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마지막과 혈우병

2022-04-28 13:43:29

제주에서 부산 가는 비행기를 타면 거문도 상공을 지나가게 된다. 날이 좋으면 두 개의 섬이 마주 보며 만든 천혜의 항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거문도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거문도를 볼 때마다 개화기에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역사가 떠오른다.  

 

 

국사 시간에 배우기로는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이 외딴 섬을 점령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당시의 세계를 살펴보면 러시아제국은 나폴레옹을 패퇴시킨 후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히 남진정책을 폈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중동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1839년과 1878), 유럽에서는 크림 전쟁(1853)을 불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거문도를 점령한 것이다(1885).

19세기의 해양 강대국인 영국과 대륙의 맹주 러시아는 이렇게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했지만, 러시아제국은 거문도 사건 후 30여 년이 지나면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제국의 몰락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의사인 필자가 보기엔 질병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병이 바로 숙적 영국 왕실로부터 넘어온 것이다. 오늘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해본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차르(황제)’는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Nikolai II Aleksandrovich)로 줄여서 니콜라이 2세로 부른다. 1868년에 황태자 알렉산더 3세와 덴마크 공주 마리 헤오도르브나 다그마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니콜라이는 갑자기 즉위했으며 약혼녀였던 헤센 공국의 알릭스 빅토리아 헬레나 루이즈 베아트리스 폰 헤센바이라인 공주와 서둘러 결혼까지 했다. 알릭스는 황후가 되면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로 불렸다.  

당시에 유럽의 왕가는 결혼으로 이어진 인척인 경우가 많았다. 니콜라이는 영국 국왕 조지 5세와는 이종사촌(엄마들이 자매)이었고, 알렉산드라 황후는 조지 5세의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자,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 카이저(황제)와 역시 이종사촌 사이였다. 결혼할 때는 몰랐겠지만 이렇게 얽히고 설킨 혼인동맹으로 제국의 미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폐쇄적이고 전제적이던 전임자와 달리 니콜라이2세는 국제적 감각을 지닌 성군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즉위했다. 알렉산드라 황후와 금술도 좋아 올가(1895), 타타니아(1897), 마리아(1899), 아나스타시아(1901) 공주가 잇달아 태어났고 황위를 이을 왕자 알렉세이도 태어났다(1904).

결혼 10년 만에, 그것도 4명의 공주 뒤에 얻은 황태자는 황실의 큰 기쁨이 되었지만 곧 황태자의 건강은 황실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대수롭지 않은 부상에도 쉬이 멍이 들었고, 피가 한번 나면 쉽게 멎질 않았다. 짜르는 해군 수병 2명을 황태자 곁에 밀착 경호를 시켜 사소한 부상이라도 막으려 했다. , 이쯤 되면 이 병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바로 혈우병이다.

황태자의 문제만으로도 밤잠을 이루지 못할 짜르였지만, 당시 제국은 외우내환에 시달렸다. 사사건건 견제구를 던지는 영국 외에, 대담하게 러시아에 대든 일본과의 전쟁에서 러시아는 패전하는 굴욕을 맛보았다(1905).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시위는 황제의 기병대가 무자비하게 진압했다(‘피의 일요일사태, 1905).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러시아 민중들에겐 하느님과 동격이었던 짜르는 권위와 존경을 잃게 된다(현재 러시아 정교회는 니콜라이2세와 가족을 순교 성인으로 추앙한다).

 

라스푸틴의 등장

당연한 말이지만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 러시아의 명의들이 황궁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당시 의술로는 혈우병은 치료할 수 없었다. 황후는 절망했고 결국 신앙의 힘에 의지하게 되는데 이때 신통력으로 황태자를 치료하겠다는 수도사 라스푸틴이 등장했다(1907).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라스푸틴이 치료를 시작하자 황태자의 병세가 확연히 나아졌다(라스푸틴은 의사의 처방약을 모두 끊게 했는데 약들 중에는 당시 만병통치약인 아스피린도 있었다. 당연히 출혈 성향이 나아질 것이다. 아울러 라스푸틴은 최면술에 능했다고 한다). 황후는 뛸 듯이 기뻤고 곧 라스푸틴을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스푸틴은 황후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궁정에서 숨은 실세가 되어 전횡을 일삼았다. 그는 갖은 악행과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그의 위세에 눌려 싫은 소리 하나 하질 못했다.

하지만 황후는 라스푸틴을 비호하는 신하들을 등용하도록 황제를 부축이기만 했다. 라스푸틴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궁정에는 짜르는 라스푸틴의 허수아비라는 소문이 나돌 지경이 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와 관료, 피폐한 내정 등등으로 제국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다.

참다 못한 왕족들이 일어나 라스푸틴을 암살했고(1916년 말). 러시아판 요승 신돈(辛旽)’의 막장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국이 다시 힘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석 달 후인 19173월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황제는 폐위되어 가족들과 함께 가택연금을 당했다.

 

 

혁명은 곧 내전으로 전개되었다. 혁명을 지지하는 적군(赤軍)에 맞서 구 귀족권을 중심으로 뭉친 황제를 지지하는 백군(白軍)이 궐기하고 일어선 것이다. 초기에는 자금력과 조직력이 막강한 백군이 우세했고 황제 구출작전까지 폈다.

다급해진 적군은 1918717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황제와 그 가족을 사살했다. 시신에는 황산을 뿌려 훼손한 후 암매장했다. 며칠 후 백군이 진격해왔지만 황제와 그 가족들의 유체를 찾지는 못했다(1998년에야 발견되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다).

황제와 그 가족들이 죽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에, 그들이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뒤에 자신이 황제의 막내딸 아나스타시아 공주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파리에서 나타나 세상을 놀래 켰다(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1956년과 1997).   

 

황태자의 혈우병

         , 그렇다면 러시아 제국의 종말을 앞당긴 혈우병은 어떻게 황태자에게 흘러 들어왔을까?

모계를 통해 반성(伴性)유전되는 혈우병은 당연히 황후 알렉산드라를 통해 대물림 되었다. 알렉산드라의 어머니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고, 혈우병의 유전자는 바로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내려왔다.

빅토리아 여왕은 돌연변이로 혈우병 유전자의 보인자(保因者)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보인자란 자신은 증상이 없이 발병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에게 혈우병 환자가 있어야 한다.

 

여왕은 슬하에 45녀를 낳았다. 네 명의 왕자들 중 레오폴드가 혈우병에 걸려 31세에 출혈로 요절했다. 다섯 공주들 중에는 앨리스와 베아트리체 공주가 보인자였고, 공교롭게도 두 공주는 해외로 출가해 스페인, 독일, 러시아 왕실에 혈우병이 전파되었다. 앨리스 공주는 독일의 헤센대공국으로 시집을 갖고 여기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가 될 공주를 낳았다.  

알렉산드라 황후의 외동아들 알렉세이 황태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들 중 3명의 왕자가 이미 혈우병으로 요절했다. 그 중에는 알렉산드라의 오빠인 프리드리히도 있었다. 아마도 왕실은 왕자가 태어나면 혈우병을 앓을 가능성을 짐작하고는 있었겠지만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왕자라 해도 혈우병에 안 걸렸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하지만 4녀 후 얻은 알렉세이가 혈우병 환자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탯줄을 자른 배꼽에서 11일 동안이나 피가 멎질 않았으니.

만약 알렉세이 황태자가 혈우병을 앓지 않았다면 요승 라스푸틴이 궁정에 들어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제국 몰락의 시간표는 조금 늦추어졌을까? 역사에는 만약이 없으니 모를 일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비교가 되지 않을까?    

 

스페인 왕실의 경우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베아트리체는 독일의 바텐베르크 가문에 시집을 가서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를 낳았다. 공주는 스페인의 알폰소13세와 결혼했고 이를 통해 스페인 왕가에 혈우병 유전자가 옮겨갔다. 스페인의 빅토리아 왕비는 슬하에 42녀를 낳았는데, 두 아들이 혈우병으로 요절했다.

공교롭게도 알폰소13세 치세(1886~1931)의 스페인은 니콜라이2세의 러시아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스페인 역시 러시아처럼 대내외적인 어려움 속에 있었다. 100년 동안의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그 와중에 대륙의 보물창고였던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은 독립했다. 결정타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한 것이었다(1898). 제국은 화려한 영광을 잃고 신흥 강국 미국에게 열강의 자리도 내어주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 할까? 스페인 궁정에는 라스푸틴은 없었다.

알폰소 13세의 스페인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지켜 러시아처럼 전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진 않았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1922년에 쿠데타가 일어났고, 알폰소 13세는 이를 승인했다. 1931년 선거에서 공화파(왕정을 거부하는 정파)가 승리하자 알폰소 13세는 왕위를 내어주고 프랑스로 망명한다.

하지만 국외에서 왕위 승계권을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 프랑코가 허용해준 귀국을 거부하고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다(1941).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세상을 떠나자 망명지에서 태어난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위를 되찾았다. 지금은 후안 카롤로스의 아들 펠리페 6세가 스페인을 통치하고 있다.  

대제국의 쇠퇴기, 신흥 열강과의 쟁투에서 패배, 혈우병에 걸린 왕자 등의 배경은 닮았지만 한 왕조는 몰락으로, 한 왕조는 명맥을 이었다. 그 모든 것이 설마 라스푸틴 같은 인물의 존재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마치면서

10세기에 아랍의 의사는 작은 상처로 생긴 출혈이 멎지 않아 죽은 증례를 기록으로 남겼다. 1803년에는 필라델피아의 의사가 건강한 딸들을 통해 유전되는, 남자가 환자의 대부분인 유전병을 발견한다. 1828년에는 취리히의 의대생이 혈우병(hemophilia)’을 처음으로 명명했고, 1947년에는 A형과 B형 혈우병으로 나뉘어졌다.

빅토리아 여왕이 물려준 혈우병은 B형이다. B형 혈우병은 크리스마스 병(Christmas disease)’으로도 불리는데 성탄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이 병을 앓은 최초의 환자인 스테픈 크리스마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참고 문헌

1.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동아출판사/1982

2.    대서양의 두 제국; 영국령 아메리카와 에스파나령 아메리카 1492~1830(Empires of the Atlantic World: Britain and Spain in America 1492-1830 by Jojn H. Elliot, 2006)/그린비/2017

3.    한 권으로 보는 세계사 100장면/김희보 지음/가람기획/1997

4.    피의 역사(Blood by Douglas Starr/1998)/더글러스 스타 지음/박범수 옮김/이룸/2004

5.    역사를 바꾼 31명의 별난 환자들(An Alarming History of Famous and Difficult Patients by Richard Gordon,1997)/리차드 고든 지음/김철중 옮김/에디터/2001

6.    세계사를 속인 거짓말/이종호 지음/뜨인돌/2002

7.    위키백과

출처: 디아트리트 VOL. 19 NO. 1




박지욱 medifonews@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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