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십 년 묵은 불투명한 거래’와 ‘환자 안전 위협’을 명분으로 검체검사 위탁관리료 개편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절감되는 재원을 진찰료나 상담료로 보전해 주겠다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미봉책이자, 현장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재연)는 저출산 위기 속에서 분만 인프라와 여성 건강을 책임지는 필수의료의 한 축으로서, 이번 개편안이 가져올 재앙적인 결과에 깊은 우려와 참담함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하나, 진찰료 보전은 현실을 모르는 기만행위이다.
정부는 마치 의료기관이 부당한 이익을 취해왔던 것처럼 할인관행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수십 년간 동결되다시피 한 원가 이하의 진찰료와 비정상적인 수가 체계 속에서, 병의원 경영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산부인과는 임신 초기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필수 혈액 검사(산전 검사, 감염 검사, 호르몬 검사 등)를 시행한다. 이번 개편안이 강행될 경우, 산부인과 의원들은 검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기형적인 구조에 내몰리게 된다. 만약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100% 손실을 보전하는 수준으로 진료비와 검사비를 먼저 상향해야 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보건 당국이 그래왔듯이 막대한 손실을 100% 보전해 줄 것이라 믿는 의사는 아무도 없다. 이는 결국 경영난을 심화시켜, 가장 취약한 필수의료 분야인 산부인과의 줄도산을 부추길 것이다.
둘,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관행이 아니라 정부이다.
정부는 불투명한 거래가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의료 현장을 붕괴시키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이다.
이미 저수가, 의료사고 부담, 인력난으로 인해 전국의 분만실이 문을 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원들의 경영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이번 조치는, 가임기 여성과 임산부들이 기본적인 진료조차 받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 것이다. 검사를 위한 비용이 보전되지 않아 필수 검사를 축소하거나, 경영난으로 폐원해 환자들이 갈 곳을 잃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환자안전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행위이다.
셋,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를 진정으로 막을 의지가 있는가.
정부는 입으로는 필수의료 강화를 외치면서, 실제 정책은 필수의료의 숨통을 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산부인과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번 검체검사 위탁관리료 개편은 이 벼랑 끝에 선 산부인과의 등을 떠미는 것과 다름없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의료 현장의 현실을 왜곡하고 필수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검체검사 위탁관리료 개편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진찰료 보전이라는 근시안적이고 기만적인 조치가 아닌, 비정상적인 진찰료와 수가를 정상화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먼저 마련하라.
정부가 만약 현장의 절규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개편을 강행한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분만 인프라의 최종적인 붕괴와 그로 인한 모든 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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