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인터뷰

“미래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은 공공의료”

김현정 서울특별시 동부병원장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공공의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서울시 동부병원 정문에 들어서면 가수 조영남의 히트곡 ‘화개장터’를 개사한 ‘서울특별시동부병원 주제곡’이 희미하게 울려 퍼진다. 조영남씨와 MBC문화방송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주제곡이다.

“동부병원은 시민 여러분의 믿음과 응원과 사랑에 부응하여 적정진료와 공공의료활동으로써 진실하게 응답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검사와 수술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임상시험을 하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진료라면 돈이 없더라도 제때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동부병원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건강증진병원입니다.”

입구엔 이런 글귀가 눈에 띈다. “공공의료가 진정한 미래의료의 모습”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김현정 원장을 최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특별시 산하 공공병원 중 하나인 동부병원은 과거 행려 및 노숙인들의 전국구 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진료서비스를 많이 시행하는 병원이다.

노숙인들뿐만 아니라 의료급여환자 등 사회취약계층이 많이 찾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지 모르게 삶의 팍팍함이 한껏 묻어나는 느낌의 공공병원이었지만 지난 4월 김현정 원장의 취임 이후 분위기가 엄청 활기차게 달라졌다.

당장 오는 9월 7일부터 11일까지 ‘2015 공공의료와 친구되기 – 프렌즈위크’ 행사를 개최한다. 가족과의 단절, 경제적 빈곤 등으로 상실감이 크고 문화예술을 체험할 기회가 부족해 치료의지마저 상실한 취약계층에게 무료로 문화예술행사 관람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병원을 만든다”는 소신 아래 병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과 ‘도시락데이트’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부서나 직종과 관계없이 같은 직급에 있는 10명 이내의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도시락을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병원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부서나 직종이 아닌 같은 직급 직원들로만 데이트 구성원을 선별한 이유에 대해 김 원장은 “같은 부서라도 하급직원들이 자기보다 상급자가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해서”라고 설명했다.

김현정 병원장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다. 화려한 이력과 얼핏 어울리지 않게 지난 2012년부터 동부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시작해 공공의료에 몸담고 있으면서 각종 언론인터뷰와 저술활동, 강연 등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연세의대 출신의 김현정 원장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정형외과 전문의 면허를 취득하고 미국 코넬대학병원 펠로우를 거쳐 아주대병원 교수를 지내다 다국적 제약기업인 화이자제약, 존슨앤드존스메디컬에서 총괄디렉터를 역임했다.

또 현직의사로서 한 눈에 봐도 그 내용을 짐작케 하는 도발적인 제목의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의사는 사라질 직업인가’ 등의 책을 저술해 의료의 실상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대학병원 의사들이 성과급에 매몰되어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비급여 진료를 권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의료현실에 대해 ‘의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특히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병원장 회의에서 병원 경영이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 순위로 논의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런 확신이 더 들었다고 말했다.

빅5 병원 의사라고 하면 더 어울릴만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아직도 종이로 된 차트를 쓸 정도로 70년대의 체취가 남아있는 서울 용두동 공공병원에서 진료를 하게 된 이유를 짐작케 한다.

김 원장은 “의사들이 환자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1분 만에 진료를 마치고 수술까지 결정하는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런 이유로 대형병원에서 수술날짜까지 잡고 동부병원에 다시 내원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그는 민간병원에 비해 동부병원을 비롯한 공공병원이 갖는 장점에 대해 “상대적으로 성과에 대한 압박이 덜해 의사가 환자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할 수 있고 불필요한 진료나 수술을 권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했다.

병원 주제가처럼 “있어야 할 것은 있고 없어야할 것을 없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병원이 공공병원이고 의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래의료가 공공의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정 병원장은 “인구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금 의료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현재 7%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열악한 우리나라 공공의료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9월 7일부터 11일까지 개최되는 ‘2015 공공의료와 친구되기 – 프렌즈위크’ (테리우스 프로젝트)는 이런 공공의료 가치관을 가진 김현정 병원장의 당면 추진 과제라 할 수 있다.

의료취약계층은 곧 문화적 소외계층이나 다름없다는 김 원장의 설명. 소외계층을 위해 병원이 단순히 치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이 포함된 공공의료행사까지 마련해 인간 본연의 well-being을 기반으로 한 전인적인 치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리우스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인기 만화 ‘캔디’의 남자 주인공인 테리우스는 굉장히 부잣집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연극배우로 살면서 문화소외계층들을 위한 자선공연에 앞장서요. 여기서 영감을 얻었죠.”

이번 행사는 ‘MUSIC, DANCE, PLAY, MOVIE, CARTOON’ 총 5가지의 각 요일별 테마로 구성되어 ▲뮤지컬 비밥(BIBAP) ▲국악예술단 ▲김겸 박사의 ‘예술과 친구되기-피아노가 있는 미술이야기’ ▲영화감독 장진의 ‘영화이야기’ ▲JP 임종필 트레이너의 ‘몸짱과 친구되기’ 등 유명인들의 재능기부 강연이 이어진다.

특히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행위예술계의 대모 ‘마리아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The artist is present(예술가가 여기 있다)’를 의료판으로 재현하는 특별 퍼포먼스‘The doctor is present(의사가 여기있다)’도 열린다.

의사들이 환자들과 1분 동안 계속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적인 공연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정혜신 박사’와 ‘만화가 허영만 화백’ 등이 참여한다.

김현정 병원장은 “소외된 사람들을 잘 보듬어야 공동체가 잘 발전할 수 있다. 이번 행사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공공의료를 확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프렌즈 위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