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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사들 스스로 자정해야 부당청구 줄어”

<인터뷰>한만호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장


“의료 전문가인 의사들 스스로 자정(自淨)능력을 가져야 의료기관의 부당청구를 사전에 가장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현지 조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찰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한만호 마포지사장(사진)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 같이 말했다.

최근 공단 성북지사 직원들이 대한의원협회로부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및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단 직원들이 일선 의원급 의료기관을 방문해 현지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표준운영지침(이하 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을 준수하지 않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는 공단 서초지사 직원이 경찰관, 민간보험회사 직원과 함께 관내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현지 조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수술실을 급습해 수술 중인 의료진에게까지 자료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요양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하에서 보험자인 공단의 요양기관 방문확인 업무는 국민건강보험법, 법제처 유권해석, 보건복지부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 등에 따른 권한이다.

요양기관이 공단으로 청구,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에 대해 공단이 민원제보, 요양기관 관련자 신고, 급여사후관리 등을 통해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 직접 요양기관을 방문해 사실관계 및 적법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공단이 현지 조사 과정에서 위 두 사례처럼 SOP를 준수하지 않고 월권행위를 하며 의료 전문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만호 공단 마포지사장은 “현지조사를 벌이기 전에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허위·부당 청구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 역시 다른 지사장들처럼 의사회, 약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등 지역의약단체 관계자들과 공조체계를 갖추고 정기적으로 만나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어쩌다 조사사례나 적발사례가 발생하면 의약단체 관계자들에게 ‘이런 건 의약공급자들의 명예문제가 아니냐’고 강하게 어필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고 결국엔 공급자들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죠”

아무리 일선 지사에서 사전·사후 조사를 철저히 실시하고 의약단체와 밀접한 공조체계를 유지하며, 공단 본부에서는 적발시스템까지 개발했다고 해도 의료인이 아닌 공단 직원들이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조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늘 전문성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 지사장은 의료인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지는 게 부당한 청구를 사전에 예방하는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의료인들 스스로의 자정능력으로 부당한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적발해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독일의 경우 지역의사회에 관내 의료기관에 대한 감독권까지 부여돼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는 독일이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면서 “진료비 총액이 결정돼있는 상태에서 부당한 청구가 발생하면 다른 선량한 의료기관에 피해를 입히는 일이 되기 때문에 공급자가 보험자와 협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한만호 지사장은 일선 지사장으로 부임하기 전 공단 본부의 수가급여부장으로 재직하며 각 의료공급자 단체들과의 건강보험 수가협상에 수차례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을 가진 그는 ‘시장은 미국식, 공급관리는 유럽식’로 형성돼있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일차의료 혼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 지사장은 “이 때문에 동네의원들이 빅5 병원들과도 싸울 정도로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려 부당청구까지 자행하는 것”이라면서 “그 대표적 사례가 비급여 양산”이라고 말했다.

경쟁에 내몰린 병의원들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는 아무리 환자를 많이 봐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어 불가피하게 비급여 진료를 늘린 결과 환자들은 과잉의료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한만호 지사장은 “과잉의료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처방은 진료 표준화라고 생각한다”면서 “삼성의료원과 작은 병원의 맹장염 프로세스가 왜 달라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각 진료과목 별 학회 등을 통해 진료 표준화가 확립된다면 큰 병원이면 무조건 좋다는 그릇된 인식이 개선되어 해남 땅끝마을의 환자가 불필요하게 서울대병원을 찾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만호 지사장은 “진료 표준화가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가 더 커져 회생불가능한 상태가 돼버릴 것이기 때문에 하루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