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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개혁은 시끄럽게 해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대한 조용하게, 원만하게, 합리적으로 하는 게 맞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의정갈등을 겪은 뒤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의료개혁이 또다시 사회적 충돌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데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관심은 개혁이 얼마나 조용했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논의했느냐다.

정부는 의료개혁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도 같은 자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논의와 의료인력 수급추계센터를 통한 근거 기반 의사결정, 투명한 절차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의료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최근 정부의 의료정책을 둘러싸고 의료계가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하나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지난 11일 종합학술대회에서 “현재는 복지부에서 이미 정책이 결정된 뒤 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구조”라며 “정책이 확정된 이후에야 의료계가 찬반을 논하게 되니, 의사단체가 반대만 하는 집단처럼 비쳐진다”고 말했다.

단순히 의견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사례에서도 이어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입법공백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프진 처방을 의사 재량에 맡기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토론회 취소로 결국 무산되기는 했으나, 앞서 지난해 12월 첫 업무보고에서도 청년층(20~34세)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의료현장에서는 “전문가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나온 것인가”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다른 분야의 정책추진 방식은 의료계에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항공 분야에서는 대통령과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국가우주위원회 단체대화방을 통해, 현장의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소통 방식이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와 정책결정권자가 초기부터 같은 공간에서 논의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는 어떤가. 의료정책 역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전문 영역이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정책이 만들어진 뒤 의견을 듣는다”고 말한다. 정부가 말하는 ‘소통’과 의료계가 체감하는 ‘참여’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는 충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 과정에서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쳤고, 수급추계위원회 등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도 마련했다는 점을 근거로 “충분히 논의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정책이 발표된 뒤 의견을 내는 것과,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함께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문가들이 원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거부권이 아니다. 정책이 굳어지기 전에 의료현장의 경험과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다.

의료는 다른 정책보다 현장의 영향이 훨씬 크다. 진료를 하는 사람들의 경험이 빠진 정책은 시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의정갈등이 남긴 가장 큰 교훈 역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전문가 참여의 중요성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개혁은 조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이 전문가들의 목소리까지 조용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갈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반대할 이유를 정책 설계 단계에서 함께 줄여나가는 것이다. 

의료계를 정책의 ‘반대자’가 아니라 ‘설계자’로 초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의료개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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