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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탈모의 고통을 정치적 인기투표로 다뤄서는 안 된다

정부는 탈모치료제 급여화 공론화에서 앞서 세부 기준과 공식 재정추계를 공개하라.

정부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하반기 정책 검토 과제로 제시하고 국민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다. 탈모가 일부 당사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위축과 대인관계의 어려움, 치료비 부담을 초래한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탈모를 단순한 미용 문제로 폄하하거나 당사자의 고통을 조롱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탈모로 인한 고통을 인정하는 것과 탈모치료제를 지금 건강보험의 우선 급여 대상으로 결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건강보험은 특정 세대가 낸 보험료를 그 세대에게 돌려주는 환급제도가 아니다. 건강할 때 함께 부담하고, 질병 위험과 의료비 부담이 큰 사람에게 필요한 의료를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다. 보험료를 내면서 의료 이용이 적은 청년에게 체감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급여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노인·장애인·중증환자·희귀난치질환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건강보험의 연대 원리가 흔들릴 수 있다.

건강보험은 생명과 직결된 치료만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다. 통증 완화, 재활, 정신건강, 만성질환 관리와 같이 삶의 질과 기능을 개선하는 의료 역시 중요한 급여 대상이다. 따라서 핵심 쟁점은 탈모가 질병인가 미용인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탈모치료의 임상적 효과와 삶의 질 개선 정도, 비용효과성, 환자의 경제적 부담, 다른 미충족 의료수요와의 상대적 우선순위,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정부는 아직 급여 대상과 약제, 본인부담률, 예상 이용자 수, 장기 처방기준과 공식 재정추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청년층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같은 중증도의 환자가 35세가 되면 보장에서 제외되는지, 여성형 탈모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탈모를 급여 대상으로 인정할 것인지조차 불명확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민에게 급여화의 찬성과 반대만 묻는다면 공론화는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숙의가 아니라 정치적 선호조사나 인기투표로 전락할 수 있다. 국민 토론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법정 평가절차를 앞서거나 대체해서도 안 된다.

건강보험 재정 상황도 외면할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의료개혁 투자계획을 반영할 경우 2026년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5조 2000억원 적자로 전환되고, 누적 준비금은 2029년에 소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망에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건강보험의 새로운 지출을 결정할 때 기회비용과 지속가능성을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탈모치료제를 급여화한다면 약값만 통제해서는 안 된다. 낮아진 환자 부담으로 신규 이용과 장기 처방이 크게 늘어날 수 있고, 급여약 처방을 매개로 두피관리·PRP·메조테라피·모발이식 등 연계 비급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점검해야 한다. 가격, 급여 대상, 이용량, 치료성과와 공급자 행태를 함께 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공론화에 앞서 대상 연령과 성별, 탈모 유형과 중증도별 예상 환자 수를 산정하고 구체적인 급여기준 초안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급여 대상 약제와 예상 약가, 본인부담률별 건강보험 재정 부담, 신규 이용률과 장기 치료 지속률을 반영한 공식 재정추계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중증질환 신약, 고도비만 치료, 성·재생산 건강, 예방접종, 정신건강, 간병과 재활 등 다른 미충족 의료수요와 비교해 탈모치료제 급여화가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갖는지 설명해야 한다. 최초 급여 인정기간과 치료반응 재평가 방식, 부작용 관리, 장기처방과 급여 중단 기준, 연계 비급여에 대한 모니터링 방안도 구체화해야 한다.

기대했던 건강 편익이 확인되지 않거나 재정지출이 당초 전망을 크게 초과할 경우에는 급여범위를 축소하거나 사업을 종료할 수 있도록, 재평가 시점과 조정 조건을 제도 도입 단계에서부터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전 연령 또는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일반급여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정부는 우선 비급여 약가·진찰료·처방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저가 제네릭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연령만이 아니라 탈모 유형·중증도·조기발병·치료 필요성을 기준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높은 본인부담률의 선별급여 또는 기간과 인원을 한정한 시범사업부터 검토해야 한다. 시범사업은 급여 확대를 위한 요식행위가 되어서도 안 된다. 삶의 질 개선, 치료 지속률, 부작용, 이용량, 연계 비급여와 재정영향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사전에 정한 기준에 따라 유지·확대·축소·종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탈모로 고통받는 당사자의 현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쉬운 요구에 따라 배분되고, 생명과 건강에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는 환자들의 미충족 의료수요가 뒤로 밀리는 상황도 경계한다. 건강보험은 모두의 돈으로 질병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사회적 연대의 제도다. 정부는 공약과 여론에 앞서 근거와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세부 설계와 재정추계 없는 공론화를 중단하고,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와 비교 가능한 정책 대안을 먼저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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