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심폐소생술만으로 생명 구할 수 있다”

2014-07-04 15:36:08

자동차사고 보다 많은 심정지사망, 소생술 저변확대 시급

올해 초 서울 강남지역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간단한 성형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뇌사상태에 빠지는 의료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줬다. 심폐소생 전문가들은 의료기관 내에서 심정지가 발생했음에도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의료진들의 미숙한 대처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성형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젊고 건강한 환자들로 심폐소생술만 제대로 했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런 심장정지로 사망한 이는 2만 5천여명에 이른다. 이는 한해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는 7천~8천명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시간은 4분 이내. 그러나 심정지가 발생하는 장소는 주로 가정이다. 이 때문에 의료인이나 응급구조대원이 아닌 일반인이 소생술을 해야 한다. 의학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가슴압박만 시행하면 환자사망을 막거나 뇌손상 정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성형수술 후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미숙한 응급상황대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대한심폐소생협회가 의료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노태호 홍보이사(가톨릭의대 순환기내과)는 “의사입장에서 성형수술환자는 가장 건강한 사람으로 상당수는 예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난이도가 높지 않은 수술 중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응급상황대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사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들도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능력이 충분치 못한 현실이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소생술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환경과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병원 등 의료기관 내 의료인력은 안과나 피부과, 치과까지 충분한 소생술 교육을 받아야 하고 개원가에서도 응급상황에 접할 가능성이 있는 임상과나 현장에서는 BLS(기본소생술 : basic life support)가 아닌 ACLS(전문소생술: advanced cardiovasular)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본소생술(BLS)이란 전문심장소생술 이전에 이루어지는 단계로 따로 약물이나 장비가 필요 없고 많은 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일반인도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시행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기본소생술 교육을 받은 다음날 심장마비로 돌연사할 위기에 처한 아버지에게 기본소생술을 시행해 목숨을 건진 사례도 있다. 심정지 후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는 4분 이내 소생술을 시행한 덕분이다.

전문심장소생술(ACLS)은 기본소생술(BLS)에 약물사용, 전문기도유지술을 더한 의료행위로 주로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에 의해 시행되며 제한적 범위내에서 응급구조사와 119구급대원도 시행할 수 있다.

심정지치료과정에서는 심전도 리듬에 따라 제세동의 필요여부와 투여약물이 다르다. 때문에 전문심장소생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전체 알고리즘과 심전도 리듬의 이해가 필수요소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임상과에 관계없이 10시간 30분 동안 시행되는 전문심장소생술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론과 시뮬레이션이 포함되어있고 2년에 한번 다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노태호 홍보이사는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부분 병원에서 의과대학 수련이 끝나면 수련의, 전공의, 전문의들은 전문심장소생술 교육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문심장소생술 교육이수 여부가 병원평가 항목에도 포함됐지만 이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집단이론교육만 받아도 문제가 되지 않고 교육을 하려고 해도 전공의나 간호사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의료진이 심정지 상황을 맞닥뜨릴 기회가 많지 않고 심폐소생술에 충분한 수가책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노태호 이사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력이라 하더라도 응급의학과나 외과, 내과 등을 제외하면 심정지환자를 마주할 기회가 1년에 1번도 생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정지상황이 한번이라도 발생하면 의사와 간호사 등 20여명의 의료진들이 달라붙어 꼬박 한 시간 동안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이때 심장심폐소생술에 책정된 의료수가는 고작 6-7만원 수준.

노 이사는 “심정지 사고가 많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한번 발생하면 대부분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대한 순간이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보상은 매우 미비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이러한 보상도 병원급의료기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의원급의료기관에는 수가책정도 되지 않고 제대로 된 장비나 교육도 갖춰지지 않은 현실이다.

이승준 대한심폐소생협회 홍보위원(명지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에 따르면 국내 전문심장소생술 인증 보유자는 2013년 기준 의사 2232명, 간호사 1733명, 응급구조사 698명이다.

병원급 이상 종사 의료인 중 전문심장소생술 인증 보유자 비율을 따지면 의사 중 4.6%, 간호사 중 1.7%만이 전문심장소생술 인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이라면 누구라도 필수적으로 전문심장소생술 인증을 보유해야 한다.



 
김현 대한심폐소생협회 전문심장소생술 위원장(연세대 원주의대 응급의학교실)은 “실제로 미국 의료기관에 취업하려는 우리나라 안과의사가 ACLS 교육을 받기도 한다. 미국의 병원들은 임상과에 관계없이 필수적으로 인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지난 198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한식 씨는 “미국에 처음 와서 간호사나 EMT들도 누구나 ACLS를 능숙하게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장마비 환자가 생기면 나같은 초보자는 뒤로 밀리고 간호사가 CPR을 주도할 정도였다”라고 전했다.

바쁜 의료진들이 10시간 30분에 달하는 전문심장소생술 교육을 받고 2년마다 재인증을 받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러나 미국의 병원들은 이러한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한다는 설명이다.

이한식 씨는 “2년마다 심폐소생술 인증을 재갱신하도록 되어있는데 그때마다 외과교실에서 오후시간을 따로 배당해주고 우리나라 돈으로 20만원 정도 하는 교육비용도 부담해줘서 부담이 없었다”며 “이는 병원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충분한 지원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한심폐소생협회는 미국처럼 10시간이 넘는 전문소생술 교육을 받기 어려운 국내 의료 여건을 감안해 2년 전부터 ‘한국형 전문소생술(KALS: Korean advanced life support)’ 과정을 개발해 교육하고 있다.

한국형 심장소생술은 교육시간을 5시간 30분으로 줄인 대신 이론강의를 줄이고 시뮬레이션과 임상현장과 비슷한 케이스 위주의 과정으로 바꾸어 교육 중으로 피교육자들로부터 반응이 매우 좋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노태호 홍보이사는 “교육컨텐츠가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각 병원에서 심정지 환자치료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국내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폐소생협회의 권고 가이드라인을 병원평가 항목에 추가하고 병원내 의료인은 최소 2년에 한번은 심장소생술을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태호 홍보이사는 “병원내 환자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정지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적절한 대처이다. 의료인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평가, 질관리)이 조성되어 심정지 환자에 대한 소생술의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열 기자 jun@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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