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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콧물 빼주지 않을 용기!

신동아의원 신종찬 원장

“원장님! 이번에는 정말 우리 아이 코 좀 시원하게 빼주셔야 해요!”


모처럼 진료 받으러 온 아이 엄마가 불만스런 말투로 부탁을 한다. 콧물을 잘 빼주지 않아 내게 자주 오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그동안 나는 콧물을 빼달라고 하면 빼주지 않거나 건성으로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불만이 있는 보호자들은 다른 소아과나 이비인후과에서는 매번 열심히 빼준다는 볼멘소리까지 듣곤 했다. 그 때문에 환자들이 떨어들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아직까지는 이 소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


의사라면 의과대학 시절 배워서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눈물과 콧물 속에는 아주 유용한 성분이 들어 있다. '라이소자임'이라는 성분이 가장 중요한데, 이 효소는 인체가 분비하는 소중한 천연 항생 물질이다. 코에 염증이 생기면 점막의 술잔세포에서 분비물을 많이 생산하여 콧물을 많이 흘리게 된다. 콧물 속에는 라이소자임 외에도 염증으로 상처 난 비강 내의 호흡기 점막을 보호하고 재생을 돕기 위한 기능 물질까지 있다.


이번에는 내가 반격할 차례다.

위에 있는 내용을 설명한 다음, 컴퓨터에서 라이소자임을 직접 검색하여 보호자와 같이 읽는다. 그리고 내가 콧물을 뽑지 않고 치료하는 것과, 이비인후과 등에서 콧물을 뽑으면서 치료했을 때 어느 쪽이 먼저 낫는지 비교해보라고 슬쩍 권유해보기도 한다. 수술 등 외과적 처치를 주로 하는 이비인후과에선 코를 뽑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겠지만, 수술이 필요 없는 질환에서 코를 빼면 병의 경과가 길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내 설명에 동의하고 따르는 분들은 단골 환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진료나 치료가 마음에 드는 병원으로 갈 것이다. 이미 오랜 불황과 치열한 생존 경쟁이 몸에 밴 개원의 선생님들은 환자나 보호자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성싶다. 환자에게는 일단 뭔가 해주는 의사가 성의가 있어 보일 것이다.


나도 웬만하면 환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양보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콧물 빼주지 않기’다. 제자 없는 스승이 없는 것처럼,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면 무능한 의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남에게 칭찬 받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행복할지 모르나, 길게 보면 자기 만족도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독일의 심층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말한다. 아들러는 인간 심리의 가장 기본은 '시기심'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열등의식'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시기심의 발로가 바로 이 '열등의식'이라고 했다. 우월감도 따지고 보면 열등의식을 감추기 위한 겉치레로 보았다.


일본의 기시미 이치로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사상을 바탕으로 쓴 ⟪미움 받을 용기⟫에서 여러 명언들을 소개했다. 아들러의 명언들을 더 들어보자.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와준 상대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때 "기쁘다", "도움이 됐다" 등 수평적 관계에 근거하여 용기를 준 데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감사, 존경, 기쁨의 인사와 같은 수평적인 말을 써야 한다.


아들러는 ‘미움 받을 용기’를 강조하며 이런 말들을 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살아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면서 살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살면, 주변에서 인기가 많고 싫어하는 사람이 적을 거다. 대신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자주 미움 받으면 ‘뭘 먹고 사나?’하는 현실적 고민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