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의료개혁, 대한민국 붕괴된다”
2만 5000여명(의협 추산)에 달하는 의사∙의대생들이 의료 정상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한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가 20일 숭례문 일대에서 개최됐다. 이번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선배들의 외침 “의료의 정상화, 의사들이 앞장선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후배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명분은 ‘대한민국 의료를 지키자는 것’ 하나였다”면서 “윤 대통력이 탄핵됐지만 아직도 돌아갈 명분이 없다는 후배들의 말에는 체면이나 자존심이 아닌, 우리나라 의료가 정상으로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절박한 질문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지키려 했던 가치가 회복될 수 없다는 판단에, 우리 후배들은 아직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오늘의 전국의사총궐기대회는 단순한 시위가 아닌 후배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주는 자리”라며 “지역의료, 필수의료의 붕괴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모습이다. 수가 체계는 여전히 비정상이고, 정부는 의사 탓만 하고 있다. 그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은 “전공의 없이 진료 보조인력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의견도, 이를 위한 전담팀까지 꾸리려 한다는 추진도 나오고 있다”고 하면서 “진료보조인력은 말그대로 보조인력이지만, 의사들의 고유 영역인 ‘진료’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보조인력을 쓰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는 것도 무시한채 현실에 만족하기 위해 편안함만을 위한다면, 결국은 수련병원이라는 절대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우리 선배의사들도 지금의 의료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해결해야 한다고만 주장할 뿐이다. 열화와 같은 의지가 있어야 우리가 바라는 진정으로 환자들을 위한 의료환경이 만들어질 수가 있다”며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지금까지의 세계 최고였던 의료 수준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최정섭 회장은 “윤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비과학적 무리한 정원확대를 추진하며 의사들을 악마화한 또 다른 책임자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잘못된 의료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의료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인사들로 의료정책이 설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회장은 “환자를 직접 돌본 전문가들이 정책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잘못된 정책을 철회하고 탄압받고 조롱당한 청년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로 그들이 의료현장과 강의실로 돌아와 붕괴돼버린 대한민국 선진의료를 다시 일으켜세울 수 있게 하달라”면서 “더 이상 의대생, 전공의들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학교와 환자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극복해나가자”고 전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조윤정 회장은 ”우리나라 의대는 ‘양질의 의사를 양성한다’는 비전하에 ‘강의부터 대학병원 실습’까지 의도적인 반복학습으로 구성된다. 모든 ‘의료개혁정책’은 이렇듯 최고로 선진화된 의대 교육과정을 반드시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의대를 신설하면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회복된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교수나 교육 병원이 준비되지 않은 채 의대를 신설하는 것은, 환자를 살리지 못하는 ‘무늬만 의사인 가짜 전문가’를 양성하는 길”이라면서 “의료가 선거철 표와 맞바뀌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전국에 명의가 있는 나라는 정부, 국회 및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정책의 문제점

대한의사협회 대선기획본부 김창수 공약연구단장(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은 “정책의 결정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정책이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기반하지 않고 있다”며 “의사의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필수의료를 하도록 정책을 만들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이어 정부가 말하는 ‘의료개혁’은 무엇이냐고 호소하며 가장 큰 문제는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발표 당시를 회고하면서 “의료계와 수없이 논의하고 협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의료계가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비밀리에 기습적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고 밝혔다.
또 “잘못된 의료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타난다”면서 정책 재검토를 촉구했다.
“처단대상 전공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발언에 나섰다. 먼저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미 양국 방위비 분담금이 1.5조원, 네이버의 영업이익이 2조원인데 이번 의료정책의 실패로 3.5조원의 국민세금이 증발했다”면서 “국민의 생명을 정말로 위한다면 정부의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사태를 조속히 수습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여당을 향해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과오를 인정 및 반성하고 정책 결정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야당을 향해서는 그간 요구해온 노동권 보장 등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국회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했던 것은 정부, 법을 어긴 것도 정부,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것도 정부”라면서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근로기준법을 보장받고 싶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교과서대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끝으로 “의료체계를 개선하지 않고 단지 의사 수만 늘린다면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돼 의료 민영화에 다가가거나, 앞으로 10대, 20대, 30대, 젊은 세대의 건강보험료 부담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의 구조로는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기피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밥그릇 싸움’이 아닌 대한민국 의료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의대교육, 정부가 보장하라”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장은 “최근 정부는 2026학년도 모집인원을 기존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2027년부터는 추계위를 통해 증원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의대정원은 과학적 추계에 따라 교육 현장이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학 총장들은 PK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언급하며 총장들이 무작정 짓겠다는 건물에 맞춰 증원을 하겠다는 것은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또 이 회장은 이마저도 불쾌하다고 유감을 표한 복지부에는 교육을 신경쓰기는 하는 것이냐며 질타했다.
이 회장은 “그릇된 정책으로 오히려 수련을 못하겠다는 학생들만 늘고 있다”며 “그 어떤 정권에서도 손을 댈 때마다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지는 포퓰리즘에 다시는 의료가 이용돼서는 안 된다.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왜 뛰쳐나왔는지를 돌아봐달라”고 호소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행 아닌 복원”

이번 궐기대회의 마지막 순서로 결의문 낭독과 함께 의료정상화 현수막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대한개원의협의회 박근태 회장을 비롯해 한국여자의사회 홍순원 회장,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한미애 부의장,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 최창민 위원장은 결의문 낭독을 통해서 “의사들의 정당한 목소리에 대해, 정부는 대화가 아닌 ‘명령’과 ‘억압’으로 일관해 왔다”면서 “의료는 결코 정치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되며, 지금 필요한 것은 강행이 아니라 복원”이라고 외쳤다.
또 △윤석열표 의료개악 즉각 중단 △의협과 함께 보건의료 정책 전반을 지속가능하게 재설계 △의대생∙전공의 대상 위헌적 행정명령 공식사과 및 학습권과 수련권 회복 위해 실질적, 책임있는 조치 시행 △의평원 재인증 실시 및 교육 불가 의대에 대한 입학정원 조정 등 현실적인 대안 즉각 제시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