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없는 요요현상? '세트포인트'는 변한다

2018-04-04 06:00:00

섭식 중독이 비만의 원인, 체중은 유전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체중은 타고나며 고정돼 있다는 세트포인트(Set Point) 이론에서 보다 발전된 형태의 '세틀링포인트(Settling Point)'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대한비만연구의사회가 지난 1일 오전 9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23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오전 세션에는 서울대학교병원 해부학과 최형진 교수(이하 최 교수)가 '비만의 세트포인트 존재 여부와 변동성: 열심히 다이어트해도 몸은 체중을 기억하고 있다?' 주제로 발제했다.



우리가 보통 체중조절점이라고 말하는 세트포인트 개념은 에어컨 설정 온도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실내 온도가 에어컨 설정 온도보다 높아지면 스위치가 켜지고, 실내 온도가 설정 온도보다 낮아지면 스위치가 꺼진다. 이렇게 에어컨이 스스로 온도를 감지해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게 세트포인트이다."라면서, "혈압, 체온, 체중도 이 같은 세트포인트가 있다. 체중의 경우 우리 몸이 평소 인지하는 체중이 너무 늘어나면 몸이 알아서 체중을 줄이는 방식으로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기본 회로가 우리 몸 안에 있다."라고 말했다.

세트포인트는 세틀링포인트 이론으로 최근 좀 더 발전했다.

세트포인트는 80kg으로 태어난 사람은 끝까지 80kg이라는 관점인 데 반해, 세틀링포인트는 체중이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고 강수량과 같은 외부요인에 따라 체중이 변하며, 변하는 지점에서는 세트포인트처럼 계속 체중을 유지하려는 개념이다. 

즉, 세틀링포인트는 세트포인트 및 체중 변화를 포함한 것이다.

세트포인트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임신이다. 임신 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식욕이 늘어나 체중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임신 상태에서는 식욕이 유지되다가 출산하면서 살이 다시 빠지게 된다.

포유류의 경우 동면 시 세트포인트가 엄청나게 변하며, 동면을 끝내고 되돌아오게 되는데, 이를 통해 포유류의 세트포인트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트포인트 등을 이루는 요소에는 '항상성'이 있고,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해 죽지 않으려는 체계가 존재한다.

최 교수는 "배가 고프면 식욕 증가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 농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먹으라고 지시하며, 식사 후 30분 이내로 그렐린이 급감해 배고프지 않게 만든다. 식사를 시작하면 그만 먹으라고 지시하는 글루카곤양 펩티드-1(Glucagons Like Peptide-1, GLP-1), 펩타이드 YY(Peptide YY, PYY), 시스토키닌(CholeCystoKinin, CCK) 등의 호르몬이 작용한다."라면서, "GLP-1 호르몬은 주사 형태의 비만치료제로 사용된다. 내가 맞아본 결과 식욕이 엄청나게 억제돼 저녁을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러한 식욕 브레이크가 현재 비만치료제로 쓰이고 있다."라고 했다.

그렐린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하루 세 번씩 엄청난 피크가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 피크를 조금만 잘못 연구해도 혈중 그렐린 레벨이 왔다 갔다 한다."라면서, "비만 환자가 체중을 감량하면, 온종일 배고픈 상태가 돼 요요현상이 발생한다."라고 했다.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Leptin)과 관련해 최 교수는 "렙틴은 그렐린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이상을 굶으면 렙틴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죽을지도 모르니 빨리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라면서, "비만 진료 시 환자에게 '배고픔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렙틴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라고 했다.

요요현상에서 호르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최 교수는 "90kg대에서 80kg대까지 10kg 정도를 감량해서 일 년간 유지하면 우리 몸이 요요현상을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한 연구가 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났어도 먹고 싶은 욕구는 여전히 높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라면서, "더 잔인한 연구가 있었다. 피험자 체중의 10%를 빼거나 찌우는 식으로 체중 변화를 시도했는데, 기초대사량도 이와 마찬가지로 변했다. 살을 찌우면 기초대사량이 늘었고, 살을 빼면 기초대사량이 줄었다."라고 했다.

즉, 체중을 감량하면 기초대사량도 많이 줄어들어 평소보다 밥을 덜 먹어도 살이 찌는 상태가 된다.

최근 시행된 몰래다이어트 연구와 관련해 최 교수는 "다이어트 연구에서는 피험자들이 다이어트를 인지해 의식적 · 정신적 문제가 항상 생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몰래 살을 빼는 약과 아닌 약 두 개를 줬다. 그런데 몰래다이어트를 했어도 피험자들은 더 먹었다. 몰래다이어트였기 때문에 다이어트 보상 심리로 먹는 게 아니었고,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소보다 좀 더 먹었다."라고 했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사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체중 감량 후 초반에는 엄청 덜 먹지만 먹는 양을 서서히 늘려가게 돼, 일년 후 결국 처음 먹는 양으로 되돌아간다.

이 연구와 관련해 최 교수는 "우리 몸은 죽지 않으려고 먹고 싶어 하는 욕구를 늘린다. 이때 기초대사량이 떨어진 채로 유지되기 때문에 나가는 에너지보다 들어오는 에너지가 더 많아져 요요현상이 서서히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 교수는 '쾌락'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다.

최 교수는 "대학병원 임상 교수로 있을 때, 음식에 미친 환자를 많이 만났다. 먹지 말라고 계속 얘기해도 계속 먹었다."라면서, "생존을 위해 먹는 것과 쾌락을 위해 먹는 것이 따로 존재한다. 현대인 중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쾌락을 위해 먹는다."라고 말했다.

햄버거, 피자, 치킨 등의 그림을 접하면, 사람 뇌의 쾌락 중추에 자극이 발생해 쾌락이 늘어난다. 이를 살핀 연구가 Wanting(원함)과 Liking(좋아함) 연구이다.

최 교수는 "Wanting은 갈망하는 것이며, Liking은 좋아하는 것이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많이 맞다 보면 Wanting은 점점 늘어나는 데 반해 Liking은 줄어든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들이 갈망하지만, 행복하지는 않다."라면서, "이는 마약중독뿐 아니라 음식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도넛에 대한 갈망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 안 먹고 버틸 수 없어서 계속 먹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는 안 먹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잔업, 세금 정산 등의 스트레스가 찾아오면서, '미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넛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다. 안 먹기로 약속했던 도넛을 다시 갈망해, 결국 다시 먹게 되고 행복감은 줄어드는 상태가 된다."라고 했다.

중독은 설탕 · 소금 중독이 아니라 설탕 · 소금 · 밀가루 · 기름이 적절히 섞여서 입안에 퍼져나갈 때 느끼는 종합적인 행위 · 경험으로 얘기된다.

최 교수는 "맛있으니까 많이 먹게 되는데, 많이 먹다 보면 죄의식을 느낀다. '네가 인간이냐'는 주변 비난도 받는다. 죄의식 등을 느껴 그만 먹게 되지만, 갈망은 더욱더 커진다. '치즈케이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주변에 문제가 발생하면 식욕이 결국 폭주한다. 잔뜩 먹고 나서 목에 손가락을 넣어서 토하고, 또다시 죄의식에 빠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된다."라고 했다.

인터넷 게임, 쇼핑, 일, 사랑, 섹스, 겜블링 등과 마찬가지로 섭식(Food & Eating)도 대표적인 행위 중독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 교수는 "모든 동물은 자는 게 기본이며, 일어나면 사냥을 시작해 음식을 발견하고, 음식을 먹으면 소화한 후 다시 누워서 자야 한다. 이 순환고리가 돌면서 생존을 위한 항상성 조절 시스템과 쾌락 추구 시스템이 서로 의사소통한다."라면서, "음식을 발견하면 '이건 내가 좋아하는 도넛이구나!'라는 푸드메모리가 작용하고, 동시에 '지금 나는 그렐린이 높아져서 배고픈 상태야'라는 항상성 시스템이 작용해 종합적으로 '이걸 먹으면 정말 행복하겠구나'라는 결론이 난다."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살이 찌게 된다고 했다.

최 교수는 "모든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지 않아야 한다. 지구상 어떤 동물도 뚱뚱해지지 않는데, 오직 사람과 사람이 키우는 동물만 뚱뚱해진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 하는데 너무 맛있기 때문에 한 번 더 먹게 돼 결국 비만하게 된다."라고 했다.

에어컨 온도가 26도로 설정된 방에서 불을 피우게 되면, 온도가 계속 올라가지 않고 28도 정도로 불과 에어컨이 타협점을 이루게 된다. 이때 온도를 낮추는 방법은 불을 끄는 것이다. 최 교수는 "불을 끄면 다시 26도로 돌아가게 되며, 현대인도 이 같은 상태에 있다. 구석기 시대에서는 한 바퀴를 뛰어야 고기 한 점을 먹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배달을 통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아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누구라도 체중이 올라갈 수 있다."라고 했다.

비만 치료를 신경과학 분야 관점에서 살펴보면, ▲비만도가 낮을 때 예방 프로그램, 인지 행동 · 심리 치료 등을 진행하고 ▲비만도가 심해지면 자기자극술(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TMS), 미주신경자극술(Vagus Nerve Stimulation, VNS) 등을 시행하며 ▲더 심할 경우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 DBS)을 실시한다.

최 교수는 "날트렉손(Naltrexone)은 원래 아편 치료제, 알코올 · 도박 중독 치료제였는데, 현재는 체중감량 목적으로 비만인들이 저용량으로 복용하고 있다. 부프로피온(Bupropion)도 우울증 치료제이자 금연보조제였는데 저용량으로 먹어서 살을 빼고 있다. 이것만 봐도 비만 치료 자체가 중독 치료라고 생각한다."라면서, 다양한 신경치료가 세트포인트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인지 행동 치료와 관련해 최 교수는 "대학병원 교수로 있으면서, 환자에게 무조건 먹지 말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환자에게는 인지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 이를 고려 안 하고 무조건 빵, 떡을 먹지 말라고 얘기해서 치료가 아무 소용이 없다."라면서, "심리적 요소와 인지, 행동 등이 엮여 있고, 이들이 연관해 몸을 바꾼다는 관점을 생각하게 됐다."라고 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비만 치료를 위해 DCBT(Digital Cognitive Behavior Therapy)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심리치료사가 매일 접근해서 치료한다. 환자가 식단을 입력하고 저녁마다 감정을 포함하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을 얘기하며, 이를 듣고 심리치료사가 치료한다. 이를 일주일간 진행하면서 중간에 인바디를 두 번 찍는다."라면서, "자세하게는 '오늘 간식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오늘 기분이 왜 그러세요?', '오늘 또 이상한 생각 했죠?' 등을 물어보고, 치료는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닌가요? 단백질을 더 드세요' 등으로 진행된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판기, TV 광고 등에서 비만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내가 생각하는 비만클리닉은 환자 정보를 전부 모아서 개인 맞춤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치료를 하루 이틀 하면 안 되고 일 년 내지 이 년 간은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경애 기자 seok@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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