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협상 잔불, 병원별 파업·의-노 갈등으로 번져

2021-09-08 06:00:53

고려대의료원·한양대의료원 등 병원별 파업 이어가
수술 취소 등 곤혹스러운 병원, 의료계 ‘맹비난’


지난 2일 예정됐던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총파업이 보건복지부와의 11시간에 걸친 마라톤 교섭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뤄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병원별 파업으로 옮겨 붙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의료계와 노조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2일 새벽 2시 보건복지부 권덕철 장관과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노정교섭 합의문에 최종 서명하고 양 측은 공공의료 확충과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보건의료인력 확충, 처우 개선 등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했다.

이 자리에서 나 위원장은 “산별총파업은 철회하지만 아직 의료기관별 현장교섭이 남아있다. 7일까지 1주일간을 현장교섭 완전 타결을 위한 집중교섭기간으로 정하고 원만한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약속한 날이 다 돼서도 의료기관별 현장교섭은 난항을 겪고 있다.

파업 6일째를 맞은 보건의료노조 고려대의료원지부(고려대 안암·구로·안삼병원) 조합원들은 지난 6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재단 측이 파업사태 해결에 직접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번 파업사태는 단순한 임금협상을 넘어 보다 근본적으로 고려대의료원의 노사문화, 조직문화, 인력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가 누적돼 발생했다는 것이 지부 측의 주장이다.

노재옥 지부장은 “직원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했다. 작년에도 임금은 동결했다. 이제 우리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적정한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시설에만 투자하지 말고 사람에게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업에 참가해 간호사 인력부족을 호소한 고려대 안산병원 근무 9년차 간호사는 “병동에서 간호간병은 간호사 1명이 환자 6명을 돌보도록 배정하고 있다. 그러나 간호사 인력에는 훈련을 받고 있는 신규간호사와 수간호사 인력이 포함돼 실제로 1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한다”라며 “고려대의료원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버텼으나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이 병원에 오래오래 다니고 싶어서 파업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24일 1차 교섭을 진행한 고려대의료원지부의 핵심요구는 ▲인력확충 및 불법의료 근절과 교대제 개선 ▲충분한 임금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년 및 명예퇴직 자리 즉시 충원 ▲휴일 및 대체 휴일 부여 등이다.

현재 한양대의료원지부도 6월 22일 노사 상견례를 시작으로 총10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쳐 지난 2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노사가 맞부딪히는 쟁점은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헬퍼 및 파견 금지와 인력 충원 문제다.

공지현 지부장은 “한양대의료원은 폐쇄된 병동에 9명의 간호사를 배치하고 1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해진 부서 없이 이리저리 헬퍼 배치에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간호인력 운영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배치 하루 전에 통보하는 사례도 확인됐다”라며 “숙련도와 전문성이 중요한 간호사에게 매주 다른 부서의 업무를 보게 하는 것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이는 곧 환자안전의 위험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코로나19 전담병동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인력을 투입해 환자안전을 위협함은 물론 10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동시에 사직의사를 밝히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라며 “노동조합은 전담병동 준비과정에서 병동 오픈 전 미리 인력을 투입해 충분한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후 시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원 측은 이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전담병동을 오픈해 중증환자 케어에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병원지부 파업에 병원들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고려대 구로병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주로 병동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파업에 많이 참여해서 잡혀있던 수술이 많이 취소되고 있다”며 “수술은 의사가 할 수 있지만 수술 후 케어는 간호사들이 하니까 케어가 잘 안 되는데 수술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빠지니까 다른 수간호사 분들이 빈자리를 백업하고 있고, 결원이 생기면 의료기술직이나 일부 영양팀, 행정직까지 돕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노사협상이 합의점을 찾아 파업을 철회하고 정상업무에 들어간 곳도 있다.

전남대병원과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양측은 지난 3일 오후부터 시작해 6일까지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으로 2021년 임금·단체협상에 잠정 합의하고 정상업무에 돌입했다.


이번 노사 합의 주요 내용은 ▲임금 총액대비 0.9% 인상 ▲필수교육(법정의무교육, 인증 교육 등) 이수자에 한해 교육휴가 1일 부여 ▲본인 및 배우자의 조부모, 외조부모 사망 때 청원휴가 3일 등이다.

안영근 병원장은 “파업 기간 중 지역민께 불편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원활한 소통과 타협으로 건전한 노사관계를 유지하면서 병원과 의료발전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보건의료노조는 중앙차원에서 노사가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 송금희 사무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고려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 현재 사측에서 안을 내고 있지 않은 상태이고, 중앙차원에서 최대한 재단면담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상황”이라며 “7일까지 현장교섭 완전 타결을 이루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장기적으로 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노정합의문을 폐기하라는 의료계의 요구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

대구시의사회는 6일 성명서를 내고 “노정합의문은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모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자 탁상행정의 결과물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잘못된 의료정책을 제시하고 있다”라며 “공공병원 신설은 혈세 낭비이며, 국립의전원은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4일 대한의사협회와 정부는 공공의료 정책추진 시 협의 후 진행하며 일방적으로 강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된 합의문을 발표했다”라며 “그러나 정부는 1년 만에 그 약속을 저버렸다”고 맹비난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공공병원 설립 및 운영, 민간 의료기관 경영 참여 등을 포함한 전체 보건의료 영역으로 노조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고 이번 파업 투쟁을 이끌었다”고 평가하며 “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 의사제 도입,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의 정책을 요구한 것은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이고, 이번 합의가 정부와의 정치적 거래임을 자인하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의료계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송 처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송 처장은 이번 노정합의문에 ‘의정협의를 고려한다’라는 내용이 있어 이를 무시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의사 부족 문제는 의료계도 인정해야 한다. 의사 부족이 아닌 의사 정원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현장을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사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병원들이 간호사들을 계속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의료가 강화돼야 한다는 것도 전 국민들이 동의하는 바인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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