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이재태, 이하 NECA)은 4월 7일 ‘After Evidence: 제도 전환기, 연구와 정책의 새로운 역할’을 주제로 2026년 연례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근거 생산을 넘어 정책과 의료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연구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특히 “정책은 근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아래, 근거가 존재해도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와 연구-정책 간 간극을 재조명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연구가 근거 생산을 넘어 정책 설계-실행-평가 전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조연설에서는 정책 결정이 근거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짚었다. 특히 연구와 정책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언어·질문의 균열을 지적하며, 연구 결과를 정책 언어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정책 번역’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AI 시대에는 문제 설계 능력과 인사이트, 반성적 실천을 통해 연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책 담당자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며, 연구 결과 해석 단계에서도 긴밀히 소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조연설에 이어서 지난 17년간 수행한 510개 NECA 연구를 WHO 보건의료체계 프레임워크에 따라 분석한 결과도 소개되었다. 분석 결과 의약품·백신·의료기술평가(HTA) 분야가 35.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NECA의 강점 분야로 자리 잡았고, 보건정보시스템과 서비스 전달 분야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건의료 인력과 재정 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패널 토론에서는 “연구 결과는 정책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실제 정책은 재정, 우선순위, 적용 대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는 의견과 함께, NECA의 축적된 연구 성과를 국민과 정책결정자가 이해하기 쉬운 정책 언어로 확산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조됐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선진입 의료기술과 의료 AI 확산에 따라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논의됐다.
발표에서는 기존의 정확도 중심 평가를 넘어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임상적 유용성, 진단 수율(diagnostic yield), 검사 대비 추가 편익(NNTB) 등 활용성을 반영한 평가 방식의 필요성이 제시됐다. 또한 신기술이 비급여로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에서는 사용 현황과 재정 영향을 적시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데이터 기반 관리체계와 평가-관리 연계 구조의 구축 필요성을 언급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의료 AI가 실제 임상환경에서 기대한 성능을 보이지 않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실제 진료 현장에서의 검증과 지속적인 관리 필요성이 강조됐다. 아울러 식약처–NECA–심평원 공동 자문체계 구축, 실사용데이터(RWD) 기반 선진입 기술 관리, 의료행위 코드 표준화 등 제도적 보완 방안이 제시됐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의료기술재평가 제도의 역할과 함께, 재평가 결과를 정책 결정으로 연결하기 위한 구조의 구축이 향후 과제로 제시됐다.
발표에서는 재평가가 기존 기술의 안전성·유효성·임상적 활용도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급여 조정, 행위 재분류, 저가치 의료 축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 설명됐다. 또한 하지 재활로봇 보행치료와 NK세포 활성도 검사 사례를 통해 재평가 결과가 정책 결정과 의료자원 효율화에 활용된 대표 사례를 소개했다.
비급여 암 치료 영역에서는 환자 치료 과정에서 표준 치료 외 비급여 약제가 사용되며, 이에 대한 임상적 근거 판단과 보험 적용 여부를 둘러싼 다양한 사례가 공유됐다. 특히 일부 비급여 약제가 낮은 수준의 근거에 기반해 장기간 사용되면서 실손보험 분쟁과 정보 비대칭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재평가 결과가 ‘권고하지 않음’으로 제시된 이후에도 실제 급여·비급여 관리로 충분히 연계되지 못하는 한계가 언급됐다. 이에 관계 부처 연계를 통한 사후관리 체계 구축과 RWD 기반 재평가, 일정 기간 후 근거 미흡 시 퇴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 연계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번 연례학술회의에서는 근거 생산 이후 정책 설계, 기술 도입,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전주기적 연결의 중요성이 공통적으로 제시됐다. 특히 연구기관이 정책 과정 전반에서 근거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방향이 논의되며, NECA의 역할 확장 필요성이 제시됐다.
NECA 이재태 원장은 “제도 전환기에서 연구가 정책과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NECA는 근거 기반 의사결정 지원과 함께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연례학술회의 발표 및 토론 영상과 발표집은 NECA 누리집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