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가 “의사결정 능력이 정상적인 환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정한 요건아래 이뤄지는 소극적 안락사는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영호 판사(대구지법)는 사견임을 전제로 “소극적 안락사야말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 자체를 거부하고 자연적인 수명만을 그대로 누리겠다는 환자의 의사표시”라고 밝히고 “이러한 소극적 안락사가 비종교적이고, 비윤리적이기에 시행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Living Will(생전에 작성한 유언장)에 있거나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결정한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영양공급조치를 중단해 사실상 굶어죽은 ‘테리 샤이보 사건’에서도 연방법원 판사에 의해 다시 한번 소극적 안락사 요건을 갖추었는지를 검토해 달라고 청원했을 뿐 사건 자체를 문제삼는 종교인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판사는 또 “미국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는 당연히 허용하면서도 그 시행은 매우 엄격히 규제해 시행 이전에 반드시 환자의 회생가능성 여부와 환자의 연명치료거부 의사의 표시 여부를 법원의 판단을 받아 시행토록 돼있다”며 “이는 아직까지 소극적 안락사의 개념정립 조차 안돼 있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디로 나가야 할 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박 판사는 “아직 생명의 인위적인 단축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자연적인 사망의 개념에 가까운 소극적 안락사에 대하여 조차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어져 있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상태에서 소극적, 적극적 안락사가 무작정 인정될 경우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안락사라는 미명아래 살인 당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인간의 행복하게 살 권리에는 행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만을 다할 권리도 포함되어야 한다”며 “의사결정 능력이 정상적인 상태의 환자의 요청으로 일정 요건아래 행해지는 소극적 안락사는 개인의 기본권에 의하더라도 당연히 허용되야 한다고 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끝으로 박 판사는 “우리나라의 소극적 안락사 논의도 그 허용요건 및 심사를 철저히 시행함으로써 현재 아무런 기준없이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소극적 안락사를 모두 공개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며 “소극적 안락사의 논의가 향후 활발히 진행돼 입법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해결될 날이 조만간 도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박 판사의 이런 주장은 2일 오후 7시 대구시 기독의사회(회장 조원현 계명대 동산병원장)가 주최하는 ‘연명치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포지엄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김도환 기자(dhkim@medifonews.com)
200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