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제약기업’ 선정기준에 대한 허점이 곳곳에서 지적되면서, 실효성 있는 산업육성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정부는 매출액 대비 R&D 비중이 일정 기준 이상 되는 업체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해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매출액 1,000억원을 기준으로 미만인 업체의 경우 10% 이상, 1,000억원 이상은 7% 이상 돼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R&D 투자비율로 이 기준에 충족되는 기업은 연간 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 가운데 총 9곳이 해당된다.
LG생명과학(19.3%), 한미약품(13.6%), 한올바이오파마(13.2%), 유나이티드제약(11.9%), 안국약품(9.6%), 종근당(9.4%), 동아제약(7.7%), 녹십자(7.2%), 대웅제약(7%) 등이다.
반면, 1,000억원 미만 기업 가운데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R&D에 투자율이 높을수록 신약개발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라는 얘긴데, 실상 업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국내 신약은 ‘선플라주’(SK케미칼)를 시작으로 17품목이 허가받아 15품목이 출시됐다.
17개의 신약을 개발한 업체 15곳 중 정부의 R&D비율 기준에 해당되는 업체는 LG생명과학, 종근당, 동아제약, 대웅제약 4곳뿐이다.
따라서 이 기준대로라면 JW중외제약과 SK케미칼은 신약을 2개나 개발했음에도 ‘비혁신적인 기업’이 되는 셈이다.
현재 제약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기준을 다양화 할 필요가 있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실제로 JW중외제약 최학배 전무는 지난 7일 제약협회에서 열린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하위법령 설명회’에서 “신물질 신약의 개발에 성공한 회사와 새로운 기전의 혁신신약을 임상단계에서 개발하고 있는 회사는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하는 것에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즉, R&D 비율 이외에 현재 신약을 보유한 회사나 개발 중인 회사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업계 관계자들은 신약이 제네릭에 비해 투자기간, 금액이 높은 반면 투자회수율은 낮은 특성상 무조건 개발을 강요하는 것은 자칫 업계 전체를 도산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례로 현재 출시된 국내 신약 가운데 성공했다고 평가할만한 매출이 발생하는 품목은 동아제약의 ‘자이데나’ 정도가 유일한 것이 현실이다.
국내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LG생명과학의 ‘팩티브’의 경우 연간 매출액이 5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항궤양제인 ‘레바넥스’(유한양행)과 ‘놀텍’(일양약품)은 월 매출이 5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레바넥스는 출시 후 1, 2년은 100억원대 매출을 올렸으나 이후 절반가량 뚝 떨어졌으며, 일양약품이 최단기간 100억원대 매출을 기대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놀텍도 출시 1년반이 지난 현재 월 매출 2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장기투자 해야 하는 분야인데다 투자비 회수도 오래 걸리거나 회수를 장담할 수 없다”며 “약가인하로 인해 개발 중이던 것도 포기할 판국에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신약개발에 돈을 걸고 도박할 바보는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8.12 약가인하로 인한 충격파가 상당한 상황에서 신약개발을 독려하는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의견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정부의 약가인하 조치에 도산되거나 퇴보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기업들이 투자하는 것만큼의 이윤은 보장되는 환경을 정부가 제대로 만들어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