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 I>

2013-10-30 10:58:02

박 지 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
메디컬 오디세이> 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2006, 2007)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 I>

 

 

 

 

 

도대체 무슨 그림일까?

참 궁금하다. 첫인상은 왠지 불편하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 보면 온통 수수께기 투성이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이해하기 어렵고 더 나아가 왠지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오늘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수수께기 같은 그림 속을 들여다 보자. 

 

 

수수께기 같은 그림

 

먼저 우리의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것은 화면 우측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인이다. 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천사 같지만, 이내 그녀의 불길한 표정을 본다면 전혀 아니다. 어쩌면 동네 축제를 위해 천사 분장을 하고 잠시 쉬는 동네 아낙네가 아닐까?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일까?

제목처럼 ‘melancholic’ 한가?

그녀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가 바라보는 화면의 좌측으로 우리의 시선을 옮겨 보지만 헛수고다. 아무것도 없다. 공상 중인가? 무슨 생각일까? 궁금증이 더해지는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주변 사물들을 뒤적이게 된다. 

화면의 하단 1/3에는 목수들이 사용할 만한 여러 도구들이 보인다. 대패, , , , 망치……. ? () 한 마리가 몸을 움츠리고 누워 있고 그 주변으로 기하학적 다면체와 공이 보인다. 

등 뒤로는 사다리, 천칭, 모래시계, 종 그리고 숫자판도 보인다. 자세히 보니 여인의 손에는 콤파스가 쥐어져 있고 몸에는 열쇠와 돈주머니도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편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아기 천사도 그제서야 눈에 들어 온다. 그러면, 이 여인도 일종의 천사인가 보다. ‘목공소의 천사, 그런 의미겠지’ 하면서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그림을 빠져나오기 위해 원경을 생각 없이 주시하는데, ? 먼 바다와 하늘에 뵈는 것은 뜨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 해를 감싸는 것은 무지개 맞나? 무지개는 햇빛의 반대편에 생겨야 하는데? 그리고 햇살과 무지개 아래로 날아가는 저것은? 박쥐 같은 모양에 꼬리가 달린 이상한 괴물……. 그런데 이것은 특이하게도 날개에 배너광고처럼 어떤 글자를 보여주고 있다.

 

MELENCOLIA I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림 자체도 이상한데 그 미스터리를 풀어줄 만한 유일한 텍스트마저 애매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무슨 그림일까?

 

 

멜랑콜리아

 

그림을, 아니 동판화를 제작한 이는 독일 사람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 많은 작품들 속에 수수께기 같은 장치들을 숨겨 놓은 별난 화가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겠지? 일단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한 텍스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MELENCOLIA I” 우리말로 읽으면 “멜렝콜리아 1? ‘멜렝콜리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멜랑콜리아’이다. 그러고 보니 날개를 단 아줌마의 표정이 상당히 ‘멜랑콜릭’해 보인다. 그렇다면 동판화의 제목과 그 여인의 표정이 일치한다. 그러면 주변에 놓인 복잡한 사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아래편에 놓인 목공 도구들은 실용적 기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인이 든 콤파스와 입체적 도형들은 기하학을 의미한다. , 모래시계, 지거나 혹은 지거나 뜨는 해는 모두 시간과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실용적 기술과 수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해 보았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지고, 혹은 먼동이 트고 있다.

 

이것은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 그런데도 아직 문제는 해결이 안되고, 그러니 주인공의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멜랑콜리 맞네! 환자 곁에서 밤을 새고 침울한 새벽의 푸른빛을 맞아 본 의사들이라면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4체액설과 멜랑콜리아

 

, 그런데 우리 흔히 알고 쓰는 ‘멜랑콜리아’라는 병의 이름이 고대 그리스 철학의 4원소설을 거쳐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에서 온 것은 다 알 것이다. 나중에 이 체액설에 근거하여 치료방법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목성’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다. 좀 복잡한 이야기지만 먼저 4원소설과 4체액설을 짚고 넘어가자!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hedokles, BC504~433]는 세상의 모든 만물은 불, , 공기,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4원소설』을 주장했다. 히포크라테스(혹은 그의 학파) 4원소설을 의학에 도입하여 『4체액설』로 발전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4원소의 속성인 뜨거움(), 건조함(), 차거움(), 눅눅함()의 기본 특성을 인체에 도입하여 4가지의 기본적인 체액 즉, 황담즙(chole), 점액(phlegm), 혈액(blood), 흑담즙(melanchole)으로 정하고 각각 간, , 심장, 비장에서 생성되며 이 체액들 간의 불균형이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4체액설은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렌을 통해 면면히 이어 내려와 중세 의학의 지배적인 병리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이론에 근거하여 치료사들은 사혈, 흡혈, 배설, 관장, 설사, 구토, 재채기, 발한, 이뇨 등의 치료 시술을 했다. 이러한 치료법은 4체액설에 근거하여 특정 체액의 과도함을 제거하여 인체의 균형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보아서는 우습게 보이지만 당대에는 상당히 인정받은 이론이다. 이전의 의학이론 혹은 질병이론이라는 것이 인간의 병이 신의 노여움이나 나쁜 악귀 때문에 생긴다는 외인론(外因論)이었던 데 비해 인간의 병이 내인적(內因的)인 것이라 했으니 그나마 인체의 내부적 문제에 대한 치료적 방안을 세울 토대를 제공한 셈이 아닌가.

 

 

멜랑콜리아의 아이코노그래피1)

 

다시 동판화로 돌아온다. 점성학에서는 우울증이 ‘토성’의 영향으로 생긴다고 믿었다. 토성(Saturn)은 그리스-로마신화의 크로노스(Chronus; Saturnus)의 별이다. 크로노스는 제우스(Zeus; Jupiter)의 아버지다. 크로노스는 그의 아버지 우라누스를 쫓아내었고 그때 “너도 네 자식들에게 호되게 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

크로노스는 저주가 두려워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잡아먹어 버렸다. 하지만 막내는 어머니 레아의 기지로 목숨을 건졌다. 나중에 주피터가 자라서 힘을 얻게 되자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던 형님, 누나들을 구출하여 아버지를 쫓아내었다.

자식을 잡아먹는 신 크로노스는 나중에 농업의 신과 ‘시간’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chron- ’란 접두어가 붙는 단어들은 시간을 상징한다.

 

Chronic 시간이 많이 지난; 만성의

Chronicle 시간 순서로 나열한; 연대기

Chronometer 정밀 시계

 

그래서 그림에서 나오는 시간적인 장치들은 모두 멜랑콜리아-토성으로 이어진다.

 

멜랑콜리아-토성-시간

 

그렇다면 이런 토성의 나쁜 영향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제우스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이겼기 때문에!

 

 

 

 

제우스의 상징은 목성(Jupiter)이다. 그림에서는 목성과 관련된 것이 딱 하나 있다. 천사 뒤편 벽에 붙어 있는 숫자판. 자세히 보면 이 숫자판은 특이한 숫자판이다. 여기에 씌어진 숫자들은 아래로, 위로, 대각선으로 더해도 모두 같은 숫자, 34가 나온다.

이런 숫자판을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이라 부른다. 마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일정한 숫자판으로 마귀를 쫓는 신비한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기원은 중국 하()나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인도, 페르시아,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특히 16세기에 뒤러의 『멜랑콜리아』가 나온 후로는 전 유럽에 유행이 되었다. 3방진은 토성, 5방진은 화성, 6방진은 태양, 7방진은 금성, 8방진은 수성, 9방진은 달을 각각 상징한다.

그림에 나오는 숫자판은 가로 4, 세로 4개의 숫자판인데 이런 4×4 마방진은 목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멜랑콜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부적이자 방편이 목성을 상징하는 4방진이다.

좀 특이한 것은, 이 마방진의 가장 아래줄에 있는 숫자에는 15 14가 나란히 쓰여져 있다. 이 숫자를 연결하면 이 동판화가 제작된 연도 ‘1514년’이 나온다.

 

 

멜랑콜리아, 우울한 기질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적 노동과 우울질은 관련이 있다”고 했다. 15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는 “우울질 없이는 창조적 상상력 기대할 수 없고 모든 창조는 이것으로부터 연유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이 예술가의 우울질이 천재성을 강화해준다는 믿음 때문에 창의적 예술성이나 정신적 노동과 멜랑콜리아는 땔래야 땔 수가 없는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이 그림 속의 인간은 창조적 정신활동에 몰두하는 예술가이거나 철학자일 것이다. ()는 여러 가지 수단과 지식을 동원해 우주나 철학을, 혹은 절대적 아름다움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유한한 시간에 쫓겨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하지만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뒤러는 멜랑콜리아를 이겨낼 치료법인 마방진을 그림 속에 새겨두어 인간이 우울질에서 해방될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쥐 날개에 쓰인 글씨가 “melancholia IRE” 라면 그 뜻은,

 

“멜랑콜리아 꺼져”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인 뒤러의 이 수수께기 같은 그림을 통해 아주 오래된 우울증 치료제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약이 화학약품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인간을 치유하는 것이 어디 화학물질만의 일일까? 그 화학물질들도 결국 인간 몸속의 신경전달물질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고, 그것들은 그림이나, 음악이나, 휴식이나 그리고 따뜻한 위안으로도 움직인다.

 

 

주) 1. 그림 속의 복잡한 상징물들을 통해 이해하려 하는 경향을 아이코노그래피 (iconography) 라고 한다.

 

 

[출처]디아트리트 VOL.13,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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