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기자수첩

필수의료 대책, 땜빵식 말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가야

수가가산, 임상과별 가산이 아닌 질환별 수가 가산으로 나아가야
필수의료 전담 부서 및 담당관 만들어 의료계와의 장기적인 논의 가능케 해야
전문의 근무환경 개선해 의사들을 유인 및 필수의료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해야

일본 속담 중에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라는 내용의 속담이 있다. 

나쁜 일이나 추문이 있으면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일단 덮어 놓고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가린다는 뜻을 가진 속담으로, 문제가 생기면 일단 덮고 보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을 뜻하는 속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면서 정부 또한 필수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와 만나 논의하는 등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공청회를 열어 필수의료 대책안을 발표하면서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을 알린 바 있으며, 필수의료 해결을 위한 민·관 협의체를 만들어 협의체에 참여하는 학회 관계자 등과 필수의료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필수의료’라는 단어 때문으로, 진료과가 필수의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비필수의료’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한정된 정부 예산에서 ‘필수의료’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지원 등을 적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학회와 의사회를 중심으로 지원의 시급함과 상관없이 모든 임상과에서 ‘필수의료’ 카테고리에 안에 들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며, 응급의료와 중환자 의료를 비롯해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시급한 임상과에서는 한정된 정부 지원이 더 쪼개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또 있다. 그 문제는 바로 정부에서 발표한 필수의료 대책 내용 그 자체다. 

기자로 일하면서 이번 필수의료 대책과 관련해 여러 의학회를 비롯한 의료계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나눠본 결과, 이번 대책은 일본의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은 없거나 부실해 보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먼저 수가 가산과 공공정책수가 도입·적용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두 방안 모두 이번 필수의료 사태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이자 우리나라 의료가 힘들다고 호소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인 행위별수가 기준을 개선하는 영역에 그치는 내용들로 이뤄져 있었다.

환자 숫자만큼 돈을 주는 행위별수가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진료환자 1명당 막대한 보상을 주지 않는 한, 의사들은 여전히 밥벌이를 위해 과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막대한 업무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직업·직군으로 넘어가는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이번에 필수의료 관련 문제를 어찌저찌하여 봉합하더라도 필수의료 붕괴 사태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해야 하며, 현재 의료계에서 서로 '필수의료' 카테고리에 속하기 위해 각 임상과마다 분투하는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학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임상과별 지원이 아닌 질환별 수가 가산 및 지원 등을 통해 혼란을 해소하고 필수의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제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의료계에서 한 목소리로 호소하는 사안 중 하나가 열심히 일한 의료진들에게 수가 등의 보상이 병원으로 들어가는 등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외침에 대해서도 보다 직접적으로 의료진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의료계 간 소통창구 부실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하다. 

의료계를 돌아다니며 자주 들어본 말 중 하나가 바로 정부와 소통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담당자가 매번 바뀌다보니 필수의료와 관련해 의료계가 처한 현실과 문제 등을 이해할 정도로 설명하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을 논의하려면 담당자가 바뀌어버려 다시 새로 온 담당자에게 상황 등을 설명해야만 해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정부와 필수의료 관련 문제를 건의 및 논의하려고 하면 여러 담당부서의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야 하고, 서로 연관돼 있는 경향이 크다보니 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담당부서가 서로 법과 제도 등을 조율해야 하는 문제 등이 있어 필수의료 문제 해결 과정 자체가 힘들다는 문제점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민·관 협의체 같은 것을 만들거나 필수의료를 전담하는 담당관 1명을 통해 의료계와 정부 간 소통이 보다 원활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며, 담당자 순환배치에 대한 문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력에 대한 해결책도 영 신통치 않다. 아니,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살펴보면 현재 있는 인력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순환 당직과 필수의료 부문 전공의 배치 확대 등이 대표적인 인력 효율 향상을 위한 대책이라 할 수 있다.

필수의료 쪽에 전공의 배치를 확대한다? 전공의들이 계속 공급되는 한 필수의료 영역에서의 인력 공급 부족 문제는 일단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닌 1명의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수련 중인 의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간단한 질환이나 약을 처방하면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라면 전공의 배치를 확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겠으나, 고난이도의 수술 등이 요구되는 환자들은 ‘전문의 부족’으로 치료받을 기회도 없이 고통을 호소하며 희망을 저버리는 비극이 찾아올 수 있다.

순환 당직도 당직을 돌 전문의들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의료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미 시범사업 형태 등으로 실시 중인 사업들도 ‘전문의’ 인력 부족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한다면 탁상공론에 그친 방안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학제 개편 및 수련기회 확대 등도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므로 전공의들의 근무 만족도는 향상될 수 있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공의 한정으로 전공의들이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전공의와 전문의를 막론하고 근무환경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가족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을 잘 수 없으며 모아놓은 돈을 쓸 시간도 없이 과로를 하며 몸을 혹사시켜야만 함은 물론, 혹여나 소송이라도 당한다면 패소 시 막대한 돈을 물어주고 비난을 들어야만 하는 직업이 ‘의사’라면 과연 할 사람이 얼마나 되며, 사명감으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워라벨이 중요해진 시대에 걸맞는 대책을 내놓아야 하며, 정부가 의사들이 처한 근무환경을 외면하지 말고, ‘의사’가 아닌 ‘의사’라는 명칭의 의료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해 일하고 있는 한 명의 국민이자 근로자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죽어가다 못해 살기 위해 선택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직업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함을 말하고 싶다.

아울러 의료인 공급 확대와 더불어 근무환경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필수의료를 비롯해 의료계에 산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한 단계 해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함을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