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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행정구역 넘는 환자들…“진료권 재설계 필요”

전문가들 “실제 의료이용·질환 특성 반영해야”
중∙소진료권 붕괴 방지 및 한국형 1차의료 구축 목소리도


진료권은 행정구역이 아닌 환자의 실제 의료이용 행태와 질환 특성을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데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11일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의 ‘의료정책1’ 세션에서는 진료권과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 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김계현 연구부장은 여전히 법률과 정책마다 진료권의 범위와 기준이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마저도 실제 국민들의 의료이용 행태와는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연구부장은 ‘정부가 생각하는 지역’과 ‘국민이 생각하는 지역’이 과연 같은지에 대해 의구심을 던졌다. 

그는 “정부는 행정구역과 인구, 이동거리 등을 기준으로 진료권을 설정하지만 국민들은 접근성과 의료기관의 수준, 선호도에 따라 행정경계를 넘어서 의료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김 연구부장은 의료전달체계의 기본 원리로 ‘단계화’와 ‘지역화’ 개념을 소개하며, 모든 의료서비스를 하나의 진료권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의료서비스는 ‘복잡성’에 따라 필요한 자원의 규모나 분포가 달라지는 만큼, 질환∙중증도별 단위로 구획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는 ‘계획된 진료권’과 실제 환자의 이동으로 형성되는 ‘자연적 진료권’ 사이의 간극을 해결하지 못하면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부장은 “정부는 계획된 진료권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된 진료권에 익숙하다”며 “이 둘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오는 정책들도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의료이용 데이터도 이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서울 소재 의료기관 이용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타지역 거주자이며, 감염병과 달리 암이나 심뇌혈관질환 등은 지역 내 치료 비율이 낮아 질환별로 의료이용 양상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김 연구부장은 “행정구역 기반의 진료권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진료권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실제 환자의 이동과 의료이용을 기반으로 검증돼야 하며, 질환별·중증도별 특성을 반영한 네트워크 중심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이진용 교수도 행정구역 중심 진료권과 의료생활권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중진료권과 소진료권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이 교수는 “진료권은 법적 개념이지만 의료생활권은 실제 환자가 어떻게 의료를 이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라며 정부가 설정한 진료권과 국민들의 의료생활권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또 평창과 문경 등을 사례로 제시하며 같은 행정구역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이용하는 상급병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평창군 진부면의 경우 영월보다 원주나 강릉으로 이동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며, 문경시 점촌동 역시 행정구역상 권역보다 충북권 의료기관 접근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급성심근경색증과 뇌졸중, 외상 등 시간 의존성이 높은 질환은 1시간 이내 중진료권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증질환인 암은 진단과 치료 과정이 장기간 이어지는 만큼 응급질환과 동일한 의료이용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질환별 의료이용지도 분석 결과도 소개했다. 암은 지역에 따라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이동하는 비율이 크게 달랐지만, 급성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은 대부분 환자가 거주지 인근 권역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이 교수는 환자가 실제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기준으로 의료이용 흐름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했다.

단순 중진료권 조정보다는 지역의료의 기반이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도 내세웠다.

이 교수는 “소진료권도 붕괴 직전”이라며 “평택, 천안 등 인구증가 지역을 제외하면 많은 지역에서 종합병원이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이어 “동네 소멸 시 소청과, 산부인과, 종합병원 순으로 사라진다. 이 병원들이 없어지면 학교도 폐교되고 동네가 다 빠져나가게 된다”며 “의원급이 소재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문석균 부원장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료 현실을 반영한 선결 과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부원장은 우선적으로 ‘전문의 중심의 1차의료’라는 특성을 반영하고, 데이터 기반 의료자원 관리 및 기능 중심 의료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정부부터 의료계, 국민까지 힘을 모아 의료이용 방식을 개선해야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 부원장은 먼저 “우리나라는 개원가의 95%가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다른 나라의 게이트키퍼 중심 1차의료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려 하면 전문의들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2·3차 의료기관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전달체계보다 지역 의원 간 수평적 협력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동네 의원들이 서로 의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며 타 전문과목 의원으로 의뢰할 경우 수가를 지원하거나 환자 본인부담을 낮추는 방안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의료정책 수립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 부족 문제도 지적했다. 문 부원장은 “의사 인력과 의료자원은 충분한 데이터에 기반해 관리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필요한 자료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다”며 “지역별 질환 발생과 유병률, 전문과목별 수요 등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공개해야 합리적인 의료자원 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의료기관의 기능에 맞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문 부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가장 좋은 병원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기능 중심으로 개편한다면 ’중증종합병원’처럼 역할이 드러나는 명칭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은 지난 6월 ‘상급종합병원’ 명칭을 ‘중증종합병원’으로 바꾸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아울러 중증도 분류가 질환 중심으로 돼있는데, 이는 환자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도 내놨다. 문 부원장은 “경증질환도 합병증이 생기면 중증이 될 수 있고, 암도 만성 단계에서는 지역에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며 의료전달체계가 질환의 특성을 반영해 운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문 부원장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정부 정책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부원장은 “경증질환은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중증환자가 상급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국민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며 “한국형 1차 의료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의료자원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을 때 실효성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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