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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적 목적 때문에 의료산업 발목 잡지 말아야!

2009년을 마감하는 12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늘 이맘때는 대부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의료계도 2009년을 보내면서 상당히 많은 진통과 내홍을 겪었다. 그중 새해에 추진될 의료개방과 맞물려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논의가 찬반 대립으로 평행선을 달려 왔다.

정부에서는 일자리창출과 의료서비스의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허용에 무게중심을 실었다. 이미 지난 달 8일 정부는 제주도의 조건부 영리의료법인 설립요청을 수용했다. 따라서 앞으로 제주도에 국내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은 물론 의료 광고 및 환자 유치 그리고 의료기관 부대사업 자율화 등 관련 규제도 완화될 전망이다.

이번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영리의료법인 허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지부는 의료접근성 저하, 의료비 상승 등 우려와 관련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유지, 기존 비영리법인의 전환금지, 법인 허가제 및 복지부 장관의 사전승인 절차, 병원급 이상 설립 허용, 보험회사 및 제약사의 설립 및 지분참여 금지, 수익금 일부의 공익적 목적 사용 등을 허용조건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자칫 의료민영화로 가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영리의료법인의 설립은 의료관광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제주도의 경우 앞으로 3~4년 후엔 내외국인 환자가 의료와 숙박, 관광을 패키지 형태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휴양형 의료관광 상품이 가능해진다.

현재 정부에서 영리의료법인(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사람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윤 장관은 올해 2월 취임 이후 내수시장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서비스 산업 규제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여기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도 “제조업만으로는 더 이상 3만 달러 국민소득을 달성할 수 없다”면서 “서비스업 강화를 위해서 영리의료법인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반대하던 보건복지가족부의 전재희 장관도 최 장관까지 가세하자 반대의 입장에서 논의 후 결정으로 후퇴했다. 전 장관은 2010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부처 간 논의를 계속 진행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추진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될 경우 서민층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고 서민층에 대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국민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고, 고소득층이 많은 수도권에만 대형 의료기관과 유능한 의사들이 몰려 지방의 환자들에겐 불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행 건강보험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공공성을 확충하면서 영리 의료법인도 동시에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서민층에 대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동안 영리의료법인을 둘러싸고 기획재정부와 복지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지난 5월 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산업진흥원 두 곳에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용역 보고서는 15일 발표되고, 내년 초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모델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이미 9월 유한회사 형태를 제안한바 있다. 임금자 연구위원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모형 제시 의료정책포럼'에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구성원이 유한책임을 질 수 있도록 유한회사 형태로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의료정책연구소가 제안한 설립조건에 따르면 발기인은 최소 7인 이상으로 4인 이상이 의사이어야 하며, 최소 설립 자본은 2억 원이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계열병원으로서 의원, 병원, 종합병원을 자유로이 개설할 수 있도록 하며 파산 등 사회적 파장을 방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재무구조개선적립금을 일정금액 적립해야 한다.

연구소는 또 정부의 영리병원 도입은 장점이 많지만 그보다 먼저 수많은 의료서비스산업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의료억제와 의료서비스 품목제한 등 수많은 규제정책을 우선 폐지하고, 영리의료법인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표명했다.

현재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정부와 의료계 입장은 의료서비스강화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의료관광산업 육성을 통한 의료허브국가로의 위상강화 등을 이유로 든다. 지난해 외국 환자를 유치한 수를 비교하면 영리의료법인의 필요성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태국 100만 명, 싱가포르 35만 명이었으나 우리나라는 겨우 2만 5천명에 불과했다. 의료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의 90%이상 도달했다는 한국의 의료수준에도 불구하고 후진적 규제장치로 인해 의료관광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을 내세워 큰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허용을 가시화 한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국내 병의원의 대부분이 영리성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무늬만 비영리인 주식회사형 병원도 있다”고 말한다.

현실이 이렇다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형식적인 조치보다는 영리병원을 과감하게 허용하는 편이 의료관광업과 더불어 경제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한편, 영리의료법인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은 의료비 상승과 의료 양극화 현상이 야기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즉, 공공재 성격이 강한 의료서비스는 누구나 싼 가격에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법인화 해 버리면 가격이 상승 해 개인이 치료를 받는데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따라 양질의 의료서비스는 결국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공영병원이 80%이상에 달해 건강보험 적용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와는 분명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15일 발표되는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용역보고에 따라 찬반이 결정나겠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전에 의료계와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료계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의료제도와 서비스품목제한 등 수많은 의료악법들이 영리의료법인 도입보다 먼저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들은 필수 공익의료 확충 및 의료공공성 강화 방안, 보장성 확대 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보규제 때문에 의료산업이 멍들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더 이상 정치적 목적으로 반대를 위한 무조건 반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의료인들 또한 우리현실에 맞는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