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요. 정신장애 환자들도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정신질환 의료급여 개선을 촉구하며 발언한 내용이다. 현재 자행되고 있는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국가 주도의 의료급여 차별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정신질환 치료행위에 대한 부분적 행위별수가제 도입과 일당정액수가제로 발생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의 의료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진행됐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급여제도는 오랜 시간 동안 차별에 대한 지적을 받아 왔다. 정신질환자에 한에서만 환자에게 제공된 각각의 진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합산하는 ‘행위별수가제’가 아닌 일정 금액에 진료와 입원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포함시키는 ‘일당정액수가제’를 적용하며, 저비용의 질 낮은 치료를 받게끔 하는 폐단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2017년 제도 개선의 일환으로 부분적으로 정신과 의료급여 외래진료에 ‘행위별수가제’가 적용되었지만, 이 또한 건강보험과 비교해 의료급여에 제한이 존재하고 입원 환자에 대해서는 기존 일당정액수가제가 지속되고 있어 여전히 개선점이 많은 현실이다.
이날 발제를 담당한 이상열 대한정신약물학회 부이사장은 ‘정신질환 의료급여 입원수가의 행위별수가제 전환 필요성’을 주제로 정신질환 의료행위 수가제도에 대한 차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개선점에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상열 부이사장은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차별 받지 아니하며,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고 말하며, “현재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는 약 25~30만 명 정도이며,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잠재적 환자는 약 150~200만 명으로 정부의 정신질환 의료급여 차별은 이 200만 명의 국민에 대한 차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부이사장은 “게다가 정신질환은 환자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질환의 타격 범위가 엄청난 질환”이라며, “따라서 그에 걸맞는 정책적 지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정신장애 유병률이 높으며, 특히 우울증의 유병률이 현격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이사장은 “이러한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국가는 더 나은 치료 보장은커녕 지난 10년간 최소한의 치료만 하라고 주장해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정신과 입원진료 실적 기준 다빈도 상병 순위별 진료 현황에 따르면, 자살 위험이 높은 우울증과 양극성 정동장애가 각각 3, 4위로 약 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집중치료가 시급한 입원 환자의 진료비용을 정액수가로 한정시켜 놓으니 질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한정된 비용에서 환자 진료로 이윤을 내기 위해서 병원은 가장 저렴한 약제를 사용하게 되며, 최소한의 치료만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8년 현재 정신장애 의료급여 현황을 살펴보면, 외래의 경우 행위별수가제가 적용되지만 건강보험이 주 7회의 정신치료를 보장하는 반면 의료급여는 주 2회만 보장되며, 최신 치료제인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역시 제외되어 있다.
입원의 경우에는 정액수가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입원기간에 따른 G1~G5 차등 지불로 환자의 장기 입원을 초래하고 최소한의 치료만 제공하는 폐해가 지속되고 있다.
때문에 외래 당시 효과 좋은 약물을 사용하다가도 입원 시 저렴한 약물로 바꿔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이상열 부이사장은 호소했다.
이날 이 부이사장은 정신장애 의료급여 입원비 행위별수가제로의 단계적 전환을 제안했다. 그는 “이번 제안은 정신의료기관 장기입원 및 정신장애 인권회복을 위한 필수적 사항”이라며, “현재 정신질환 의료급여의 차별은 과거 정부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적폐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8년도에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등의 입원비를, 2019년에는 초발정신증과 양극성장애의 입원비를, 2020년에는 조현병 입원비를 행위별수가제로 단계별 전환해 줄 것”을 제안했다.
한편, 이후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 입원 정액수가제의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한 최봉영 정신건강정책연구소 소장은 현행 정액수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부당함을 비판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정신질환자 1인의 1일 진료비 정액수가는 43,478원으로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76,725원 대비 56.7%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 질환자의 건강보험 진료 보장률이 97%인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수치이다.
또한 최 소장은 기본료인 입원료 및 입원기간별 차등제의 차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건강보험은 입원의 기본료인 ‘입원료’만 입원기간에 따라 차등수가를 적용하는 데 반해 의료급여 정액제는 입원료, 약제, 치료, 식대 등 모든 부분에서 차등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정신질환 치료는 상병, 연령에 따른 다양한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행위가 정액제로 묶여 있어 다양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에 오히려 열악한 치료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의료급여 정액수가는 지난 9년간 1.9% 상승에 그쳐 물가, 임금 인상률 등에 따른 각종 비용의 인상을 감안하며 오히려 20% 이상 삭감이 된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윤보현 대한조울우울증학회 이사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도혜진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 사무관, 이용환 법무법인 고도 대표변호사, 김동욱 맘편한의원 원장, 김진일 경기도 정신건강복지센터 31개 시∙군 가족대표,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가 패널로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다수의 정신장애 환자와 가족들이 참여하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실제 임상에서 정신장애 환자 진료를 하고 있는 김동욱 맘편한의원 원장은 자신이 치료한 조현병 환자들 사례를 소개하며, “정신질환 의료급여 수가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 혹은 산술적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재정적 관점을 중요시해온 그간의 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도혜진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 사무관은 “정신질환에 대한 입원수가를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개선 필요성에 대해선느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어 “다만, 입원수가 개선에 있어 행위별수가제로 전환할 것인지 혹은 정액수가제를 현실화할 것인지, 만약 행위별수가제로 전환한다면 일괄적 전환인지 혹은 단계별 전환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며, 추후 용역을 통한 연구와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제한된 비용 안에서 효과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환자와 가족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타파와 질환 홍보 및 정보 공유에 정부가 더욱 힘써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