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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환자단체의 지독한 명의(名醫) 사랑 문제있다

환자단체연합이 선택진료제를 완전히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가 3대 비급여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현행 선택진료제를 축소한 형태의 ‘전문진료의사가산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히자 축소가 아니라 완전히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진료의사가산제’는 현재 80% 수준인 선택진료의사를 병원내 진료과별로 30%로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자는 전체 특진비의 50%를 부담하고 나머지 50%는 건강보험이 지원하되 관리 및 정보 제공을 강화하는 것이다.

환단연은 선택진료 완전폐지를 주장하면서 “의료현장에서는 ‘전문의’라 하더라도 ‘선택진료의사’가 아니면 실력 없는 의사로 인식되어 중증질환 환자들은 더욱더 ‘선택진료의사’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현재도 유명한 ‘선택진료의사’에게 진료나 수술을 받기 위해 1년 이상을 대기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선택진료의사가 80%에서 30%로 축소되면 선택진료를 받기 위한 대기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길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생겨난 단체인 환자단체연합이 환자들에게 실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선택진료비 폐지를 요구할 수 있다. 선택진료가 의료보험 저수가로 인한 병원의 경영손실을 보전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전문의라 하더라도 선택진료의사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그들의 인식은 문제가 있다. 선택진료의사가 현행 80%에서 30%로 줄어들어 선택진료의사였던 전문의들이 일반진료의사가 되면 그들의 실력이 갑자기 줄어들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선택진료의사가 축소되면 줄어든 만큼 선택진료를 받기 위한 대기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선택진료의사였던 전문의 숫자가 축소되어 일반진료의사로 전환된다면 환자부담이 줄어 실력있는 교수에게 환자가 더 몰릴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이 진료를 기피해 진료자체가 축소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선택진료제가 도입되기 이전처럼 병원 진료가 전공의와 펠로우 진료 일색으로 채워지고 교수들은 일주일에 한번만 진료를 하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은 꼭 필요에 의해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감기도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잘 낫는다’는 대한민국의 지독한 명의(名醫)선호 현상이 빚어낸 촌극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님에도 무조건 큰 병원의 유명한 대학교수만 선호하다보니 갈수록 빅5 병원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동네의원은 고사위기에 빠지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환자들은 선택진료의사에만 러브콜을 보낼 게 아니라 이 기형적인 의료전달체계를 먼저 개선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선택진료가 필요한 중증환자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의사 중 전문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최우수 인재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해 몇 년 동안이나 혹독한 트레이닝을 견디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덕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손쉽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나라가 됐음에도 그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언론이 만들어낸 명의 쫓기에 혈안이 되어 많은 전문의들이 그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흉부외과 전문의 숫자가 1000여명이나 되지만 이 중 절반은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수술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개원해 감기진료나 피부미용수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네의원뿐만 아니라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기자는 정년을 얼마 남지 않은 서울대병원에서 빅5가 아닌 병원으로 이직한 교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선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갑상선 질환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내과의사인 그가 옮기고 외과, 이비인후과 등과 협진체제를 구축한 이후 이비인후과의 한 젊은 의사가 안와갑압술 수술을 100례를 넘게 시행해 국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것이다.

안와감압술은 갑상선 질환 환자 중 안구가 돌출되는 '갑상선안병증'을 치료하는 수술인데 안와감압술의 국내 최고 권위자가 된 이비인후과 교수는 사실 그 전에는 그리 유명한 의사가 아니었다.

서울대병원 출신의 갑상선 질환 분야 국내 최고권위자인 노 교수는 그 젊은 이비인후과 교수를 일컬어 “이 병원에 와서 ‘숨겨진 보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명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환자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채 불가피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을 개선해달라고 환자단체가 요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꼬일대로 꼬인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의료전달체계를 전면적으로 손질하고 무조건 유명한 의사만 선호하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환자들 스스로 마땅한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