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구급차 이송환자를 거부할 경우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조례개정안에 응급의학회가 실제 병원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나온 개악이라며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의회는 최근 응급의료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일부 개정한 ‘서울특별시 응급의료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임시회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서울시의회 도시안전위원회 정승우 의원(민주당 구로1)이 대표발의한 조례안은 “시장은 응급의료기관등에서 근무하는 응급의료종사자가 구급차 등에 의해 이송된 응급환자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에는 법 제55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행정처분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요청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조례에 대해 대한응급의학회(회장 정제명, 이사장 유인술)는 “오히려 현장에서 구급차 운용자와 병원 간에 갈등을 초래하고 응급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내용이므로 당장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응급실 현장에서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 시킬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많다. 환자의 생존율이 떨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환자를 수용할 능력을 넘어 섰거나, 환자를 수술할 의사나 비어있는 수술실, 중환자실이 없는 경우 환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면 병원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응급의학회는 “병원은 구급차로 이송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병원의 의료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례안을 완전히 준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응급의학회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구급차 운영자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구급차로 이송된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재전원되지 않고 병원에서 안전하게 치료받기 위해 구급차 운영자가 병원의 사정에 따라 이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급의료에관한 법률 제48조2항에 따르면, 구급차에 동승하는 운전자와 응급구조사, 의사 , 그리고 간호사는 이송하고자 하는 응급의료기관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응급환자의 상태와 이송 중 어떠한 응급처치를 시행했는지를 이송하고자 하는 병원에 미리 통보할 의무가 있다.
다만, 이를 위반해 환자에게 심각한 문제를 유발해도 벌칙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응급의학회는 “벌칙이 없으니 법률이 지켜질리 만무하다”며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의 병원 의료진에게 행정처분을 가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 환자에게 피해를 유발한 구급차 운용자에게 벌칙을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회가 조례개정의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구급차로 이송된 환자의 수용거부가 최근 4배정도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도 응급의학회는 “거의 대부분의 구급차 운용자가 법률에 따라 병원의 수용능력을 확인하지 않고 구급차 운용자의 편의에 따라 환자를 받을 수 없는 병원으로 잘못 이송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정된 조례가 시행되면 환자수용이 불가능한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않을 경우 행정고발의 근거가 된다.
응급의학회는 “이런 상황이 되면 일차적인 피해는 구급차 운용자도 응급의료종사자도 아닌 응급환자가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료법 제15조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응급환자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응급의학회는 “구급차를 이용하지 않는 나머지 80%의 응급환자는 서울시 조례대로 하면 진료거부를 해도 행정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상위 법률에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거부에 대해 포괄적으로 벌칙조항이 규정되어 있는 내용을 서울시 조례에서 구급차로 이송된 환자로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거이라는 지적이다.
응급의학회는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하면서 전문가단체에 의견만 조회했어도 사전에 이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서울시에 대해 “개정 조례안을 당장 폐기하고 구급차 운용자와 응급의료종사자가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규정을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구급차 운용자가 응급환자를 이송 중 이송할 병원의 수용능력을 확인하지 않고 이송해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한 경우 벌칙을 가할 수 있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