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총파업을 결의함에 따라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 만에 의료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일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을 통한 부대사업 허용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오는 3월 3일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정부는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한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의료취약지구 거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또는 노인들이 병원을 방문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취약지역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진 가능성이 높은 원격의료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를 확충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대부분은 민간의료기관으로 이중 공공의료기관은 약 6%에 불과하다.
본지는 “공공병원은 정상진료로 과잉진료를 하는 민간병원과 경쟁해 올바른 의료를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조승연 인천의료원장(現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 前가천대길병원 외과 교수)을 만나 공공의료의 개선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1.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공공의료에 대한 의미가 불확실하다. 공공의료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의무교육, 치안, 소방, 재난대비 등과 같이 의료가 공적영역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것이다. 국민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고 사회가 유지되는데 필수요소인 의료는 당연히 공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현재의 우리나라 공공의료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엉망진창’이다. 지난 1950년대에는 국가의료기관 비중이 50% 수준이었지만 새월이 흘러 민간의료기관 숫자가 폭증하면서 현재와 같이 OECD 꼴찌 수준인 5-6%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의료비를 저수가로 통제했기 때문이다. 공공적 성격이 아닌데도 공공적인 것처럼 운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재원이 한계에 달해 진료수입으로 병원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보니 의사들이 성형외과, 피부과 등과 같은 비보험 영역에 몰리고 병원은 의료외적 수입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엄연히 제도의 문제인데도 마치 의사들이 사기치는 집단처럼 매도되고 있다.
사실 진주의료원도 이런 모순에서 출발했다. 공공의료원의 적자가 핫이슈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공공의료기관도 적당히 운영이 가능했지만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 극도로 경영이 악화된 것이다. 인천의료원의 경우에도 지난 97년만 해도 환자도 꽤 많고 수익도 제법 냈다.
하지만 공공의료원은 가난한 계층이 많이 찾아오다 보니 수익을 내기 어려워 민간병원이 엄청난 성장을 이루는 동안 공공의료원은 뒤쳐진 것이다.
민간병원의 불필요한 의료외적 투자도 상당한 문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3억원 정도면 동네병원 개업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이돈으론 어림도 없다. 대리석으로 치장한 인테리어와 고가 의료장비 구입 비용으로 불가능해 진 것이다. 대형병원은 더 심각하다. 짧은 치마 입은 비행기 승무원 같은 여직원이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백화점식 과잉친절을 베풀고 있다. 이런 게 다 병원 운영비용으로 결국 모두 환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한국의료에 만연된 불필요한 의료외적 지출을 없애야 한다. 이를 손보지 않으면 과잉의료로 이어져 보건의료재정은 결국 파탄나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의료과잉 내지 집착 사회가 돼버인 모든 원인은 의료를 시장경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지하철 광고판의 절반을 병의원 광고가 차지하나? 국민 누구나 홍삼 등의 각종 건강식품을 별 필요가 없어도 사먹고 라식수술과 같이 꼭 안해도 되는 수술을 어느 나라보다 손쉽게 많이 하고 있다.
하나의 예를 더 들자면, 현재 척추수술 건수의 90%는 하지 말아야 할 수술이라고 들었다. 의료보험수가가 극도로 낮다보니 비급여와 리베이트로 먹고 살다가 리베이트쌍벌제로 리베이트가 차단되니 척추관절병원이 늘어나는 것이다.
3. 지금 상황에 공공의료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런 와중에 공공의료마저 없다면 어떡할 것인가? 의료가 정상적으로 흘러가려면 국가가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병원이 돈 버는데 집착하지 않고 무리한 수술을 권하지 않는 정상적인 진료로 민간병원과 경쟁할 수 있도록 비중을 20-3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민간병원들도 자연스럽게 정상진료를 하게 될 것이다.
또 공공의료원의 경영을 평가할 때 공익성과 양질의 의료를 우선으로 하고 경영 효율성 부분은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병원을 평가할 때 공익적 진료 30%, 경영효율성 30%, 양질의 의료 30%, 그 외 요소를 10% 정도 비율로 평가하는데 사회취약계층을 주로 진료하는 공공병원 특성 상 민간병원과 같은 잣대로 경영효율성을 들이대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공공병원을 지방공기업과 같이 묶어버려 50% 이상을 경영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현 평가지표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
4. 지난 2012년 2월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민간의료기관도 공공의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장 공공의료기관 숫자가 적으니 그동안 정부에서 지원할 수 없었던 공공의료 예산을 민간병원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양날의 칼이다. 예를 들어 어느 민간 병원이 분만취약지에서 분만을 하면 공공역할을 인정하고 예산지원근거를 만든 것인데 취지는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그나마 별볼일 없는 예산을 민간병원이 나눠가지는 근거가 되어 버려 점점 더 공공의료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진주의료원과 같이 우려하던 사태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공공의료 역할을 하는 병원으로 예산을 지원받는 민간병원이 병상 수를 늘이면 공공 병상 수로 편승해버리는 효과까지 나타났다.
5. 최근 열린 공공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전국의 공공의료원 대부분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 곳에 있어 취약계층의 방문이 어렵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 인천의료원도 변두리 공장지대에 위치해 있어 상당히 교통이 불편한 것 같은데?
그렇다. 공공병원이 아니라 마치 민간에서 찌그러진 병원으로 보일수도 있겠다. 전국이 다 마찬가지다. 인구 300만의 인천광역시에 유일한 공공의료원이 인천의료원인데 이곳으로 곧장 오는 노선버스가 단 한 대 있다. 저소득층이 자가용을 갖고 병원에 진료 받으러 오겠나? 차기 시장 후보 공약에 인천시 제2의료원 설립이 등장하기 바란다. 최근 인천시민이 바라는 10대 아젠다로 제2의료원이 나오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조건이다.
인천의료원도 마찬가지이고 진주의료원도 마찬가지로 전국의 공공의료원 대부분이 오지에 위치해 있어 병원 방문이 매우 어렵다. 천안의료원은 고속도로 옆에 있고 천안의료원은 해발 700미터 산중턱에 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서울 중심에서 원지동으로 이전하기로 최근 계획을 마무리했다.
6. 진주의료원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현재 경상남도는 면적대비 의료기관 분포도 낮고 사망률도 가장 높다. 공공의료원을 없앨게 아니라 두세개 정도 더 만들어야 하는 마당에 폐업이라니...당장 조례를 개정해서라도 재개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힘들다면 일단 노인요양병원 등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서라도 재개원해야 한다.
7. 공공의료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공공의료의 역할은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국민건강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재난적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예방해 복지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창조경제도 좋지만 국민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의료를 돈으로만 보고 시장경제에 맡겨서는 절대 안된다. 정부 관계자들이 공공의료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갖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