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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사와 환자를 넘어서”…젊은 돈키호테의 도전

제너럴 닥터 김승범 원장


홍대 놀이터 근처에서 카페 같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승범 원장은 96년도에 연세의대에 입학해 2004년 졸업했다.

졸업 후 경기도 양주에서 3년간 공보의 생활을 한 뒤 지난 5월 1일 ‘제너럴 닥터(이하 제닥)’를 개원, 주로 ‘이색 병원’ 등과 같이 특이하게 병원을 운영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 추천을 받고 찾아갔던 이유 역시 ‘문화 일 번지 홍대 앞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고 직접 커피를 팔면서 편안하게 병원을 운영한다는 의사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괴짜 같은 의사의 독특한 창업(?)의 변을 들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현실적이고 똑똑한 젊은 의사의 진지한 도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승범 원장은 “의대시절부터 원래 임상의가 아닌 의료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운을 뗐다.

공보의 시절인 2005년 원주의료기기 테크노밸리에서 주최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의료디자인으로 입상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그의 관심은 구체적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의료디자인의 정의란 ‘인간적인 의료’, ‘의료의 인간성 회복’이다.



이 같은 정의에 입각한 의료디자인의 3가지 요소는 1)의료기기 및 도구 2)커뮤니케이션 3)환경 등이며, 의료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이 3가지를 인간주의적 가치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즉 그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의료 과정에 필요한 실제 도구나 장소 등에 대한 협의의 디자인을 포함해 의료와 관계된 모든 유무형적인 부분을 인간적으로 실현하는 넓은 의미의 디자인인 것이다.

“의료인간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를 질문할 때 보통 의료봉사나 연구를 열심히 하는 의학자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는데 저는 원래부터 이런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타고난 라이프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에 의하면 제닥은 인간주의 의료를 위한 의료디자인의 과정인 셈이다.

다들 ‘저수가에 고통 받는’ 국내 의료여건에서 비급여, 부대사업 등에 열을 올려도 성공할까말까 한데 직접 커피도 만들어 팔면서 중간중간에 진료도 본다니 ‘팔자 좋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았냐는 질문에 지금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나 친구 등 연세의대 동문들은 병원을 직접 방문한 뒤 김 원장의 시도에 좋은 반응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자신의 타고난 도전가적 기질 뿐 만이라 모교인 연세의대의 교육정신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단순한 임상의사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라는 연세의대의 교육이념이 그의 비판적 이상주의를 자극했을까.

“수가를 넘을 수 없는 현실인 동시에 때가 되면 변화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수가에 얽매이기 보다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의료디자인의 요소 중 하나인 ‘의료기기 및 도구’의 경우 이미 그가 고안한 의료기기 관련 실용신안 1개와 특허 1개가 출원돼 있다.

‘커뮤니케이션’과 ‘환경’의 경우는 제닥을 통해 실험 중.

그의 ‘환자노트’는 의료디자인의 두 번째 요소인 ‘커뮤니케이션’과 관련, 진료과정의 매뉴얼화를 위한 시도 중 하나다.

“미국의 경우 다민족, 다인종 국가라 진료 면담 시 금기어 등 환자와 의사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매뉴얼화가 체계적으로 잘 돼 있습니다. 국내 대학병원 수련과정 중에서도 일정 정도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습득할 수 있긴 하지만 규모와 기능이 다른 동네 의원에겐 최소한의 접점만 존재할 뿐 적합하지 않죠”

환자 노트를 통해 환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 투자함으로써 정보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정식 폼 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진료를 받은 환자들로부터 현장 피드백을 받는 한편, 간호사와 매일매일 그날의 환자 및 진료에 대한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등 계속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환자노트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진료시간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의 평균 진료시간은 환자 한 명당 1시간.

“흔히 말하는 5분 진료는 실제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하지만 초진일 경우 환자에 대한 꼼꼼하고 정확한 데이터 수집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증환자의 경우 증상이 애매할 경우가 많아 환자의 증상에 대한 상세한 히스토리를 알아야 정확한 진료를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이 같은 진료를 통해 몇 년 동안 계속 토하는 증상에 시달렸던 환자를 완치에 가깝게 호전시킨 경험이 있다.

“환자가 열이 나고 설사를 해서 찾아오면 그 증상을 완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잖아요. 그래서 그에 맞는 약을 먹고 증상이 나으면 병원을 찾지 않다가 그 증상이 재발되면 병원에 와서 또 약 먹고…보통 진료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데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반복되는 증상의 원인을 찾아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1차 진료, 예방적 진료에 대한 신조 때문이다.

진정한 의료란 사후 처지가 아닌 아프기 전의 예방적 진료이며, 이를 위해서는 국내 의료전달체계에서 1차 의료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ㆍ기업병원 중심으로 규모의 경쟁이 벌어지고 전문의 인프레이션이 초래한 과잉 전문화 상황에서 그는 탈전문화를 통해 승부를 걸었다.

증상이 애매한 경우 내과를 가야 할지 가정의학과를 가야 할지 과목 선택에 있어 모호하기가 쉬운데 내과, 가정의학과, 정신과 등으로 굳이 구분되지 않은 탈전문진료를 통해 애매한 증상 그대로 편안하게 병원에 들러 제반 진료를 꼼꼼하게 받고, 이 과정에서 2, 3차 진료의 필요성을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탈전문화 진료의 기능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극단적인 탈병원이라는 제닥의 컨셉트는 아프기 전에 오는 병원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발로다.

병원 간판에서부터 진료실까지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본적인 병원 틀만 남기고 나머지 장치들을 제거함으로써 변화를 시도했다.

기존의 병원 형태를 철저하게 분석해 진료실은 꼭 이래야 한다 라는 통념을 뒤집고 이를 재구성하는 주체적 컨설팅을 한 것이다.

이 같은 대담한 뒤집기는 그의 사업적 관심 및 재능과 결합돼 단순히 센스 있는 포장이 아닌 실질적인 시도로 승화됐다.

실제로 그는 네트워크 관련 사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을 뿐더러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을 정도로 병원 경영에 일가견이 있다.

“홍대 앞에서 개원할 당시 의료업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미용 쪽 하셔야죠’ 라며 강남에서 다들 한다는 아이템들을 추천하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천편일률적인데다 장기적을 봤을 때 수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죠”

그는 개원가에서 하는 갖가지 사업들의 속성과 한계를 지적하며 이는 의사와 컨설팅 업체간의 이원화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대부분의 개원의들이 컨성팅 업자의 말에만 의존해 각종 부대사업을 벌이거나 좋은 입지를 찾아 다니지만 의사들이 성공의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진료와 상관없는 단기적인 이익밖에는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의사와 병원경영간의 괴리는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병원경영의 도구라는 느낌만 주게 돼 결국 근본적인 환자 몰이는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예를 들었다.

“환자들이 병원을 나가면서 ‘1시간 진료 받았는데 정말 3천원만 내도 되느냐’라고 물어요.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듯이 다음에 또 병원을 찾고, 카페에도 더 자주 놀러 오죠. 저는 이것이 진정한 비즈니스라고 봐요”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경영 주체가 되고자 과감하게 차별화를 시도한 그의 시도가 수익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제닥은 카페와 병원을 통해 수익의 이원화를 모색한 것일 뿐 특별히 무모한 모험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피부과에서 기능성 화장품을 판매하는 대신 문화를 파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몽상가는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이번 시도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닥의 통해 이루고자 하는 그의 성공은 의외로 소박하다.

“병원 경영에 대해 관련 업체들이 설명회를 하잖아요. 그때 제가 구상하고 현실적으로 입증한 ‘의료디자인’이 여러 경영 기법 중 하나로 소개만 되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밖에서 보면 이 같은 극단적인 의료서비스는 다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운영하는 자신의 속은 타 들어간다며 웃는다.

“사실 원군 없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죠. 제가 고민하고 탐구하고 있는 바에 따라 현재 의료시스템 속에서의 진지한 시도라고 봐 주시면 좋겠어요”

의료인간화를 위한 자신의 시도가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이미 그는 치열한 고민과 명석함 그리고 용기를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다는 자기실현의 꿈을 이미 이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