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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J에게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홍범식 교수

옆구리 두 개의 신장은 어제 먹고 마신 탁한 국물들을 밤새도록 애써 걸러내었다. 짙은 호박 빛깔의 고농축 오줌은 요관을 통해 방광까지 흘려 내려갔다. 덜 깬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신을 집중하자 방광 근육이 수축하면서 밤새 고였던 소변은 줄기차게 떨어져 내렸다. 열 손실을 만회하고자 온 몸이 한바탕 부르르 떨렸다. 어제 요관을 잘라내고 소장으로 갈아 끼우는 수술을 했다. 암은 이겨내었으나 치료 과정에서 요관이 막혀 힘들어 했던 환자였다. 오래 걸렸던 수술 탓인지 허리가 쑤셨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컴퓨터 유튜브 창에 열어 놓은 7080 음악만으로도 흡족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노랫말 속에 반복되는 J를 듣다 보니 요관 속을 지나가는 오줌의 흐름이 떠올랐다. 사람 몸은 온갖 복잡한 구멍과 관들의 집합체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몸 밖에서 이 구멍이나 관에 접근하여 막힌 곳을 뚫고 새는 곳은 막으려는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해 왔다. 요관이 막혔을 때 방광내시경을 통해 신장까지 삽입하는 요관 스텐트는 양쪽 끝이 J 모양으로 구부러져 '더블 제이' 간단히 그냥 'J' 라 불린다. 삽입된 J를 통해 소변은 다시 흐를 수 있다. 그대신 J로 인해 혈뇨나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J는 삽입 후 점차 찌꺼기가 생겨 막히게 되면 그 수명을 다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나의 진료실 테이블에는 환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J가 놓여있다. '천둥 번개도 막힘이 풀리면 청명한 하늘로 변하듯이 사람 마음도 작은 막힘 때문에 일시 혼돈된다 하여도 곧 흐름이 풀리면 온화하고 깨끗한 본체의 상태로 되돌아온다' 홍자성의 채근담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득 생각은 지난 가을 외래진료 시간으로 옮겨갔다.


남편 손을 잡고 힘겹게 걸어 들어 온 환자는 간신히 입을 떼며 물었다. "선생님, 몸 속에 이 관은 도대체 언제 뺄 수 있나요?" "병이 좋아지면 그 때 빼 드릴게요" 나의 이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 걸음 뒤에 서서 듣고 있던 남편의 눈빛은 슬퍼 보였고 내가 겨우 눈치 챌 만큼 나지막이 고개를 아래로 끄떡이면서 나의 거짓말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환자는 40대를 자궁암 수술로 시작하였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까지 가까스로 견뎌내었으나 암은 퍼져만 갔다. 장 폐색으로 수술을 더 받았고 장루를 통해 변을 배출해야 했다. 암은 폐와 간에 이어 복강 속까지 퍼져 요관을 막았다. 양쪽 요관에 삽입된 J 덕분에 투석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게 J군요" 진료실 책상 위에 놓인 J를 만져보며 환자가 말했다. "다음엔 좀 더 있다가 J를 갈아 끼우면 안되나요?" 나는 환자의 낯빛을 살피며 멈칫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예정대로 교체하러 오셔야 돼요"


좀 늦게 교체해도 되냐는 환자의 말은 그저 지쳐서 하는 말로 들렸지만 운명을 예감한 자의 마지막 부탁일 수도 있었다. 암의 진행 정도로 보아 다음 방문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었으나, 나중에 갈아도 된다는 나의 말이 자칫 더 큰 절망으로 받아들여질까 염려되어 예정대로 오도록 말하고 말았다. 남편이 아내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주면서 진료실을 나갔다. 부인을 대하는 태도에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부부가 방을 나설 때 나는 비슷한 감정이 들 때면 버릇처럼 그랬듯이 책상 위에 놓인 J 양끝을 교차시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돌아 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환자들이 그녀처럼 나의 마지막 진료실을 나섰고 교체되거나 제거되지 못한 J는 주인과 함께 세상을 떠나갔다. 음악을 끄고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을 삼켰다. 어제 수술한 환자가 잘 회복하여 작은 막힘으로 아파했던 날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기를 빌었다. 창 밖의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우리의 모든 막힘이 곧 풀리고 온화하고 깨끗한 파란 하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금 나의 환자들 몸 속에 박혀있을 모든 J에게 명령했다.


'살아 돌아오라'고.



홍범식 교순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석사, 박사를 수료한 후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에서 정공의, 전임의를 거쳐 현재 비뇨기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 보령제약이 제정해 시상하는 제12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에 '두껍아 두껍아'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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