나라 농촌에서 농약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후 대학을 다니느라 고향을 떠났는데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농촌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목마를 때는 그냥 마셔도 되던 시냇물은 검고 냄새 나는 하천이 되어버렸다. 버들강아지가 자라던 시냇가는 낯선 외래종 풀들로 뒤덮였고 그 많던 송사리 붕어 떼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는 누구네 집에서 농약중독으로 누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농약의 오남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농약은 어려서부터 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 차가 다니는 읍내에서 우리 동네를 가려면 10리쯤 우마차 길을 걸어야 했다. 간혹 당일로 서울로 돌아가려면 택시를 타고 시간을 절약해야 했는데, 택시가 우마차 길을 달리면 먼지가 뽀얗게 일고 들에서 일하던 어르신들은 ‘누가 오나’하고 바라보곤 하였다. 저는 동네 초입에서 택시를 내려 인사를 드리며 걸어가곤 했다. 감히 먼지를 일으키며 동네에 들어설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나를 공부시키려고 그 독한 농약 냄새 나는 들판에서 피땀 흘려 일하시는 것이 미안했고, 아마도 이때부터 제 가슴 속에는 농촌 사람들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자리잡게 된 것 같다. 현재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셨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고 농부들에 대한 저의 부채의식은 평생 내려놓지 못할 짐이다.


농촌지역에 위치한 천안병원에서 근 30여 년째 근무를 하고 계십니다. 봉직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농약중독 환자가 있으신지요?


농약 중독은 대별하여 급성 중독과 만성 중독으로 나눌 수 있다. 급성 중독은 농약 살포 중에 부주의로 발생할 수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자살 목적으로 음독하는 경우 가 많다. 최근에는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아졌다. 과거에는 40~50대가 가장 많았는데 근자에는 70~90대 노인 자살률이 더 높다.


기억에 남는 환자로 얼마 전에 93세 할아버지가 농약을 음독했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간암이 진행되어 간 전체가 암덩어리였다. 여명이 바로 코 앞인데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가족들과의 사소한 불화로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부모가 자살을 하면 남아있는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사회적 손실이 적지 않을뿐더러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인 자살예방을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촌의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후배 의사들에게 흔히 접하지 못하는 ‘농약중독’ 치료에 대해 당부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학문의 길은 마치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등산로가 다양하지만 결국은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 농약중독에 대한 공부도 별도의 길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살충제인 유기인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농약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유기인(organophosphate)에 대하여 공부해야 한다. 유기인은 때로는 독이지만 인체에서는 RNA, DNA 등 중요 기질의 구성 성분일 뿐 아니라 각종 kinase 혹은 phosphorylation 같은 functional aspect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 생각으로는 유기인의 역할을 생화학적으로 다 이해한다면 현대의학을 거의 다 이해한 것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파라콰트 중독 환자 진료를 하자면 유해산소(reactive oxygen species)의 병태생리를 이해해야 하는데, 인체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발생, 진행 과정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유해산소와 무관한 병은 없다. 이처럼 농약중독 치료 공부는 별개의 동떨어진 의학 분야가 아니고, 가다 보면 다른 분야의 학문과 만나게 된다. 따라서 농약중독 환자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질환의 범주 안에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독성학은 평소에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적절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응급으로 체외배설요법을 해야 하거나 해독제를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소위 치료의 ‘golden time’을 놓치게 된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매우 다양한 독극물들이 있으며, 심지어 병원에서 처방된 약도 바로 독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항상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자세로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2016년 하반기 소장님께서 개인 활동이나 연구 활동에 새로이 계획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현재 국가연구과제인 “농약 부제(계면활성제, 용매, 부동액 등)의 인체독성 치료법 개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소소하지만 몇 가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가는 중이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에, 짧은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할 길을 재촉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