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의료원, 결국 동네의원 다 죽이나?

2015-01-14 08:59:51

개원가, 민간병원과 경쟁 지양하고 필수의료 제공해야

오는 2017년 완공을 앞둔 성남시의료원이 ‘공공의료의 제 역할을 하는 롤 모델이 될 것인지’ 아니면 ‘주변민간병원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로 전락할 것인지’ 기로에 섰다.

성남시가 2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지하 4층 지상 9층 건물에 517병상 23개 진료과를 갖춘 종합병원으로 태어날 성남시의료원이 결국 주변 동네의원을 고사시키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지역 개원가를 중심으로 확산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성남시의사회(회장 박응철)는 13일 오후 7시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성남시의료원 바로세우기’ 토론회를 개최해 성남시의료원이 표준 공공병원으로서 지역민간병원과 상생·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들은 의료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성남시 관계자로 구성됐다.

성남시 구시가지인 수정·중원구와 신시가지인 분당구의 의료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 분당구에 968개의 병의원이 밀집해 60.5%가 집중된 반면 수정·중원구는 629개로 39.4%에 불과하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도 분당구는 11.4명인 반면 수정·중원구는 5.5명밖에 되지 않는다.

성남시 관내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인 분당서울대병원(1103병상), 분당차병원(854병상), 분당제생병원(601병상) 등 3곳도 모두 분당구에만 집중돼있고 수정·중원구에는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토론에 참석한 성남시와 시민단체 관계자는 새로 들어설 성남시의료원이 ‘부족한 지역의 의료수요를 충족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반면 의료계 관계자들은 ‘엄청난 적자와 함께 주변 민간병원 경영난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덕수 성남시립의료원설립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의료원 건립으로 의료공백과 분당구와의 의료격차를 해소해 성남시민들에게 양질의 공공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를 위해 수준 높은 의료진을 영입하고 시의 감독기능은 강화하되, 경영 간섭은 최대한 배제하는 ‘책임경영문화가 정착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영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대학병원 위탁운영을 명시하고 있는 성남시의회 조례를 개정해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하고 의료원 운영과 관련 업무를 총괄할 수 있도록 법인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현상 성남시의료원 건립추진단장 역시 “수정·중원구의 의료공백과 분당구와의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원 설립이 불가피하다”면서 의료원의 운영방안으로 “종합병원(2차병원)으로서 진료에 집중하고 정부의 의료수가기준에 따른 적정진료를 실시하는 한편 예방증진서비스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성남시의료원으로 인해 주변 민간병원의 경영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듯 “의원급의료기관을 비롯한 각급 지역병원과의 환자의뢰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서로 연계를 강화해 민간과 경쟁보다는 보완협력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민간병원과 경쟁을 피하고 의료전달체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성남시 관계자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 관계자들은 결국 성남시의료원이 개원가의 경영난을 부추길 것이라는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배기수 지방의료원연합회장(경기도의료원장)은 “공공의료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민간병원과 경쟁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민간병원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성남시의료원이 민간병원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의료원 건립에 2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될 뿐만 아니라 공공의료원 운영 특성상 엄청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진료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라며 “모든 공공의료원 상황이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공의료원 특성상 선택진료비를 받지 않고 비급여 진료비를 가장 저렴하게 책정해야 하는 등 많은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지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며 오히려 최근에는 정부가 공공의료원에도 경영성과평가를 도입해 압박을 주려는 움직임마저 있을 정도다.

법률에 명시된 공공의료원의 목적은 ▲지역사회 의료안전망 역할 ▲의료서비스 불균형 해소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응급의료, 분만, 격리,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서비스 제공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배기수 회장은 이 같은 점을 들어 “성남시의료원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병원과 경쟁하기보다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예산지원액을 확보하고 공공의료원에 대해 수익성만을 잣대로 삼지 않는 올바른 평가방식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구일 의료와 사회포럼 공동대표(미래이비인후과 원장)는 “무조건 공공의료원은 천사, 민간병원은 악마로 보려는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의 적자를 합치면 900억이다. 서울대병원도 적자가 나는 판에 성남시의료원의 적자는 불가피하다”면서 “이는 다름아닌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이나 적정진료를 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현 의료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공공병원 적자는 ‘착한적자’라고 인정하면서 민간병원을 운영하면서 들어가는 임대보증금이나 공사비용 등은 수가보상조차 해주지 않고 이를 비급여 등으로 벌충할 수 있도록 눈감아 주고 있다”며 “이런 모순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 2013년 2월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민간병원도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게 되어 건강보험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모두 공공병원이라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관련 법률까지 바뀐 만큼 공공의료와 공공정책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더 이상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을 구분해 차이를 두기 보다는 공공병원 정책에 관한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임구일 공동대표는 “수정·중원구가 인접한 분당구보다 병원이 적어서 성남시의료원이 일반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자원낭비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공공의료원은 무엇보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필수의료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박응철 성남시의사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착한적자지원법’이 통과됨에 따라 ▲의료원별 지역특성에 따른 필수의료 도출 및 기능강화 ▲의료원 응급 격리 분만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 확충 ▲민간과 경쟁 축소 및 대상분야별 전문화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성남시의료원 개원이 가시화됨에 따라 성남시의사회는 의료원이 공공의료원으로서 민간과 경쟁을 지양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 제시 및 모니터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성남시의사회 회장으로 내정된 김기환 성남시의사회 수석부회장은 “시의료원 설립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하고 저수가 저부담하의 의료보험 구조에서도 일차의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지역 의료인과의 수평적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때 발생하는 적자를 착한적자라고 할 수 없으며 시민이 공감하는 타당한 예산지원도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차기 회장은 “성남시의사회는 앞으로 시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공공의료기관 및 공공의료의 역할에 대해 정책 제시 및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의사회 내 테스크포스팀을 설치해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배준열 기자 jun@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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