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또다시 거리 위로 향했다. 오는 7월 관리급여 제도 시행을 앞두고 집단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28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국민의 치료권,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관리급여 반대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 날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계는 관리급여가 환자의 치료 선택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제도 철회를 촉구했다.
이번 관리급여의 핵심 대상은 도수치료다. 정부는 도수치료에 대해 1일당 4만3850원의 관리급여를 적용하고, 환자 본인부담률을 95%로 설정했다. 또한 30분 이상 시행을 원칙으로 하고, 부위와 관계없이 연간 총 15회(주 2회 이내)까지만 인정하며, 물리치료 또는 재활치료를 최소 2주 이상 4회 시행한 경우에만 급여를 인정하기로 했다.

궐기대회에서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관리급여가 환자상태와 의료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환자부담을 그대로 두고, 정부가 가격, 횟수, 진료기준을 정하겠다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제도인가”라며, “같은 통증이어도 환자의 상태가 다르고, 같은 치료여도 필요한 시간과 횟수가 다르다”고 비판했다.
이어 “환자를 직접보고, 증상을 듣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은 현장의 의사”라며 의사가 환자상태에 따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국민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접근 방식에는 선을 그었다. 김 회장은 “국민 부담을 줄이려면 실질적인 건보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며 “약속된 20%의 재정을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환자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기준을 재검토하고,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행정적 잣대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며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달라”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도 관리급여가 의료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관리급여는 의료현장의 특성을 철저히 외면한 관료적 발상”이라며 “의학적 판단이 아닌 정부가 정한 횟수와 기준표에 맞춰 로봇처럼 진료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의료의 현실화가 아닌 배급의료와 치료의 허가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건보 재정 측면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김 의장은 “건강보험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원칙을 지키려면 치료에 있어 비용대비 효과성, 재정 등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며 관리급여의 5%가 건보재정에서 지출되면 결국 의료비 총량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간 실손보험에서 보장해주던 치료비를 환자가 직접 부담하게 된다”며 “실손보험의 설계 문제를 왜 보험회사가 아닌 국가가 고민해야 하나”라며 정부의 정책추진 의도에 의문을 던졌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최정섭 회장은 관리급여 시행 이후가 의료계의 ‘진짜 싸움’이 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최 회장은 “오늘의 외침은 늦은 후회가 아닌 의료독재를 향해 던지는 강력한 선전포고”라며 “관리급여가 적용되면 수술 후 관절이 굳어 피눈물을 흘리며 재활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아파도 집에서 참으라고 등을 떠미는 꼴”이라고 규탄했다.
또 “도수치료를 하려면 기본 물리치료 조건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의사의 청구 단계까지 쇠사슬을 채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당장 동네 병의원 10곳 중 9곳이 물리치료사들을 해고해야 하는 고용파탄 직전에 내몰려 있다”면서 “강행을 멈추지 않는다면 법률투쟁, 행정소송, 공정위 제소는 물론 전면적인 제도거부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범대위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 이태연 관리급여대응위원장은 관리급여 확대 시 비급여 전반으로 규제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오늘은 도수치료, 내일은 체외충격파, 그 다음은 또 다른 비급여 치료가 될 것”이라며 “관리급여가 확대되는 순간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의 상태가 아닌 정부가 정한 횟수만큼만 치료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과잉진료를 막겠다고 하지만, 의료계는 이미 근거기반 자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안전하고 표준화된 의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며 “정부는 의료계의 자율적 노력보다 통제와 규제를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관리급여는 보험개혁이 아니라 정부의 탁상행정으로 빚어지는 국민의료의 파괴”라며 “의료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무너뜨리는 의료통제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김완호 회장은 관리급여를 떠나 의사들 스스로의 자율규제를 기반으로 한 진료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더 이상 ‘관리급여’, ‘거짓진료’, ‘저가치의료’라는 말로 의사들의 진료권∙환자들의 치료권을 위협하지 말라”며 “비급여진료를 하지 않아도 의사들이 충분히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수가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 최순규 회장은 의료정책은 보험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환자를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우리 국민들은 어리석지 않다”며 “보험회사의 이익이 아닌 환자의 편에 서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도수치료는 마사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고, 고령화로 인해 통증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의료는 개혁의 대상이 아닌 꾸준히 관리하고 보수해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장용호 수석부회장은 도수치료의 가치와 의료현장을 반영한 현실적인 수가와 유연한 급여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부회장은 “실손보험 오남용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그 과정에서 선량한 다수의 의료기관과 꼭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달라”고 했다.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백경우 회장은 관리급여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필요한 치료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백 회장은 “의료현장에서 수용할 수 없는 수가와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치료 자체를 사장시켜 버릴 것”이라며 “도수치료가 근골격계 수술 후 기능회복이 필수적인 환자나 약, 주사치료가 제한되는 근골격계 환자에게 유일한 대안치료인만큼 적절한 치료비와 횟수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