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위축시키는 국내 의료행위 처벌, 과도한 측면 있다

2023-06-08 05:59:37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 필수의료 기피 요인… 해외 비해 압도적으로 소송 수 많아
필수의료 살리기 위한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책임’ 필요성 제기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이 진료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최근 필수의료 진료과에 대한 기피율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의료소송, 의료사고가 꼽히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 등 필수의료 관련 문제점이 연일 지적되는 가운데,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의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어 과도한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현영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주최하는 ‘의료현안 연속토론회’가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6월 7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개최됐다.

제1차~4차 토론회와 종합토론까지 6~7월 동안 총 5번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의료현안 연속토론회’는 최근 간호법, 의료법 사태를 겪으며 갈라진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봉합을 위한 미래 보건의료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전문가·이해관계자의 토론의 장으로 마련됐다.


신현영 의원은 “오늘 토론회를 통해 필수의료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제기되는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과 의사-환자 소송전으로 치닫는 의료불신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고자 한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들을 징벌적으로 정죄하는 것이 과연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고, 협력적 방안을 도출해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도 축사에서 “최근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의사가 급감하고, 심각함이 대두된 이유 중 하나가 의료사고, 의료분쟁 문제이다. 의료행위 하나마다 잘못된 결과가 있을 때 법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런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2개의 발제에 이은 토론회로 진행됐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이 ‘의사형별화 경향 국제비교 현황과 문제점’을 발제했으며, 신현영 국회의원이 ‘징벌적 처벌의 대안–법안 제정 경험을 바탕으로’를 발제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2022년 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 ‘의료행위의 형별화 현황과 시사점(김형선 부연구위원)’ 중심으로 우리나라 의료행위 형벌화가 다른 국가에 비해 과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의사의 과실치사상죄 기소는 평균 경찰 4,397건, 검찰 2,527건으로 비슷한 시기 영국과 일본의 연 평균 기소 건수가 두 자리수인 것에 비해 많게 나타났다.

영미법에서는 의료과실로 인한 형사적 처벌보다는 손해배상과 면허관리기구를 통한 행정 처분을 하고 있고, 일본과 독일 법에서는 경찰 조사 단계부터 기소 자제로 의료분쟁 당사자 및 진료 환자의 진료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법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봉식 소장은 “한국 의사의 1인당 연간 기소건수는 일본의 265배, 영국의 895배에 달한다. 의료분야에 대해 의료전문가들이 충분히 의학적인 판단으로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현재 상태는 과도하게 통제되는 상태로, 필수의료에서 소신 있게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사명감을 가진 젊은 의사들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신현영 의원이 ‘징벌적 처벌의 대안 – 법안 제정 경험을 바탕으로’라는 제목으로 의료사고 국가보상 및 착한사마리아인법 입법 과정에 대해 발제했다. 21대 국회에서 신현영 의원실이 여러 보건의료 관련법을 입법한 과정을 소개하며, 법 제정에 있어 의료계와 국민, 정부의 소통이 중요하고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신 의원은 ”의사로서 국회에 와서 의정활동을 하며 어떤 부분에 어떤 제도를 만들어가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필수의료를 지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는 사회의 현실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하고, 최근 보건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것을 실감하며 필수의료 체계 개선이 절실한 시기라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최근 5월 본회의를 통과한 무과실 분만 국가전액배상법 사례를 소개했다. 2013년부터 국가-개인 배상 분담으로 제도가 운영되다가, 2022년 5월 국가가 전액 보상하는 무과실 분만사고 국가책임법이 대표발의되고 1년 만에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은 시의성, 정부, 국회, 의료계, 예산가용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반대 의견을 냈지만, 저출생 문제가 현재 중요한 국정 과제이며, 산부인과가 필수의료 분야이나 열악한 의료환경을 고려했을 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보건복지부 의견에 동의하면서 수용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의원은 추가적으로 긴급하게 응급의료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착한사마리아인법(응급의료법 개정안)’, 응급실 폭력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는 ‘의료현장 반의사 불벌죄 폐지법’. 그리고 필수의료 정의와 범위를 규정하고 3년마다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필수의료 제정법’ 발의 및 발의 예정안에 대해 언급했다.

신 의원은 ”현재 분만사고를 제외한 무과실 의료사고는 별도 통계화돼 관리돼 있지 않다. 무과실 의료사고의 국가보상을 강화하고, 의사-환자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의사면허취소강화법이 통과됐는데, 불신이 악화되는 동안 의사협회가 더 자정 작용을 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있다. 의료계가 더 많은 소통을 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서울의대 예방의학과 홍윤철 교수가 좌장을 맡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 대한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 대한환자안전학회 이재호 회장, 소비자시민모임 황선옥 상임고문, 보건복지부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이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이 개선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소아청소년과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 영향으로 2019년부터 전공의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위험, 저보상 수가, 저출산이라는 3가지 요인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응급실, 신생아실 기피 및 대형병원 선호 현상으로 곧 30% 병원이 전공의가 없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소아청소년과는 보호자 시선이나, 요구사항이 굉장히 크다. 그런데 형사적인 문제가 발생 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발제에서 언급된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확대는 필수의료 분야부터 확대돼야 하며, 의료기관에서 진료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또 법적인 책임에 대해서 전문가 의견이 수용되는 중재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은 ”응급 구조에 너무 문제가 많다. 권역외상센터에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고,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 자제에 대한 국민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경증환자를 뺄 수 없고, 방어진료 측면에서도 환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응급의료는 또다시 마비가 된다“고 말했다.

또 최성혁 이사장은 ”착한 사마리아인법과 반의사불벌죄 폐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학회에서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대해 1년간 강조했지만 폐지 불가라는 결론이 났다. 응급의학과도 전공의 등 의사 감소 추세에 들어섰다. 환자의 안전 뿐만 아니라 의사의 안전과 권리도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한자안전관리학회 이재호 회장은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처벌이 적은 것은 단순 책임주의가 의료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충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행위는 올바르게 적용돼도 환자에게 위해가 갈 수 있으므로 책임과 교사 원칙을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선진국의 형사처벌 면책 부분에 대한 전향적인 수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과 환자의 정보 격차로 인한 부분을 고려하고, 의료인도 의료사고 예방과 환자와의 소통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소비자시민모임 황선옥 상임고문은 ”2012년 정확한 의료사고의 판단을 위해 의료중재원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형사적 책임을 무과실일 때 면제하도록 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의료계에서도 전문기술 훈련과 마음가짐에 대한 교육 등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의료인에 대한 징벌적 조치는 환자에게 해가 된다고 보지만, 동시에 의료인에게 환자와 진정성 있게 설명해서 소통하려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 사고는 의료 행위 자체가 갖는 특수성과 전문성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다. 의료인이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어 의료 사고 여부에 대한 판단 자체가 원인 규명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의료인과 환자 간에 균형된 공격과 방어 수단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전제가 오늘의 형사처벌 적절성 논의 이전에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미라 과장은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의사의 설명 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행위별 수가체계 아래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는 현장의 특수성 아래서 환자가 충분한 설명을 받고, 어떤 진료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판단하고 보상을 담보하는 기재가 부족하다. 국민은 이런 상황에서 결국 형사적인 도움을 기대하게 되는, 전체적인 의료 시스템이 갖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종적으로는 의료인이 소신을 갖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전문 의료 기술을 펼치는 게 맞지만, 그 전에 여러 가지 입증 책임에 충분한 배상을 위한 전제 조건 등이 법안에서 많이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것이다.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명시했듯이 의료인의 의료 사고 부담감을 완화하고, 동시에 의료사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하고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재원에서 의료분쟁을 조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응급의학과 분야의 의사가 없는 등 전문성 확대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제기됐다. ‘무과실 분만사고 국가책임’에서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책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직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이득을 위해서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보다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공감이 형성됐다. 


이형규 기자 kyu7179@medif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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