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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B형간염 치료 분야에도 여전한 ‘심평의학’ 비판, 개선점은?

지난 7월 28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간염의 날(World Hepatitis Day)’이었다. 간염의 유형 중 하나인 B형간염은 대부분 수직감염에 의해 전염되며 완치제가 없어 평생에 걸쳐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 질환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과거 국가검진과 예방접종 사업을 통해 수직감염에 의한 신환 발생이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이미 감염된 환자들의 치료 관리만이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또한 B형 간염 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간경화와 간암으로의 진행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기적인 검진을 요하게 된다.


국내에는 비리어드, 바라크루드 등과 같은 효과적인 치료제들이 있을뿐더러 이미 해당 약물들의 특허가 만료된 상황으로 값싼 제네릭 등이 출시되며 국내 보험재정 절감에 보탬이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내제약사가 자체 개발한 국산 신약 '베시보'와 기존 '비리어드' 제조사가 개발한 비리어드 업그레이드 품목 '베믈리디' 또한 국내에 급여 출시되며 환자에 치료 옵션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마주하는 간 전문의료진들은 새로운 치료제 처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새로운 치료제들이 초치료 환자에서만 급여 인정되는 관계로 기존 환자들의 교체 처방이 사실상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재 B형간염 약제의 보험급여기준에 따르면, “교체 투여는 내성, 치료반응 불충분 및 무반응, 임신, 객관적으로 증명된 심한 부작용에 급여 인정하며, 복약순응도 개선 필요, 비용효과성 개선 등은 의학적 타당성을 감안하여 급여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새로 출시된 '베믈리디'는 기존 '비리어드'의 염 변경 약물이다. 내성 발생 부분에 있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테노포비르'를 염 변경을 통해 간에 표적하는 효과를 더함으로써 기존 약물 용량의 10분의 1 이하로도 치료효과를 내며, 전신에 미치는 영향을 줄임으로써 신기능 저하나 골밀도 감소 부작용 개선에 성공했다.


S대학병원 소화기내과 A 교수는 최근 급여 삭감으로 인한 고충을 이야기하며 현행 베믈리디 급여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리어드로 3년간 B형간염 치료를 받고 있던 37세 남성 환자는 최근 사구체여과률이 92에서 61까지 떨어지며 급격한 신기능 이상 징후를 나타냈다.


A 교수는 환자의 연령이 젊다는 점, 그리고 전문가의 판단으로 신기능 저하 징후가 명확하다는 점을 들어 신기능 저하 부작용이 개선된 베믈리디로의 교체 투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사구체여과률 60 이하에서 급여 인정 가능하다는 심평원의 기준에 약체 교체는 이루지지 못했다.


A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환자가 이제 겨우 서른 중후반인데 벌써부터 신장기능이 망가지면 앞으로의 삶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이 있겠냐”고 되물으며, “현재의 심사기준은 신기능이 망가진 후에야 약체 교체를 허하는 꼴”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또한 “신환에서 허가되었다는 것은 안전성과 효과가 이미 인정된다는 뜻인데, 기존 환자에 교체 투여가 급여 인정 안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이는 기존 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급여가 삭감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SS대학병원에서도 골밀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골연화증이 발생한 환자에서 베믈리디로 교체했지만, 삭감 통보를 받아 재심사를 청구한 상황이다.


물론 교체 투여가 개별 심사를 통해 적용 여부를 심사하는 만큼, 완벽한 형평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심사관에 따라 판단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에 위에서 언급한 삭감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며, 때문에 정부도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베믈리디의 급여 기준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기존 치료제 대비 부작용을 현격히 개선한 약물에 대해 기존 환자의 접근성을 차단하고 있으며, 의료진의 전문가적 판단을 개별 심사함으로써 형평성 논란을 자초하고 있고, 보험재정 절감에서도 그럴듯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17년 연매출 1,659억 원으로 국내 판매실적 1위 약제인 비리어드의 급여가는 1정당 4,727원, 같은 해 연매출 738억 원을 기록하며 4위로 링크된 바라크루드는 1정당 3,082원이다. 제네릭의 약가는 이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출시된 베믈리디는 1정당 3,754원이다. 비리어드 대비 1,000원 가까이 저렴한 가격이다. 교체 투여의 제한이 재정 절감의 이유는 아닌 것이다. 다만 심평원은 기존 치료 환자에서 베믈리디로 교체가 이뤄졌을 시 안전성에 대한 근거 자료가 미비하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IT 기술의 발달로 환자들 또한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물에 대한 정보 접근이 점점 용이해지며, 대학병원 의료진들조차 환자가 특정 약물을 지정해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환자 스스로가 베믈리디로의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급여 문제를 거론하며 교체를 포기시켜야 하는 의료진들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고 호소한다.


심평원은 베믈리디가 이미 허가 당시 비리어드 대비 부작용 개선을 입증한 약물인 만큼, 기존 환자의 치료 선택권과 간 전문의료진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심사에 대한 형평성 논란의 여지가 많은 교체 투여 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보험급여 기준의 확대든 교체투여 심사기준의 정립이든, 개선된 약제에 대해 합리성과 탄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