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처리특례법, 의료계·환자·시민 모두 ‘비판적’

2024-03-04 05:50:11

政,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공청회 개최

정부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병원계에서는 보험 가입·산정 여부·범위·대상자 등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협의 등을 통해 조율해야 한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환자·시민단체들 또한 입증 책임 전환을 요구하는 한편, 형사 책임 부담 완화 범위는 생명에 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고 난이도가 높은 필수의료행위로 한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외에도 음주 상태로 수술을 해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형사 책임 부담 완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담긴 법의 허점도 발견돼 이번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초안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공청회가 2월 29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공청회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중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해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제정 추진과 관련해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사이에서 특례 적용범위 등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어려운 필수의료 현실을 고려해 정부가 대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생각에서 양 부처가 서로 양보하며 합의할 수 있는 제정안을 마련하게 됐음을 밝혔다.

이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주요 내용이 소개됐는데, 이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반의사불벌’ 특례로,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어떤 상해가 발생했더라도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상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여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 치사죄를 면제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종합보험 가입 특례로, 책임보험이 정해진 한도 내에서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라면 종합보험은 상해로 인해 배상해야 하는 금액을 모두 대신 배상하는 구조이며, 특례로 필수의료 한정으로 진료하다가 상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환자 사망에 대한 특례인 ‘형 감면 특례’로, 필수의료 행위를 하면서 발생한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의료인이 전체 피해를 커버할 수 있는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했다면 조사 단계에서 형을 감면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3개 특례 모두 ▲진료기록부 조작·폐기 ▲수술실 CCTV 미촬영·폐기 ▲다른 환자·부위 수술 ▲환자 미동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 거부 등의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에는 특례가 적용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정 정책관은 “교통사고 처리특례법의 기본 구조하고 유사한 구조로 보시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고 밝히면서 특례 적용 범위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는 추후 대통령 지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추가 논의할 계획임을 덧붙였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보험 가입·산정 여부·범위·대상자 등 의료계 등과 논의할 부분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법안이므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송 부회장은 의료사고와 관련해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료행위를 했는지를 비롯해 ▲고의성 ▲중과실 ▲업무상 과실 등을 따져야 하는 문제라며, 환자 사망에 대한 특례 적용도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특히, 특례에 환자 사망을 배제한다면 필수의료 중 중증 질환의 수술을 담당하는 진료인력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수술 등을 시행·참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송 부회장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내용에 따르면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형태로 의료사고에 대한 보장이 이뤄지는데, 보험료 산정·가입을 개인별 또는 의료기관별로 할 것인지와 위험률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 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음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만약 위험률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면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부담되는 법안이 될 수 있다”며, “보험료에 대한 지급 대불·보조 등이 필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 “위험도가 높은 필수의료 분야부터 보험 가입을 의무화시키고 단계적으로 범위를 넓혀나갈 것인지와 보험 가입 대상으로 의료인 5개 직종 모두 포함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실효성이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한중소병원협회 박진식 부회장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논의가 이뤄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 부회장은 “최근 수련을 받고 나오는 후배 의사들을 보면, 선배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통해 환자를 살려냈음에도 나중에 환자가 깨어나 하반신 마비가 발생한 것을 근거로 의료소송을 넣어 몇 년이나 시달리는 모습을 봐 오다보니 과거에는 초중증 환자의 치료를 두고 고민했다면 지금은 포기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중증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진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의료진들에게 사회적인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라면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만족할 수준의 법안은 아니지만, 최소한 제정은 필요해 보이는 단계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는 “‘의료분쟁 제도 개선 협의체’에서 사회적 논의가 7차례 진행됐었는데, 논의되지 않은 내용이 일방적으로 발표되는 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시민단체 추천 위원들이 모두 협의체에서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 것도 모자라 이후 의료계의 요구가 좀 더 많이 반영돼 탄생한 법안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라면서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 “실제 중상해의 경우 위헌 결정을 받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참조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초안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인 법률을 참고해 위헌적인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위헌적인 법안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 이 이사는 교통사고로 인한 형사 책임을 면제하는 특례가 인정되는 것은 전제 자체가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상 교통사고 관련 입증 책임 전환이 규정돼 있기 때문임을 강조하며, ‘의료사고특례처리법’에는 피해자의 입증 책임 완화 내용이 없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의료행위 업무와 무관한 중과실까지 형사 특례로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형사 책임 부담 완화 범위는 필수의료 의사·행위로 대폭 축소해야 하며, 여기서 필수의료 행위 또한 생명에 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고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로 한정해야 함을 주장했다.

특히,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범한 의료인이 보험·공제 가입 시 반의사불벌죄 특례를 적용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중과실의 경우에는 특례 적용을 불허함으로써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수권과 평등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외쳤다.

무엇보다도 이 이사는 “의료사고 분쟁 해결의 핵심은 의료 과실과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의료적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의료 과실 및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고, 소송에서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돼 의료 분쟁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약자에 위치해 있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의료적 전문성을 가지고 직접 의료 행위를 한 의료인이 의료 과실이 없거나 의료 사고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 책임 전환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이 이사는 해외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유족들이 형사 소송이 아닌 다른 사법적 대안 제도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사·참고해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인에 대한 형사고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의료사고 관련 사법적 피해 구제 제도를 마련해야 함을 제언했다.

이외에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정수 사무총장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과 관련해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좀 더 필요하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의와 범위를 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황만성 교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한 허점 등에 대해 지적했다.

처벌의 특례 적용 배제 사유와 관련해 “제한적이고 열거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배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의료사고 처리 특례가 적용돼 형사상의 특혜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의료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진료·수술을 하여 환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치더라도 특례 배제 사유에는 없어 나중에 특례 적용과 관련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와 함께 과실 판단의 기준에 대한 내용들이 좀 더 고려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는 생각을 전했다.

또한, 진료기록부 미기재·조작 또는 의무기록 미교부·조작 등의 행위들에 대해서는 의료법에서 벌칙으로 징역형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있는 행위들임을 주지시키며, 굳이 해당 행위들에 대해 추가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서도 적용 배제 사유로 거론할 필요가 있는지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민준 기자 kmj6339@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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