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보건복지부 · 한국공공조직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출범한 '한국공공조직은행'의 비정상적 업무행태 및 불법행위가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공조직은행은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직기증지원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올해 3월에 설립 허가를 마쳤다. 이 조직은 '한국인체조직기증원(2010년 설립, 이하 기증원)'이라는 공공기관과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2008년 설립, 이하 기증지원본부)'라는 홍보전문기관이 통합돼 새롭게 출범했다.
한국공공조직은행은 '사후 시신이 기증되면 적합한 환자에게 기증될 수 있도록 채취와 분배를 담당하는 대표 기관'으로서 복지부 담당 국장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등 정부의 기타공공기관으로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 장기밀매 전과자, 규정 위반해서 고용해
공공조직은행에는 전신 조직인 '기증원'과 '기증지원본부'가 있고, 해당 직원들은 대부분 고용 승계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증원에서 일했던 전직 간호사 출신 신모 씨가 2006년 '장기밀매'로 수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 확정돼 징역 1년 ·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던 전력이 있는 인사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2010년 9월 고용 당시 기증원과 기증지원본부의 '인사규정'에는 금고 이상의 형이 종료된 후 3년을 지나지 않으면 직원으로 고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집행유예 이후 2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신씨가 당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렸음에도, 기증원은 인체조직 채취 · 기증 · 분배 업무를 맡는 직책에 규정을 위반하며 신 씨를 고용했다.
현재 신모 씨는 공공조직은행에서 기증지원국장을 맡고 있다.
◆ 고액 급여 받는 계약직 단장 막말, "직원들, 도축장 인부와 다를 것 없어"
전신 조직인 기증원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던 실질적 운영책임자 전모 씨는 올해 3월 공식 출범한 공공조직은행에서 직제에도 없는 계약직 단장(성남가공은행 설립추진단장)을 맡아, 월 625만 원의 고액 급여를 받으며 '실질적 운영'을 하고 있다.
기증원 시절에 전모 씨는 "도축장의 인부와 너희가 다를 게 뭐 있어? 여기에는 간호사, 장례사 구분이 없는 거냐! 너희는 물건을 생산하는 거야!"라면서 인체조직 채취 등을 담당한 직원들을 수차례 교육한 것으로 드러나 인체조직기증의 숭고한 정신을 실천한 고인들을 모독했다.
공공기증은행의 한 관계자는 "도축이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하는 업무가 너무 괴로워지고, 그것 때문에 그만두는 직원들이 정말 많다."고 심경을 전했다.
◆ 폐업 기관에 억 단위 연구용역비 계속 집행
기증원과 통폐합으로 폐업 조처된 '대한인체조직은행'에 2억 7천 5백만 원 연구용역계약을 준 사실도 확인됐다.
기증원은 2011년부터 2017년 2월까지 대한인체조직은행과 2건의 연구용역계약을 맺고 매년 해당 금액을 집행해 왔다.
문제는 대한인체조직은행이 2014년 7월 30일 공식 폐업했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말까지 계속 비용이 지급됐으며, 심지어 연구용역에 대한 결과물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용역비를 받았지만, 중도에 포기한 경우에도 비용에 대한 환수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국정감사 자료요청에 서둘러 서버 기록물 삭제
올해 9월 국정감사를 요구하는 여러 의원실의 자료 요청이 시작되자, 공공조직은행은 과거 기증원 · 기증지원본부 서버에 보관중인 자료를 무더기로 삭제했다.
기증원은 2016년 2월부터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 · 운영됐다. 삭제된 문서에는 기증원의 전신 조직으로서 기증원에서 업무를 승계했던 '한국인체기증지원재단' 문서도 포함돼 있다.
이렇게 임의로 공공기록물을 훼손한 것과 관련해, 공공조직은행은 '보조금관리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공공조직은행은 '서버 용량 확보를 위해 삭제했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기증원 · 기증지원본부 예결산 자료가 수지도 맞지 않는 등 공공조직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가 엉터리임을 확인한 정춘숙 의원실은, 10년간 국고 415억 원이 집행된 세부명세 등의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 공공조직은행의 서버 삭제로 인해 일부 내용이 사라진 상태에서 문서 및 일부 파일로 추가 자료를 제출받았고, 현재 문서마다 다른 결산 자료에 대해 해명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 김기춘, 기증지원본부 설립 당시부터 이사 활동...매년 50억 국고 지원받아
기증지원본부는 공공조직은행의 첫 전신 조직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前 비서실장은 2008년 기증지원본부 설립 당시부터 기증지원본부 이사로 재직했다.
그런데 2013년 1월까지 3명의 정회원밖에 등록이 안 된 생소한 기관인 기증지원본부가 인건비까지 지원되는 민간경상보조 기관으로 선정돼, 국고가 지원되기 시작한 경위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2008년 2억 5천만 원 지원으로 시작된 해당 기관은 2009년 10억, 2010년 35억으로 증액됐다.
김기춘 이사는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으로 임용되기 직전인 2013년 8월까지 이사로 등록돼 있었다. 우연히도 김기춘 前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후인 2013년 이후부터 기증원 · 기증지원본부의 국고 지원이 57억 원으로 증액됐다. 이렇게 기증원 · 기증지원본부는 매년 50억이 넘는 금액의 국고를 지원받았다.
◆ 복지부 퇴직공무원들, 기증원에서 취업 및 용돈 벌이
복지부에서 생명윤리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퇴직 공무원들이 인사 규정을 위반해가며 기증원에서 '취업 특혜'를 누려 감사에 적발되거나, 수뢰 혐의로 재판 중이던 전직 복지부 국장과 기증원이 자문계약을 맺어 월 250만 원의 고액의 자문료를 지급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설모 前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60세 정년에 맞춘 2017년 말 당연퇴직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까지 기증원 '전략기획실장'으로 정규직 고용계약을 맺었다. 이 문제가 적발돼 설모 前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감사 지적을 받았다.
또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 중이던 한나라당 전문위원을 지낸 이모 前 복지부 의료정책관은 기증원과 월 250만 원의 자문계약을 맺었다. 이모 前 복지부 의료정책관에게는 매월 고액의 자문료가 지급됐는데, '계약서류와 근무내용이 허위로 작성된 것은 아닌지' 등 위조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춘숙 의원은 "직원 채용에 예산집행까지 비리와 의혹투성이인 기관이 그동안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국민 혈세를 낭비해 왔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감사원 감사는 물론 검찰 수사까지 비리의 근본부터 밝혀내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서는 누가 자신이나 가족의 신체를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이도록 기증하는 숭고한 일에 동참할 수 있겠나"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