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독립의 영웅, 황열모기

2010-01-20 13:52:32

 

박지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2006, 2007)

 

 

 

 

 

 

 

 

<다이하드 2> 20년 전에 보았던 영화였는데 아직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그 영화의 장면들, 특히 교향시 ‘핀란디아’가 장쾌하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멋지게(?) 폭파되던 악당들의 비행기가 눈에 선하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보았지만 지금 곱씹어 보면 미국의 ‘파나마 침공’과 노리에가의 본토 압송을 소재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당시 미국은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며 왜 파나마를 침공하는 불명예를 떠안았을까? 그 궁금증을 풀다 보니 너무나도 유명한 어떤 질병의 역사가 현상액에 잠긴 사진처럼 떠오른다.   

 

<다이하드2>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 레니 할린 감독, 1990 12월 개봉. "쉽게 죽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골드러시와 파나마 운하 

 

 

1848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은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 당시에는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없었고(1896년까지), 인디언의 잦은 출몰로 노다지를 캐러 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뱃길을 통해 파나마 지협까지 간 다음, 아메리카 대륙의 잘록한 허리 48㎞를 ‘철도 횡단’, 다시 뱃길로 캘리포니아까지 북상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환승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이곳에 수로 건설이 필요했다.

 

수에즈에 운하를 만들었던 프랑스 외교관 레셉스(Ferdinand V de Lesseps) 1880년부터 7년을 예정으로 파나마에서 운하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셉스의 독선과 아집, 시공상의 난관, 더하여 풍토병인 ‘황열’과 ‘말라리아’로 인한 인력 손실로 공사는 9년 만에 부도를 맞고 말았다. 인부들을 괴롭혔던 황열(yellow fever)은 원래 서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풍토병으로 고열과 오한, 출혈과 황달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염성이 강해 일단 환자가 발견되면 모든 것을 불에 태우고 재빨리 마을을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나중에 검역제도가 마련되자 이를 상징하기 위해 배에 ‘황색 깃발(Yellow Jack)’을 달게 된 것도 모두 황열에 대한 두려움과 아픈 기억때문이다.

 Yellow Jack. 검역을 받는 배들이 게양하는 깃발

1898,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지배자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이 코앞에 있는 쿠바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기울어가는 제국에게 한 방 먹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전함이 쿠바까지 오는데 무려 2개월이나 걸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

 

다행히 스페인이 워낙 무력하여 미국이 승리, 쿠바는 물론 푸에르토리코, , 필리핀까지 얻으며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이제 미국은 국토의 동서 즉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최단거리의 통행로가 필요하게 되었다. 만약 파나마에 운하가 건설된다면 남아메리카의 끝을 돌아 가야 하는 22,500km의 항로를 절반 이하로 단축시킬 수 있기에 운하의 필요성은 한층 더해졌다. 1903년에 미국은 프랑스회사로부터 운하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다. 하지만 운하 건설지역의 치외법권을 콜럼비아에 요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하는 수 없이 파나마의 분리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11 3, 마침내 파나마가 독립하자 2주 후 미국과 운하조약을 체결하여 자국 영토의 5%에 이르는 운하지대를 1,000만 달러와 연간 임대료 25만 달러에 영구 조차해주었다.

 

 

리드의 황열연구 

 

 

그런데 미국은 황열과 말라리아가 횡행하는 파나마에서 어떻게 운하를 건설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스페인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황열의 중심지’ 쿠바에 진주하였는데 많은 병사들을 적의 총칼이 아니라 황열로 잃는 사태를 맞았다. 전쟁 후에도 아바나에 주둔 미군들 사이에 황열이 유행하자 군당국은 군의관 월터 리드(Walter Reed)소령에게 대책을 강구하게 하였다.

 

주로 서부의 요새에서 군생활을 했던 리드는 볼티모어에서 근무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세균학과 병리학을 공부했던 부지런한 인물이다. 리드는 아바나에서 제임스 케롤(James Carroll), 제시 라지어(Jesse Lazear), 그리고 쿠바사람 아그라몬테 이 시모니와 황열위원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의 작업들이 실패로 끝나자 리드는 아바나의 괴짜 세균학자인 카를로스 핀리(Carlos Finlay) 박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핀리는 황열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통념을 반대하며 ‘모기가 원인’이라 믿었던 인물이다. 역학조사를 통해서도 황열이 비위생적인 환경과도 무관하여, 접촉성 전염병도 아니고, 환자가 연이어 발생하는 데는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곤충, 특히 모기에 의해 생기는 병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1900 8, 황열 모기에게 일부러 물리는 생체실험을 통해 캐롤과 라지어가 황 리드(1851~1902)와 핀리(1833~1915)  에 걸렸고 레지어는 목숨을 잃었다. 지금 같으면 불가능한 실험이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더구나 황열은 인간에게만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 실험도 소용이 없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하여간 이 소중한 실험으로 밝혀진 살인범의 정체는 바로 ‘이집트 숲모기(Aedes aegypti)’였다.

 

 

황열모기와 황열 바이러스 

 

 

 

 

황열모기와 황열 바이러스

 

1901 2월 공병대가 모기의 서식지인 숲을 없애기 시작했고, 90일이 지나자 아바나에서 황열은 사라졌다. 리드의 발견에 힘입어 미군은 군에서 황열을 완전히 추방할 수 있었다.

 

아바나에서의 성공은 황열이 득실대는 파나마의 밀림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기에 미국은 자신있게 파나마로 진출하였다. 덕분에 공사를 재개한 지 10년 만인 1914년 8월15, 81.6㎞의 운하를 완성하였다.

 

 

 불안한 파나마 정국  

 

 

2차 대전 이후 반미감정이 파나마에서는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1968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요구로 1977년에 카터 정부는 ‘신파나마 운하조약’을 체결하였다. 파나마는 운하의 사법권을 넘겨받았고, 운영권은 1999 12월31 정오에 넘겨받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운하가 개통된 지 85년 만에 운하와 그곳에 주둔 중인 미국의 해군과 공군 기지마저 잃을 처지가 되었다. 

20세기 말에 이르자 경기 침체와 심각한 정치변동을 겪고 있던 파나마에 ‘국제적인 마약사범’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해 미국이 병력을 동원한 사건이 터졌다.

 

 

1989 12 20, ‘정당한 명분 작전(Operation Just Cause)’이란 이름을 앞세운 미 해병대 22,500명이 파나마에 투입되었고, 보이지 않는 전폭기 F-117 스텔스가 처음으로 배치되었다. 14일간의 ‘파나마 침공’ 동안 300명의 파나마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미국을 비난하였다. 미국이 전혀 정당하지 않은 명분으로 파나마를 침공한 이유는 노리에가를 제거하고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 미국의 운하 영향권을 유지하려는 것이 숨겨진 이유였다. 하여간 마약범으로 체포된 노리에가는 미국으로 압송되어 1990년 1월 4 마이애미 연방교도소에 수감, ‘마약밀매혐의’로 40년형을 선고받아 현재까지도 복역 중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염두에 둔 레니 할린 감독은 영화 <다이하드 2>의 소재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원작은 따로 있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황열이나 말라리아가 파나마에 없었다면 파나마 운하의 장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군의관 리드가 황열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미국의 손으로 만들어진 파나마 운하는 없을 수도 있을까?

 

하여간 책임감 강하고, 명석하고, 부지런한 군의관과 자신의 목숨을 내다던지고 생체실험을 한 애국적인 연구자들 덕분에, 미국은 결국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노리에가는 미국의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다이하드 2> 2주 연속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 4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부한 영화를 별 생각없이 잘 보고 있다. 이 모든 실패와 성공의 역사가 ‘황열모기’ 때문이라면 좀 심한 억지일까?

 

 

 

 

 

 

교도소에 수감중인 노리에가



박지욱 help@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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