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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건강보험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기고] 건강보험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환자를 위한 의료정책을 생각하는 사람들(환의사)은 정부가 추진 중인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 확대 정책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유전질환인 남성 탈모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탈모는 외모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자신감 저하를 초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삶의 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과 공감이 곧바로 건강보험 재정 투입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건강보험은 건강보험법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서 강제로 수납한 보험료로 운영되는 사회 보험이다. 사보험과 달리 보험료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된 보험료를 체납하면 보험 계약이 실효되는 것이 아니라 보험 급여가 정지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제 징수되는 준조세에 해당한다. 따라서 건강보험 적용 여부는 국민적 공감이나 정치적 관심도가 아니라 의료적 필요성과 재정 건전성, 그리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

건강보험법 제1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ㄴ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급여 대상이 지정돼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대부분의 탈모는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 기능을 손상시키는 질환이 아니다. 만약 심리적 불편과 삶의 질 저하만을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면 미용 목적 시술, 피부 개선 치료, 비만 관리, 각종 외모 관련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도 동일한 요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질병 치료 중심이라는 건강보험 제도의 기본 원칙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심각한 부담을 안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만성질환 증가와 중증질환 치료비 확대, 희귀질환 지원 등으로 재정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제로 암 환자,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와 같이 생명과 직결된 의료서비스 분야에서도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환자단체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이 상대적으로 시급성이 낮은 분야로 분산되면서 정작 생명과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데 있으며, 그 우선순위 역시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더욱이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검체검사 보상체계 개편 과정에서는 의료현장의 우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검체검사 관련 제도 개편이 의원급 의료기관의 운영 부담을 증가시키고 환자들의 의료 이용에도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검체검사는 암, 심혈관질환, 당뇨병, 감염병 등 수많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의료의 핵심 기반이다. 정확한 검사 없이는 정확한 진단도, 적절한 치료도 불가능하다. 환자 입장에서 검체검사 체계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의료 인프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제기되는 우려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전문가 검토를 거치지 않으면서, 정치적 관심이 높은 탈모 급여화 논의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 정책의 우선순위가 과연 누구를 위해 설정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는 정치적 지시나 일시적인 여론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 재정과 보건의료 정책은 의료·재정·보건정책 전문가들이 객관적 근거와 비용 효과성, 국민 건강에 대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개별 질환에 대한 즉흥적인 급여 확대 지시가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필수의료를 강화하며, 중증환자와 희귀질환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한 의료정책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강력히 촉구한다.

탈모 급여화와 같은 정치적 인기 정책보다 먼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필수의료 체계 강화에 나서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이 진정으로 필요한 환자들에게 우선 사용될 수 있도록 원칙과 형평성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건강보험은 특정 집단이나 특정 이슈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모든 국민과 모든 환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그렇기에 더욱 냉정하고 책임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