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협 “지역의사제, 50년 공보의 제도 반성에서 출발해야”

2026-04-28 19:22:34

강제 배치만으로 지역의료 위기 해소 어려워…의료가 작동할 구조 먼저 만들어야
근본적인 의료환경 개선 없이는 복무기간만 늘어난 ‘장기 공보의’ 양산에 그칠 것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는 28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26년 보건의료정책 공동기획세미나에 참석해 “지역의사제 논의는 지난 50년간 운영돼 온 공중보건의사 제도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정책의 답은 현장에 있다: 지역의료의 위기와 지역의사제’를 주제로 열렸으며, 우병준 대공협 정책이사는 패널토론을 통해 지역의사제 등 현재 논의 중인 지역의료정책이 단순한 의무복무 인력 공급 방식에 그치도록 설계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우병준 대공협 정책이사는 이날 패널토론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공중보건의사 제도라는 실질적인 지역의사제를 1970년대부터 운영해 왔다”며 “지역별로 필요한 인원과 전공과목을 지정해 배치하고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은 현재 논의되는 지역의사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우병준 정책이사는 또한 “지난 약 50년 동안 매년 2000~3000명에 달하는 의과 공중보건의사가 지역 보건의료기관과 병원에서 근무해 왔다”며 “이는 지역의료 체계를 연구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지만, 오늘날 다시 직면한 지역의료 위기와 공보의 감소는 이 제도가 기대했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의 경험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는다면, 지역의사제 역시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사실상 복무기간이 연장된 공중보건의사를 양산하는 데 그칠 수 있다”며 “지역의사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사 제도에 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병준 정책이사는 대공협이 현직 공중보건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언급했다. 그는 “설문 응답자의 78.5%는 지역의사제 및 공공의료사관학교 정책이 지역의료 공백을 효과적으로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그 이유로 도서·벽지 등 열악한 근무지 기피 현상의 지속 (78.0%), 복무 이후 지역 잔류를 위한 인센티브 부족 (76.3%), 지방과 도시 의료의 분절 및 계층화 우려 (53.8%),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 신뢰 부족으로 인한 이용률 저조 (40.3%) 등이 함께 지적됐다”고 설명했다.

우병준 정책이사는 “공보의 제도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강제성에 기반한 인력 정책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의료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의무복무 인력을 반복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은 지역 공공의료에 특화된 인재를 육성하거나, 복무 이후 지역에 남아 전문성을 축적하도록 유인하는 구조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우병준 정책이사는 또한 “현재 지역의료가 직면한 문제는 열악한 진료 환경과 공공의료의 방향 설정 오류, 환자 신뢰 문제가 결합된 구조적 문제”라며 “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으로 재편돼야 할 공공의료가 여전히 공중보건의사를 필두로 한 외래진료에 의존하고 있고, 지역 병원 역시 배후진료 부족, 취약한 야간·응급 대응 체계, 증가하는 법적 리스크로 인해 실제 수행 가능한 의료의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현재의 문제는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구조가 방치되어 있다는 데 있다”며 “근본적인 개선 없이 단순히 지역에 의사를 추가로 배치하는 것은 기존과 동일하게 제한된 역할 속에서 인력을 반복적으로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우병준 정책이사는 마지막으로 “지역의료의 본질을 외면한 채 열악한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문제만 떼어내 강제 배치라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같은 논리는 끝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며 “의사가 부족해서 지역의사제가 필요했듯이 간호사가 부족하면 지역간호사제, 방사선사가 부족하면 지역방사선사제, 환자가 지역을 떠나면 결국 지역환자제까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재일 대공협 회장은 “현재도 지역의료는 자생하지 못한 채 인턴 수련만 갓 마친 공중보건의사에게 전문의의 배후진료도 없이 시군의 유일한 응급실 당직을 맡기고 있다”며 “역량과 권한을 초과하는 업무를 떠안긴 뒤,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근무태만으로 제재하는 것이 현장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전문의가 남지 못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값싼 의무복무 인력으로 의료 공백을 틀어막는 현실은 지역의사제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일 회장은 “지역의료는 의사를 배치한다고 자동으로 살아나지 않는다”며 “경기도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지역의료 붕괴, 지역 간 의료격차’ 보고서와 2025년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지역환자 유출로 인한 비용과 지역 국립대학병원에 대한 국민인식’ 보고서에서도 확인되듯, 국민은 중증질환 진료 시 지역 국립대학병원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의료 이용을 위한 핵심 요건으로 전문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재일 회장은 “국가가 전폭적인 투자와 책임 있는 운영을 통해 환자가 지역의료기관을 믿고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직접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인력을 강제로 배치하더라도 지역의료 위기는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가 직접 나서 환자의 신뢰를 회복한 뒤에는 권역 내 의료기관 이용 시 기관과 환자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적 유인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재일 회장은 “정책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이번 세미나의 제목처럼, 지역의료 정책은 현장에서 이미 확인된 실패와 한계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대공협은 앞으로도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현실과 지역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지역의료 대안을 제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노영희 기자 nyh2152@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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