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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암으로 세상 떠난 환자들 조명하고 싶었죠”

<인터뷰>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저자 박종훈 교수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삶이 결코 암을 극복한 분들의 삶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습니다.”

최근 한 대학병원의 암 전문의가 비록 암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환자들을 수없이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사실 못 고친 암 환자가 더 많다”고 솔직히 털어 놓은 회고록이 출간되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시중에 출간된 암 관련 책들을 살펴보면 주로 환자들이 쓴 ‘암 극복기’나 의사들이 쓴 ‘암 전문 지식’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조명한 책은 없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의 저자 박종훈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종양, 외상 전공)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종훈 교수는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무엇보다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기록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명대로 살지 못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뿐더러 결국 성공한 최선과 성공하지 못한 최선은 모두 나란히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박 교수의 전공인 뼈암(골육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사실 대부분 암이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렵지만 골육종은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골육종은 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환자의 생활습관이나 스트레스 유무에 관계없이 발병한다. 전체 악성 종양 중 약 0.2%를 차지하는 드문 암으로 발병하자마자 혈관을 통해 전이되어 진단 당시에는 대부분 이미 멀리 떨어진 장기까지 전이된 상태여서 장기 생존 가능성이 20%도 채 되지 않는다. 뼈에 다발성으로 골육종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사망하고 만다.

“당신(환자)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박 교수의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박종훈 교수는 “암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건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누구도 원망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해도 환자나 가족이 치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그걸로 인간이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암으로 죽고 사는 문제는 인간의 영역밖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처럼 죽음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 혹시 종교가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의외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실 예전에는 불교신자였고 성당도 나가고 교회도 나가봤지만 지금은 종교가 없어요. 병원에서 너무나 많은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하면서 생각이 변했어요. 10살짜리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암으로 죽어야 합니까?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암 전문의로서 끊임없이 죽음을 목격하고 여러 종교를 섭렵하면서까지 죽음에 대해 진정한 성찰을 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 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번 책을 내게 된 배경에 사실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현대 의학의 한계로 어쩔 수 없었고 의사도 때론 이렇게 환자를 위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고민하고 걱정한다는 걸 환자나 가족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

사실 암치료에 성공한 환자들도 많다. 환자들이 암 치료에 성공하면 의사에게 한없이 고마워하지만 진료실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의사에게 고맙다고 연락하는 환자는 드물다.

하지만 박 교수의 경우에는 암 환자를 성실히 치료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그 유족들이 박 교수를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찌 보면 실패한 환자들인데 치료한 환자들보다 더 고마워하고 찾아오는 것은 정말 황송할 따름입니다. 저도 젊었을 적엔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가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 50살을 넘기면서 적은 환자라도 한분 한분 소중히 여기는 의사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번에 출간한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는 결국 환자들을 위한 ‘힐링’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종훈 교수는 의과대학 교수 신분이지만 한때 개원의사가 주축인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며 의료계 이슈의 정점에 섰던 이력도 있다. 기자는 교수 신분으로서 의협 일에 그토록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 질문에 “의약분업 투쟁 당시 현장에 있던 의사였고 의약분업 직후 잠시 동안 이었지만 개원을 했던 경험이 있어 교수가 된 이후에도 의료계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원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워낙 많은 천성을 갖고 있어 당연히 일차적으로 내가 몸담고 있는 의료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의료계가 올바로 나아가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의협회장 출마까지 결심하게 됐다”며 "회장직을 1년 밖에 수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매우 컸다"고 밝혔다.

또한 "개인적으로 가장 의사다운 의사상은 동네의원 의사라고 생각한다"며 "그 이유는 동네의원 의사가 환자와 가장 잘 호흡하고 소통하며 환자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의협선거 회장 출마를 끝으로 당분간 의료계 일에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 의료계의 지향점이 있었지만 지난 선거를 통해 그게 대부분의 의료인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의료계 일에 더 이상 개인적인 소신을 밝히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이지만 의사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외에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 등을 겸직하고 있는 그의 이력이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케한다. 이 외에 보건산업진흥원 이사, 국무총리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광고특위위원 등도 역임한 바 있다.

끝으로 박종훈 교수는 “앞으로 의료계 일이 아니더라도 의사로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찾아가 기꺼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