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가 소아응급센터의 진료 위축이 지역 소아청소년병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보장할 수사 기준과 실질적인 전원·협력체계 마련을 촉구했다.
협회는 3일 배포한 성명에서 지난달 30일 이뤄진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과 관련해 환아의 사망 원인과 진료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다면 적절한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환자 사망이라는 결과와 의료진의 형사책임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소아응급센터가 중증 환자 진료를 주저하거나 진료 규모를 줄일 경우 그 부담이 지역 소아청소년병원과 야간·휴일 진료기관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 소아청소년병원 역시 인력과 시설에 한계가 있어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의 역할까지 대신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부담이 전원 지연과 응급실 과밀, 환자 수용 곤란, 지역 간 장거리 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협회의 입장이다. 협회는 소아응급센터와 소아긴급센터, 소아청소년병원, 상급종합병원 간 실질적인 전원·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사 절차와 관련해서는 응급·중증진료 과정의 불가피한 결과와 명백한 범죄행위를 구별할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료 중인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강제수사도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회는 중증·응급의료 과정의 불가피한 위험을 국가와 의료체계가 함께 부담할 제도를 마련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책임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할 것도 요구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와 같은 전공의 지원 기피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성명에 담았다.
다만 이번 압수수색의 진료 영향에 대해서는 경찰이 다른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연합뉴스의 지난 1일 보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환자가 없는 진료실부터 확인했고, 나머지 진료실은 진료가 끝날 때까지 4시간여를 기다린 뒤 확인하는 등 진료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영장 집행을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아래는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가 3일 배포한 성명서 전문이다.
진료중인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에 대한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성명서 전문
― 아이를 살리려는 의료가 형사처벌의 두려움 속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 소아응급의료의 위축은 소아청소년병원으로 전가되고, 결국 대한민국 소아의료체계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먼저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환아의 명복을 빌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겪고 계실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환아의 사망 원인과 진료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규명은 필요하다. 의료진 역시 법 앞의 예외일 수 없으며,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다면 적절한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환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자체가 의료진에 대한 형사수사와 강제수사의 출발점이 되는 사회에서는 중증 소아를 기꺼이 진료할 의료진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이번 사안을 한 의료기관이나 몇 명의 의료진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대한민국 소아응급·중증진료체계가 앞으로 존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소아응급센터가 위축되면 그 환자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아청소년병원으로 이동한다
현재 대한민국 소아응급의료는 이미 충분한 여유가 있는 체계가 아니다. 2026년 7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국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14곳에 불과하고 그 중 9곳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방의 일부 센터에서는 전문의 한 명이 당직을 책임지거나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진료를 축소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소아응급센터 의료진이 중증 환자 진료를 주저하거나 소아응급센터 자체가 축소되면 환아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환아들은 지역의 소아청소년병원과 야간·휴일 진료기관으로 밀려온다.
그러나 소아청소년병원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이미 지역 소아청소년병원들은 야간·휴일 진료와 입원진료, 탈수·호흡곤란·고열·경련 등 상당수의 중등증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상급병원과 소아응급센터가 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실상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소아청소년병원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야간에는 의사 한 명이 응급 내원 환아와 입원 병동을 함께 책임지는 곳이 적지 않다. 여기에 소아응급센터가 담당해야 할 중증 환자까지 내려온다면 지역 소아청소년병원의 인력과 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 결과는 다시 전원 지연과 응급실 과밀, 환자 수용 곤란, 지역 간 장거리 이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아응급센터가 형사적 위험 때문에 중증 환자를 기피하고, 그 부담이 소아청소년병원으로 내려오며, 소아청소년병원마저 감당하지 못해 환자가 다시 상급병원을 찾아 떠도는 상황이 발생한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위험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그 위험의 결과를 개인의 형사책임으로 부담시키는 정책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소아필수의료를 국가적 과제라고 선언했다면, 중증·응급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위험을 국가와 의료체계가 함께 부담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사망이라는 결과와 형사책임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의사들에게 위험을 피하는 법부터 가르치게 된다
응급의료, 특히 소아응급의료는 짧은 시간 안에 불완전한 정보로 판단하고,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처치와 전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의료이다. 생명을 살리는 과정에는 언제나 죽음의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이 있다는 판단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 불가피했던 사망과 명백한 과실에 의한 사망을 구분하지 않고 중증 환자의 좋지 않은 결과마다 의료진을 형사절차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의료진에게 남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하나뿐이다.
“위험한 환자는 보지 않는 것.”
의사는 수련 과정에서 어려운 환자를 피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살릴 방법을 찾으라고 배운다. 그러나 중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한 결과가 좋지 않을 때마다 압수수색과 형사입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젊은 의사들이 현장에서 배우는 교훈은 “중증 환자를 받지 말라,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전원하라”가 된다. 이는 의료의 실패가 아니라 의료체계의 실패이다.
수사는 필요하지만, 진료현장의 안전과 의료의 특수성을 존중해야 한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의료행위가 수사의 성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명백한 범죄나 고의적 은폐, 중대한 위법행위가 의심된다면 당연히 법에 따라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수사의 목적은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지,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의료현장을 위축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가 지적했듯 전자의무기록은 작성·수정·조회 이력이 로그로 남아, 필요한 자료는 임의제출 등 통상의 절차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진료가 계속되고 있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강제수사를 집행할 때에는 현재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안전, 진료 연속성, 대체적인 자료 확보 방법의 존재 여부를 충분히 고려하는 원칙과 절차가 필요하다.
사법·수사기관에 요구한다
첫째, 의료사고에서 환자의 사망이라는 결과와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동일시하지 말라.
둘째, 응급·중증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결과와 명백한 범죄행위를 구별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체계를 확립하라.
셋째, 진료 중인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강제수사는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라.
넷째, 소아응급센터의 위축으로 중증 환자가 지역 소아청소년병원에 전가되는 사태에 대비하여 소아응급센터–소아긴급센터–소아청소년병원–상급종합병원 간 실질적인 전원·협력체계를 즉각 구축하라.
다섯째, 필수의료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불가피한 의료 결과 때문에 형사처벌의 두려움 속에서 진료하지 않도록 의료사고의 국가책임과 사회적 안전망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라.
아이를 살리는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에게 사회가 형사처벌의 두려움부터 안겨준다면, 결국 아무도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게 된다.
의사가 중증 환자를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는 나라에서 아이들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소아응급의료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난 뒤에는 이를 대신할 의료체계가 없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 사건 소송 이후 전공의 지원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는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이미 아사 상태에 있는 지역 소아필수의료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이번 진료 중인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 사태를 개별 의료진과 수사기관 사이의 문제로 방관하지 말고, 대한민국 소아필수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문제로 인식하여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